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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연예대상, 이경규의 감동적인 수상 소감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KBS 연예대상, 이경규의 감동적인 수상 소감

빛무리~ 2010. 12.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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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KBS 연예대상은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이경규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최근 김성민 사건으로 인해 타격이 컸던지라 그 영향으로 좀 어렵지 않을까 염려를 했었는데, 다행히 프로그램의 근간이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바라던 후보에게 상이 돌아가서 매우 기쁘고 흐뭇합니다.

방송인 이경규를 보면 대한민국 코미디와 예능의 근현대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브라운관에서 그를 보았지요. 지금은 비교적 후덕한 모습으로 변했지만 젊은 시절의 이경규는 이윤석과 비슷할 정도로 굉장히 깡마른 모습이었습니다. 언젠가 주병진과 더불어 콩트를 하던 중에 이경규가 종아리를 맞는 설정이 있어서 바지를 걷어올렸는데, 다리가 얼마나 앙상하던지 주병진이 "아니, 왜 물구나무를 서셨습니까?"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밤)의 상징이며 터줏대감이던 이경규는 지금껏 MBC에서만 6번의 대상을 수상했지요. 드라마와 예능을 통합 시상하던 MBC 방송대상에서 1991, 1992, 1995, 1997년도에 MBC 코미디 대상을 수상했고, 2004년과 2005년에는 MBC 연예대상을 차지하여 노익장을 과시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함으로써 이경규는, 유재석이 갖고 있던 방송 3사 통산 6회 연예대상 수상 기록을 앞서 총 7회 연예대상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경규에게 있어 MBC의 '일밤'은 분신과도 같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약 20년 동안 몰래카메라, 양심냉장고, 이경규가 간다, 대단한 도전, 상상원정대 등의 코너를 성공시키며, 공익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주말 예능의 형태를 완성시킨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러나 2006년의 '슈퍼바이킹', 2007년의 '라인업', '도전 예의지왕'에 이어 2008년의 '일밤-간다투어'까지 시청률 참패의 쓴맛을 보면서 깊은 슬럼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무렵 이경규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2010년 4월,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 출연했던 이경규는 그 암울했던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2007년 인터넷에 '이경규는 한물 갔다.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졌다' 등의 기사가 난 것을 직접 봤다. 그 기사를 통해 많이 반성했고, 내가 내 속에 갇혀 사는 것 같아 깨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 말했었지요.

3년째 부진한 시청률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경규를 '일밤'은 외면했고, 결국 이경규는 50세의 나이에 과감히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났습니다. 바로 2009년 3월에 전격 출범한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이었지요. 이경규로서는 더 이상 갈 곳 없는 상황에서 선택한 마지막 카드였습니다.


배수진을 치고 절박한 마음으로 출발했으나 시작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경규의 오랜 짝꿍인 김국진과 이윤석이 보필하고 있었으나, 김국진은 오랜 공백을 거친 후 컴백한지 얼마 안 되어 아직도 예능감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이윤석은 원래 큰웃음과는 좀 거리가 있었습니다. 록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예능 프로그램에 합류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화제는 되었으나, 김태원은 그 당시 너무 악화되어 있던 건강상의 문제로 늘상 뒤처지고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며 폭넓은 호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발군의 활약을 보이던 개그계의 젊은 피 윤형빈도,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좀처럼 리얼 예능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죽은 모습을 보였으며, 탤런트 이정진은 그저 말없이 웃는 비주얼 기능에서 조금도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단지 김성민 혼자만이 의외로 출중한 예능감을 뽐내며 프로그램의 대박 캐릭터로 혜성같이 등장했을 뿐입니다. 

'남자의 자격'은 곰국과 같은 예능입니다. 모든 것이 스피디하게 흘러가는 이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지요. 그만큼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일단 끓기만 하면 더없이 진국입니다. 멤버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확립하면서 '남자의 자격'은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물론 맏형 이경규의 존재가 든든히 자리잡고 있었지요.


이경규는 지천명의 나이에도 언제나 동생들 앞에 나서서 솔선수범했으며, 마라톤이나 지리산 등반과 같이 육체적으로 힘든 미션을 수행할 때도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무릎까지 잠기도록 쌓인 눈을 헤치고 지리산을 오를 때에도, 자기 몸의 힘든 것을 염려하지 않고 프로그램이 재미없을까봐 염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남자의 자격'을 살리고야 말겠다는 독한 의지였습니다. 

그리고 원래 이경규의 진행 스타일은 '버럭'과 '까칠'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예능의 대세는 '훈훈함'과 '배려'라고 볼 수 있지요. 수십년간 유지해 온 자신의 캐릭터를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건만, 이경규는 고집을 버리고 기꺼이 시청자의 기호에 따라 자신을 바꾸었고, 누구나 그 어깨에 기대고 싶은 자상한 아저씨의 이미지로 거듭났습니다. 한 때 '일밤'의 상징이었던 이경규는 이제 '남자의 자격'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2010년 KBS 연예대상에서 이경규의 경쟁자는 강호동, 유재석, 신동엽, 김병만이었습니다.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쟁쟁한 인물들이지요. 그런데 한창 최고의 기세를 뽐내고 있는 그 젊은 후배들을, 예능인으로서는 거의 뒷방 신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50세의 이경규가 누르고 연예대상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감동적인 인간승리였습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개인적으로 어려움도 있었고 팀 자체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어려움 속에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동안 받았던 상 중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값어치가 있는 상입니다." 이경규의 수상소감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오랜 슬럼프 끝에 모든 것을 걸고 시작했으며 천신만고 끝에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았으나, 최근 또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에 휘말려 위기를 겪고 있는 '남자의 자격'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감개가 무량할 듯 싶더군요. 어느 덧 '남자의 자격'이 출범한지도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경규의 수상 소감은 계속되었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몸이 많이 불편하신데, 제 아버님께 이 상을 보약으로 바치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서 잠시 안경을 고쳐 쓰는 모습이 보였는데, 제가 보기에는 약간 눈물이 글썽한 듯도 하더군요) 제 팬들이 '30년 행복했다, 30년 더 부탁한다'고 하는데 한 20년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경규의 팬클럽 회원들도 참 센스가 넘치더군요.

"여기 있는 후배들과 저는 똑같은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눈 내린 길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으면서, 제가 딛은 발자국이 후배 여러분께 작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달려가겠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예능인의 길을 걷는 후배들을 위해 스스로 등불이 되어 주고자 하는 선배 이경규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제 생각에 이경규의 수상 소감은, 영화배우 황정민의 '밥상' 소감 못지 않게 감동적이었어요. 나이가 많다고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앞장서서 험한 길을 뚫고 나가려 하는 이경규의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도 무소의 뿔처럼 힘차게 달려갈 그의 행보를 애정 깊은 눈으로 지켜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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