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런닝, 구' 나보다 어린 형에게 보내는 편지 본문
형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 내 곁에 있을 때, 언제나 달리는 기차를 보며 꿈을 꾸던 형은 지금 그 곳에서도 같은 꿈을 꾸고 있는지... 나는 예전처럼 꿈을 꾸며 살고 있는데, 형이 있는 그 곳의 사람들에게도 꿈이 존재하는지, 나는 묻고 싶었어. 그리고 간절히 믿고 싶었어. 제발 그렇기를... 만약 아니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제발 그렇다고 믿고 싶었어.
기찻길을 향해 달려가던 형을 내팽개치고, 나는 앞으로 달렸지. 하필이면 그 날이 바로 예쁜 계집애 행주의 생일이었을까? 그 아이한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던 나는, 그렇게라도 선물을 해주고 싶었어. 언제나 고개를 돌려 지만이보다 뒤처지는 나를 바라보던 그 아이에게, 나는 한 번이라도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 때 나는 형이 참 싫었어. 형만 아니면 얼마든지 지만이에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어. 언제나 형의 곁에 붙어 있어야 하는 내 처지가 싫었고, 고개만 돌리면 어디론가 뛰어가서 사라져 버리는 형이 싫었어. 매일 형을 찾아 시장을 몇 바퀴씩 돌며 "구대우~"를 외쳐대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애써서 형을 찾아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도 형을 잘 돌보지 못했다고 아버지에게 야단맞는 것도 싫었어. 어쩌다 한 번쯤은 형이 없어지길 바랬는지도 몰라.
하지만 형이 없는 지금, 나는 생각해. 형이 떠난 후로 한 번도 웃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생각해. 아침에 집을 나서며 운동화 끈을 조여 맬 때마다 생각해. 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내 곁에서 예전처럼 운동화를 내밀며 "니 꺼, 대구 꺼" 하고 말하는 형의 맑은 얼굴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내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
이제 나는 다시 달리려고 해. 오래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기기 위해 달리는 건 아니야. 예전에는 형을 돌보기 위해서 달렸고, 지금은 아버지의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달리는 것이지. 그런데 나는 이기고 싶어졌고, 그래서 형이 어디로 가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나 혼자 달려서 이겨버리고 말았지.
설마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절대 이기면 안 되는데, 나는 미친듯이 달려서 맨 앞으로 나서고 싶다는 충동을 누르지 못하고 있어.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오래 전에 형을 죽이더니 이제는 아버지마저 죽이려고 하나 봐.
이렇게 못된 꿈도 꿈이라고 우길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이기고 싶어졌어. 예전보다 더 예뻐져서 나타난 행주 계집애가 보는 앞에서, 승리의 테이프를 내 가슴으로 끊고 싶어. 언제나 1등은 내가 아닌 지만이의 것이었지만, 한 번쯤은 운명을 거슬러도 되지 않을까? 내게는 한 번도 허락될 수 없는 걸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는데, 형이 어떻게 생각할지 나는 궁금해. 형만은 나의 못된 꿈을 허락해 주지 않을까?
형, 미안해... 사실은 이 말을 하고 싶었어. 아무리 힘겨워도 살아 있어서 나는 꿈을 꾸는데, 어쩌면 꿈도 없을지 모를 그 곳으로 먼저 떠나가게 해서 정말 미안해. 살아만 있었다면 형은 온 세상을 다 뛰어 다녔을 텐데, 그저 달릴 수만 있으면 다른 아무 것도 필요 없이 행복했을 텐데... 사실 나는 이기고 싶은 게 아니야.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가는 기차를 따라 달리던 형처럼, 나도 그렇게 한없이 달리고 싶은 거야. 형은 이해해 주지 않을까?
형, 내 곁에 있어 줘. 나는 형을 버리고 혼자 달려갔지만, 형은 나를 버리지 말고 끝까지 함께 달려 줘.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지킬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형의 꿈을 이룰 수 있는지 알려 줘.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나보다, 아직도 어린 소년으로 머물고 있는 형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비록 못된 동생이지만, 구대우는 언제나 구대구의 형이니까, 예전처럼 "니 꺼, 대구 꺼" 라고 말하면서 내 손에 꿈을 쥐어 줘... 형, 그 곳에도 정말 꿈은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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