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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종사관 서용기(정진영)의 딜레마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동이

'동이' 종사관 서용기(정진영)의 딜레마

빛무리~ 2010. 3.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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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진영의 연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참 많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정진영이 출연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작품에 대해 든든한 신뢰까지 생기곤 하거든요. '동이'를 2회까지 시청하면서 제가 참 다행이라고 느낀 점은, 포도청 종사관 서용기라는 역할을 다른 배우가 아닌 정진영이 맡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서용기는 기본 성격이 너무 올곧은 사람이기에 악역이 될 수는 없는 인물이지만, 과연 주인공인 동이(한효주)의 편에 서 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의 부친 서정호가 살해당한 곳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최효원(천호진)의 모습을 보고, 서용기의 얼굴에 떠오르던 경악스런 표정은 제 가슴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습니다.

아무리 그가 유능한 수사관이며 침착한 성품을 지녔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평소 반상(班常)의 구별조차 없이 친밀하게 지내며 자기 자신처럼 믿어왔던 최효원이기에, 지금 그의 가슴에 들끓는 감정은 무엇보다 배신감이 클 것입니다.


비록 서정호를 살해했다는 것은 누명이지만, 이제껏 최효원이 서용기에게 자기의 정체를 숨겨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서용기는 오랫동안 검계 조직을 추격해 왔습니다. 그런데 등잔밑이 어둡다고, 늘상 가까이 지내던 최효원이 검계의 수장일 거라고야 어찌 생각이나 했을까요? 일단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최효원의 담담한 태도로 보아 애써 해명하려고도 아니할 듯 싶지만, 설령 그가 서용기에게 자기의 진심을 전한다 해도 믿음을 돌이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남인의 거물들이 차례로 살해된 사건의 혐의를 검계가 뒤집어쓸 상황이 되자 나름대로 사건의 배후를 조사하던 최효원은 드디어 진범의 정체를 밝혀낼 실마리를 잡았었지요. 같은 남인끼리 서로 반목하며 상대방의 비리를 캐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 그는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종사관 서용기에게 알렸는데, 워낙 정치적 거물들이 연루된 큰 사건이다 보니 자기 선에서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서용기는 자기 부친인 서정호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전임 부제학 서정호는 비록 조정에서 물러났으나 임금의 큰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지요. 아들의 말을 전해듣고 급박한 사안이라 여긴 그는 직접 임금을 찾아가 그 사실을 고하기로 결심하는데, 숙종은 부왕(현종)의 묘소 참배와 신병 치료를 위해 궁궐을 비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서정호는 숙종을 알현하기 위해 그 발자취를 따라 현종의 묘소인 숭릉(崇陵)으로 향했는데, 그 길목에서 살해당하고 만 것입니다. 물론 교사자는 남인의 영수 오태석(정동환)이며 하수인은 그의 조카 오윤(최철호)이었습니다.


사실 최효원이 몇 명 되지도 않는 수하만을 데리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서정호의 뒤를 쫓아간 이유는 그를 구하기 위함이었으나, 완전히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최효원이 포도청에 심어두었던 첩자는 그 정체가 발각되어 고문을 당하게 되자 모든 기밀을 토설하였고, 검계 조직의 본거지는 관군의 습격을 받아 소탕되고 말았으며, 이미 서정호와 그 일행을 살해한 뒤 매복하여 기다리고 있던 관군에 의해, 최효원과 최동주를 비롯한 검계의 생존자들은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이로써 한양 검계는 전멸했고, 홀로 무사한 사람은 동이를 찾아다니느라 다른 조직원들과 행동을 함께 하지 않고 있던 차천수(배수빈) 뿐이었습니다. 집에만 숨어 있으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듣지 않고, 비단옷을 입을 욕심에 양반댁 문안비(問安婢) 노릇을 하러 갔던 동이는, 하필 문안을 드리러 간 집이 오태석의 집이라서 하마터면 잡힐 위기에 처했으나, 때마침 구하러 온 차천수 덕에 아슬아슬 몸을 피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동이의 아버지 최효원은 이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떠나야 합니다. 비록 검계 조직의 수장이라는 자기의 정체는 밝히지 못했으나, 진심으로 서용기를 위하여 그의 부친을 구하려고 달려갔건만, 오히려 벗의 부친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말았으니 그 억울함이 말할 수 없겠지요. 더구나 평생 뜻을 두고 키워 왔던 검계 조직의 불안한 앞날과 아직 어린 딸자식의 운명을 오직 젊은 차천수의 어깨에 지우고 가야 하니, 그 아픔이야 어찌 형언하겠습니까? 최효원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천호진의 연기가 놀라울 만큼 빛났다던데, 아쉽게도 그 명연기를 감상할 기회는 다음주로 미뤄지고 말았군요.

그런데 최효원의 억울함보다도 더욱 제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서용기가 느꼈을 충격과 배신감이었습니다. 단순한 증오는 쉽게 잊을 수도 있지만, 배신감으로 휩싸인 증오는 서서히 집요하게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법이지요. 하루아침에 날벼락처럼 부친의 죽음을 맞이하고, 믿음으로 맺었던 친구를 원수로 삼게 되었으니 앞으로 서용기는 어떤 행보를 취하게 될까요?


서용기는 지극히 공정하고 심성이 올바른 인물입니다. 자기가 연쇄살인의 배후로 검계를 지목하고 수사 과정 중에 몇 명을 체포하였으나, 아직 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의금부로 압송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강경하게 저항하던 양심적 수사관입니다. 그런데 이제, 비록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검계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으니, 드라마 '동이'에서 그가 처한 위치는 선역과 악역의 중간정도 되는, 아주 미묘한 위치라고 하겠습니다.

주인공인 동이(한효주)는 검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적 연관성이 있지요. 앞으로 동이가 성장한 후에 서용기와 재회하게 되었을 때, 그의 선량한 심성으로 보아서는 그녀를 돕는 아군이 될 듯 싶으나, 막상 동이의 정체를 알게 되면 순식간에 적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이는 온갖 역경을 헤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약자의 이미지로 그려질텐데, 서용기의 입장에서는 그녀를 돕자니 아버지의 원수를 돕는 셈이 될 것이고, 그녀를 적으로 돌리자니 본인의 타고난 심성에 거스르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필연적으로 서용기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깊은 고뇌를 하겠지요. 웬만한 배우의 내공으로는 충분히 표현해낼 수 없는 고난이도의 연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용기라는 중요한 배역을 정진영이 맡았다는 사실에 커다란 안도감을 느낍니다.

정진영은 맡은 역할에 따라 완벽히 그 인물로 변신하는 배우 중 한 사람입니다. 보통은 냉철한 이미지의 엘리트 역할을 했던 것 같지만, 의외로 바보스럽고 멍청한 연기를 해도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영화 '왕의 남자'에서 그가 형상화시킨 폭군의 모습은, 이제껏 제가 보았던 그 어떤 연산군보다도 더 실제 연산군 같았습니다. 태생적 악인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와, 평생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 주변의 암투와, 극도의 외로움으로 인해 점점 비뚤어지고 미쳐가는 임금... 그러한 인물의 내면을 가슴 서늘하도록 절절하게 표현했던 것 같군요.


이제 그를 통해서 형상화될 서용기라는 인물이 어떠한 매력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단선적 캐릭터보다는 이렇게 내면적 갈등 요소를 지닌, 복합적 캐릭터가 더 재미있고 매력적인 법이니까요. 다시 한 번 "정진영이어서 다행이다"를 되뇌이고 싶습니다. '동이'는 오랜만에 만나는, 정말 기대되는 드라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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