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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어두운 기억들을 일깨우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혼', 어두운 기억들을 일깨우다

빛무리~ 2009. 8. 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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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진의 컴백을 기다리며 조금은 기대해 왔던 MBC 납량특집 드라마 '혼'을 드디어 시청했다. 재미있었다. 이서진의 안정적인 연기와 이진의 성숙한 모습이 반가웠고, 학생 역할을 맡은 신인들(임주은, 지연, 건일,유연석 등)의 연기도 신선했다. 게다가 출연하는 작품마다 강렬한 포스 작렬해 주시는 김갑수씨가 계셔서 더욱 믿음이 갔다. (김갑수씨, 요즘은 주로 악역으로 나오시는 것 같다. 선한 역할도 잘 어울리시는데^^)




이렇게 재미도 있고 연기자도 좋고 구성도 탄탄해 보여서 앞으로 기대되는 작품인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계속 시청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제 '혼' 1회를 보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어두운 기억들이 섬뜩할 만큼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베스트셀러 '시크릿'에서 강조하듯이 사람의 정신력은 우리의 예상보다 매우 강한 자력이 있기 때문에 늘 긍정적인 생각, 좋은 생각을 하며 살아야만 실제로도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법이다. 어두움과 공포 등 부정적 감정에 깊이 잠기거나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은 좋지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원래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번에는 출연진이 워낙 끌리고 해서 한번 마음 굳게 먹고 볼까도 했는데, 역시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혼'의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더니 별로 무섭지 않다는 의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어조로 보아서는 거의 학생들인 것 같았다. 그게 무슨 공포물이냐고 코믹물이라고까지 하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잘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보통의 경우, 공간 감각이 여성보다 훨씬 발달해 있는 남성들이 놀이기구에 훨씬 취약하다. 공간 감각이 비교적 둔한 여성들은 그 위험성을 적게 느끼므로 놀이기구의 짜릿함만을 즐기지만, 남성들은 공간 감각의 예민함으로 인해 자기 몸이 처한 위험을 생생히 실감하기 때문에 놀이기구 탑승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를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무섭지 않게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공포는 '화면'이나 '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드라마 '혼'은 너무 지나칠 정도로 무서웠다.




첫번째로, 영혼이나 악령, 또는 악마의 존재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또한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려서 무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런 문제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몇년간 악령에 사로잡혀서 고생하는 소녀가 있었고, 그녀의 부모님은 치료를 위해 아이의 양쪽 팔을 잡고 안 가본 곳이 없었다고 했다. 온갖 병원과 기도원, 교회와 절, 무당... 그러다가 치유기도에 능하신 가톨릭의 신부님을 소개받아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그 후로 소녀가 한결 편안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서 그 후로도 자주 상담과 안수기도를 받으러 찾아왔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그 신부님이 운영하시는 작은 출판사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매우 조용한 곳이라서 상담이나 기도실로 많이 이용되곤 했다)

기도를 받으러 올 때는 항상 부모님이 소녀의 양쪽에서 호위하듯 데리고 왔다. 내가 보는 앞에서 소녀가 발작을 한 적은 없었지만, 일하는 도중에 얼핏 얼핏 그녀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들렸는데, 그녀가 집에서 하는 행동들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영화 '엑소시스트'를 보신 분이라면, 그 주인공 소녀의 행동들을 생각하시면 될 것이다.

왕따와 학교 폭력으로 자살한 소녀의 영혼이 살아있는 소녀에게 씌워진다는 것은, 글쎄 그런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악령이 씌워진 사람은 실제로 있다. 그리고 드라마의 도입 부분에서 드러난 소녀 윤하나(임주은)의 행동은 인간의 영혼이라기보다는 악령이 씌워진 사람의 그것이었다. 눈이 뒤집혀서 신류(이서진)의 목을 조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그녀는 말한다. "나를 죽여 줘. 내 안에 악마가 있어."

에이, 저런 게 어디 있어? 하면서 보면 당연히 우습기만 하고 무섭지 않을 것이나, 충분히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알기에, 그리고 예전에 내 눈으로 보았던 소녀와 그 부모님의 고통받던 모습이 떠오르기에, 나에게 있어서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공포였다. 




두번째로, 주인공 윤하나의 트라우마를 설정하기 위해 그녀의 어린 시절, 불에 타 죽는 친구들의 모습을 목격하게 하는 장면두 세 차례 나타났다. 그 또한 매우 불편했다. 10년 전에 일어났던 화성 씨랜드 참사를 모델로, 너무 리얼하게 그 장면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올망졸망 노랑 병아리 같던 유치원생들이 무려 19명이나,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새카맣게 타서 숨져야 했던 그 끔찍한 참사를... 그저 뉴스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고 심장이 뛸 만큼 고통스러웠던 그 기억을... 만약 그 때 피해자의 부모나 가족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새삼 되살리게 된다면... 

그들은 며칠간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을까? 아무 연관이 없는 나조차도, 어제 그 장면을 보면서 저절로 눈물이 솟구쳤는데... 불길 속에서 필사적으로 창살 밖으로 손을 내밀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어린 것들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도 생생하게 찍을 수 있었을까?




세번째로, 이건 위의 두 가지에 비하면 비교적 평범한 것이기는 한데, 학교 폭력 또한 공중파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느낌이 들었다.

학창시절, 극심한 괴롭힘을 당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조금씩은 그런 기억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선생님에게서 부당하게 차별 받았던 기억이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 혹은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했던 기억...
나에게도 그런 기억들이 있다. 나는 성격이 밝거나 적극적이거나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나치게 책만 좋아했고 어린 나이답지 않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당연히 어느 정도는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소심하고 예민했던 내게는 그 모든 것들이 상처로 남았고, 현재까지도 학창시절이 그다지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

'혼'을 보면서 나는 줄곧 어두운 기억들에 시달렸다. 악령에 사로잡혀 고통받던 소녀의 모습, 씨랜드 화재 사건으로 처절하게 죽어갔던 어린 아이들, 그리고 따돌림에 괴로워하던 학창 시절... 그 무엇 하나도 되살려서 곱씹고 싶지는 않은 기억들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를 시청한 후의 느낌은 '거북함과 찜찜함' 이었다. 재미는 있었는데도 말이다.

'혼'은 놓치고 싶지 않은 드라마이다. 무엇보다도 이서진의 연기를 계속 보고 싶은 욕구가 크다. 침묵하는 동안 그의 연기력은 더욱 일취월장한 듯 했다. 그러나 신류가 천재 프로파일러에서 점점 악령에 사로잡힌 인간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의 실감나는 연기로 보게 되면... 과연 내가 그 끔찍함을 견디어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아서 시청하기가 두렵다. 고민이다.


* 사진 출처 - MBC 드라마 '혼' 홈페이지 (모든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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