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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질은 정말 나쁜 짓일까?

빛무리~ 2017.04.18 14:54

우리는 어려서부터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고자질'은 나쁜 행위이며 비겁한 행위라고 배워 왔다. 199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어린이 외화 '천사들의 합창'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그 당시 애청자였던 내가 무척 예뻐하면서 보았던 캐릭터가 있는데 '마리아 후아키나'라는 여자아이였다. 물론 새침한 깍쟁이에다 너무 잘난체하는 면이 있어서 가끔은 좀 얄밉기도 했지만, 나는 그 아이의 똑 부러지는 성격이 매우 마음에 들었더랬다. 싫은 것은 싫다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 아는 솔직한 성격이 내 눈에는 나빠 보이긴 커녕 무척 빛나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왕따였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yyjjss111/220795233350


천성적으로 모두 그렇게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아기 때부터 교육을 철저히 받은 탓인지, 아니면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하기 위해서 부자연스러워도 모두 그런 캐릭터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 외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죄다 너무 착하고 순하여 무골호인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싫은 것이 당최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도 무언가를 싫다고 말하는 법이 없고, 남에게 상처가 될 것 같은 말들 (팩트 폭력) 은 단 한 마디도 안 하는 사회 생활의 귀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마리아 후아키나는 홀로 독야청청(?)했고, 그래서 왕따였지만 언제나 당당했다. 


시험 시간에 컨닝하는 아이를 본 마리아 후아키나는 번쩍 손을 들고 외쳤다. "선생님, 제시가 보고 써요!" 그러자 천사같은 히메나 선생님의 안색이 대번에 흐려졌고, 같은 반 아이들은 모두 비난의 시선으로 마리아 후아키나를 노려보았다. 히메나 선생님은 마리아 후아키나를 방과 후 따로 남게 해서 타일렀지만, 마리아 후아키나는 좀처럼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제시는 나쁜 짓을 했어요!" 선생님이 말했다. "그렇지. 하지만 너는 더 나빠!" 그러자 마리아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으나, 결코 승복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하여 "네, 알겠습니다."라고 거짓으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모르겠어요, 선생님." 나는 마리아의 그 대답이 왠지 통쾌했다. 


이제 내 또래의 친구들은 모두 그 당시 '천사들의 합창'에 나올 법한 아이들의 부모가 되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고자질'이 왜 나쁜 것인지를 잘 모르겠다. 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늘 생각해 왔다. 잘못은 숨겨져야 하는 게 아니라 명백히 밝혀져야 하는 것이며, 잘못한 사람은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건 너무 당연해서 왜 그렇다고 설명해야 할 필요조차 없는 삶의 대원칙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잘못은 수많은 사람들의 묵인하에 쉬쉬 숨겨지고,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기는 커녕 피해자를 계속 짓밟으며 오히려 더 잘 살아간다. 


그렇다면 남의 잘못을 알면서도 쉬쉬 숨겨주는 행위는 범죄의 동조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멀리 보면 사회악을 조장하는 행위가 아닐까? '고자질'은 그 어감 자체부터 매우 나쁘지만, 사실은 용감하고 정의로운 행위가 아닐까? 미움받고 왕따 당하고 보복 당할 수도 있는데,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내가 보기엔 거의 숭고함에 가깝다. 고자질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의리'를 내세울 것 같다. 하지만 '의리'라는 그 어감 좋은 단어가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모르는가? 서로의 잘못을 덮어주는 악인들의 의리가 과연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될까? 


다행히도 요즘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평가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듯하다. 예전에는 '내부고발자'라고 하면 조직을 배신하고 제 식구들을 배반한 나쁜 놈이라고들 생각했는데, 요즘은 용기있고 훌륭한 행위임을 인정하며 칭송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거대 기업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처럼 거창한 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컨닝을 해도 걸려서 야단맞기는 커녕 오히려 좋은 성적을 받고 칭찬까지 받게 된 아이는 그 후로도 죄책감 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이고, 나중에는 무엇이 나쁜 행위인지에 관한 판단력조차 흐려진 채 나쁜 어른으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주제를 강조하다 보니 좀 지나치게 강경한 어조로 글을 쓴 느낌이 있는데, 기본적인 내 생각은 늘 그러하다. 물론 '고자질을 생활화합시다!" 라는 표어가 등장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고, 아이들에게 "친구가 잘못하는 것을 보면 꼭 선생님한테 일러야 해!" 라고 가르치는 교육 문화가 생겨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무조건 잘못을 덮어주는 것만이 미덕인 양 가르치며, 남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은 더 나쁜 일이라는 식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사회의 부정부패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악이 있다면 누군가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밝혀내야 하고,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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