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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잘못이라고? '쌍방과실'의 치명적 문제점

빛무리~ 2017.04.18 14:57

'쌍방과실'이란 법적으로 많이 쓰이는 용어지만, 일상 생활에서도 '쌍방과실'을 적용하는 경우는 무척 흔하다. 이를테면 두 아이가 싸우고 있을 때 어른이 나타나서,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지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누가 싸움의 원인을 제공했는지는 전혀 따지지 않고, 그냥 둘이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둘이 똑같이 잘못했다 하면서 둘에게 똑같은 벌을 주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건 정말 치명적인 행동이다. 무조건 '쌍방과실'을 적용하는 것은 가해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피해자에게는 100% 인내만을 요구하는 부당한 강압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spirillae/220390459732


못된 아이 '갑'이 착한 아이 '을'에게 시비를 걸며 툭툭 때렸다. "그러지 마" 라고 하면서 참던 을도 결국 폭발해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나타난 선생님은 "싸우는 건 나쁜 행동이니까 둘 다 나쁘다" 라고 하며 갑과 을에게 같은 벌을 주었다. 못된 아이 갑이 그 성격을 금세 고칠 리는 없으니 그 후에도 갑은 계속 을을 괴롭힐 것이고, 을은 참다 못해 저항하고 싸우는 일이 또 발생할 것이며, 선생님은 둘에게 또 다시 똑같은 벌을 주었다. 그런 일이 수차례 반복되면 을은 더 이상 갑에게 저항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때리면 그냥 맞고, 놀려도 그냥 묵묵히 당하면서 참을 수밖에 없다. 최소한 그러면 선생님한테 억울한 벌은 안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자라난 을은 점점 우울한 성격에 염세주의자가 되어갔다. 세상엔 온통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밖에 없는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갑에게 시달리며 참는 것이 습관화 되다 보니, 다른 못된 아이들에게도 표적이 되었다. 아무리 놀리고 때려도 반항하지 않고 묵묵히 당하고만 있으니, 그보다 손쉽고 만만한 녀석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짓밟혀도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몇 년을 버티던 을은 결국 더 이상 이 시궁창 같은 세상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을은 스무살의 눈부신 봄날을 맞이하지 못한 채 어둑어둑 비가 내리던 날 홀로 삶을 마감했다. 이 세상이 너무도 끔찍했기에, 떠나는 순간에는 오히려 홀가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한편 어려서부터 아무리 친구를 괴롭혀도 가벼운 벌로 끝나고, 아무리 짓밟아도 반항조차 못하는 약한 녀석들을 들볶는 취미에 길들여진 갑은 점점 더 사이코패스가 되어갔다. 자기 발밑에서 무력하게 울며불며 빌빌대는 꼴들을 보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결국 갑은 '힘쎈여자 도봉순'에 나오는 연쇄납치범 김장현처럼 가장 약해 보이는 여자들만을 골라서 납치해다가는 자기 집 지하에 가둬놓고 매일 때리며 고문했다. 여자들이 더욱 비참한 몰골로 울며 비명을 지를수록 갑의 즐거움은 더해갔고, 점점 큰 자극을 원하게 된 갑은 끝내 연쇄 살인마가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체포되었지만, 심신미약과 정신병력을 이유로 갑에게 내려진 형량은 징역 7년에 불과했다. 


위의 이야기는 내가 꾸며낸 것이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어쩌면 현실 속에서 수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죽은 아이가 그저 나약해서, 사회부적응자라서 그랬다며 안타깝게만 여길 뿐, 그 정확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귀찮아서,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두려워서, 밝혀내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가해자, 범죄자에게만 유독 너그러운 그 나라의 입법부는 잘못된 법을 고칠 생각이 없고, 사법부는 오직 만들어진 법을 적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권한이 없다며 7년 후 살인마 갑을 다시 세상에 풀어줄 것이다. 


얼마 전 길 한복판에서 아기를 안고 가던 젊은 엄마가 낯모르는 한 남성으로부터 무지막지하게 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 나란히 서 있을 때 아기의 얼굴 쪽으로 계속 담배연기를 내뿜는 남성에게 조심해 달라고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분노한 그 남성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기 엄마를 뒤쫓아와 돌려 세우고 거의 쓰러질 뻔한 만큼 세차게 뺨을 내려쳤던 것이다. 그런데 뺨을 얻어맞은 아기 엄마가 방어하는 차원에서 팔을 한 차례 휘두른 것이 공격으로 간주되어 그 사건은 쌍방폭행으로 결론내려졌다고 한다. 이건 정말 거지같은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쌍방과실 (또는 쌍방폭행) 이란 참으로 적용하기 쉬운 법일 것이다. "그냥 둘 다 잘못했으니까 대충 서로 사과하고 끝내쇼!" 이러면 되는 거니까 말이다. 일일이 정확히 잘잘못을 따져서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고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그 보상을 받게 해주려면 얼마나 복잡하고 피곤하겠는가? 다툼의 원인과 과정을 살피지 않고 그냥 싸웠다는 이유로 두 아이에게 벌을 주는 선생님의 태도 역시 그러한 귀차니즘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작은 귀차니즘이 모여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악해져 가고 있다. 그러니 을처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마감하거나, 혹은 살아있어도 정신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 


매사에 잘잘못이 명확히 가려지는 좋은 세상이 과연 언젠가는 올 수 있을까?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희망 없는 삶보다는 희망 있는 삶이 더 행복한 거니까, 마지막 한 조각 희망이라도 버리지 않고 있다 보면, 아주 조금씩 1cm씩이라도 좋아지는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전혀 기약 없지만 그래도 나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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