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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지니어스' 홍진호, 볼수록 빛을 발하는 그의 가치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더 지니어스' 홍진호, 볼수록 빛을 발하는 그의 가치

빛무리~ 2015. 7. 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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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개인적 취향일 뿐이지만, 나는 '정치적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때 자신에게 얼마나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어느 공동체에 들어가서나 그 단체 본연의 활동에 집중하기 보다는 우선적으로 주변에 사람들을 모아 자기 세력을 구축하는 일에 민감한 촉수를 곤두세우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거부감을 느낀다. 강한 정치적 성향과 더불어 똑똑하고 능력까지 갖춘 사람이 공동체 내부에 침투하면, 그 곳은 종교단체든 교육단체든 그 외의 무엇이든 순식간에 정치 집단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마치 메르스가 퍼져가는 것처럼, 소름끼치도록 빠르고 무섭게 변해 버린다. 



십여 년 동안이나 가족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로 소규모의 전체 인원이 순수하게 화합하며 잘 지내던 단체 내부에 정치꾼 한 사람이 신입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져 버렸는지를 생생히 목도했던 경험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정치꾼의 부추김과 선동질은 몇몇 사람들의 마음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던 권력욕(?)을 일깨웠던 모양이다. 정말 순식간에 정치꾼 세력이 단체 내부에 커다란 바윗덩이처럼 결성되었고, 그들은 온갖 말도 안 되는 구실을 갖다 붙여 자기들만의 권력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그 더러운 꼴을 도저히 보아줄 수 없다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십여 년간의 좋은 기억을 뒤로 한 채 나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노랫속의 '작은 연못' 처럼 깨끗했던 예전의 그 공동체는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정치적 성향 그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매우 탁월한 재능이며 유용한 기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필요에 따라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도 반드시 있을 것이며, 그런 경우 주변 지인들 중에 유능한 정치꾼(?)이 한 사람쯤 존재한다면 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모두 인정하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정치꾼이 별로다. 때와 장소를 가려서 정치적 행동을 결코 안 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명확히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대부분은 성향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작은 원두막에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면서도 그들은 정치를 한다. 


'더 지니어스'는 기본적으로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게임보다 '정치'를 구경하게 되는 방송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청하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이끌리는 매력이 있다. 평범한 두뇌로는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게임을 신들린 듯 플레이하며 앞다투어 경쟁해 나가는 지니어스들의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다수 연합의 세력에 왕따당하며 설움을 겪는 (비정치적 성향의) 소수 출연자들을 볼 때면, 왠지 나 같은 사람들이 저기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울컥 동질감을 느끼며 몰입하게 된다. 일부 출연진의 과한 정치질에 짜증을 내면서도 끊을 수 없는 것은, 마치 욕하면서 막장 드라마를 계속 보는 심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시즌1~4까지 통틀어 '더 지니어스' 출연자들 중 가장 능수능란한 정치꾼을 뽑는다면 이상민이 아닐까 싶다. 정치꾼을 싫어하는 나로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타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끌어들이며 강약을 조절하여 줄다리기하는 그의 정치적 수완은 대단해 보인다. 그 외에도 김구라, 장동민, 김경란에게서 강한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는데, 내가 보기에 이상민의 정치적 능력은 김구라보다 유연하고 장동민보다 폭이 넓으며 김경란보다 압도적인 것 같다. 일생 동안 그 쪽 방향(?)의 사람들과는 별로 친해 본 적이 없는 터라, 익숙한 분야(?)가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다는 뜻이다. 이상민이 시즌2 (룰 브레이커)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그 정치적 수완이었음은 누구도 쉽게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애석하게도 '더 지니어스 그랜드 파이널' 제2회를 시청하기 전에, 포털사이트 메인에 떠 있는 기사 제목을 통해서 스포를 접하고 말았다. 2회전 탈락자 임요환의 이름을 정말 친절하게도 제목에 동동 띄워 주신 기자분께 감사의 종주먹을 들이대고 싶다. 완전 김이 새고 말았지만 어쨌든 과정이 궁금하니까 뒤늦게나마 방송을 시청했다. 그런데 메인 매치인 호러 레이스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저절로 홍진호의 모습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들 제 잇속을 챙기느라 연합하고, 도움 안 될 것 같으면 배척하고, 아무도 진심으로 타인을 염려하지 않는 가운데, 오직 홍진호만이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게임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임요환이나 홍진호처럼 유명한 프로게이머들도 잘 알지 못했다. 인터넷 기사를 통해 어렴풋이 이름만 알고 있다가, 최근 '더 지니어스'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소 그들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된 정도였다. 그러므로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그들의 플레이를 지켜볼 수가 있었는데, 거친 세상 풍파에 닳고 닳은(?) 연예인들보다 이 순진한 프로게이머들이 내 기준에서는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연예인(방송인)들이 자기네끼리 똘똘 뭉쳐 계략을 짜고 배신과 반전이 난무하는 드라마를 찍는 동안, 자신들의 실력만을 바탕으로 담백하게 맞서는 그들의 모습은 흰 백합처럼 눈부셨다. (솔직히 저쪽의 막장 드라마가 더 재미있기는 했지만^^)



 

시즌1(게임의 법칙)에서 이루어낸 홍진호의 우승은 그래서 더욱 놀라운 기적이었다. 현역 시절에는 만년 2위로서 황제 임요환의 그늘에 가려졌던 홍진호가 '더 지니어스'에서는 뜻밖의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하며, 오직 자신의 실력만으로 거대한 정치 세력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다. 그 때 홍진호는 우승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 동안 제가 지니어스에서 속이지 않고 믿음을 주다 보면, 결국 사람들이 언젠가는 나한테 한 번쯤 마음을 열어주지 않겠나... 이런 생각으로 계속해 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저를 응원해 주시는 든든한 아군들이 생긴 것 같고... 내가 걸어 온 길이 절대 틀린 게 아니었다는 보답을 받은 것 같아서 정말 고맙기도 하고, 저 자신이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물론 충분한 실력이 있으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스스로 실력이 부족함을 느끼면 아무리 독야청청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본능적으로 다수 연맹에 찰싹 달라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생존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외톨이가 되면 너무 힘겹고 외로우니까, 한 번 당해 본 사람은 다시 그 일을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즌3 (블랙가넷) 때와 많이 달라진 최연승의 자세를 이해한다. 시즌3에서는 이렇다할 연합 없이 홀로 투쟁하며 수많은 데스매치를 경험하고 3위까지 올라갔던 최연승이다. 그런 모습이 참 멋있었는데, 이번 시즌4에서는 이상민 장동민 김경란이 포함된 다수 연합에 처음부터 아주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조금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이해한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랜드 파이널' 2회에서 홍진호는 '왕따' 김경훈과 '꼴찌' 임요환을 무심한 듯 챙기면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드러냈다. 김경훈이라는 청년은 도대체 눈치가 없어선지 일부러 그러는지 계속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왕따로 만들었다. 설정이 아니라 그게 본모습이라면 너무 요령이 없는 것 같아서 안스럽기도 했지만, 솔직히 별로 호감가는 인물은 아니었다. 장동민을 필두로 한 다수 연합에서는 절대로 김경훈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가 끼어들려고 하면 노골적으로 피하거나 밀어냈다. 그러다가 이상민은 김경훈을 받아주는 척 하면서 상대(홍진호) 진영에 스파이로 보냈다. 1회 때 베풀었던 은혜조차도 나중에 정치적으로 이용할 목적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1회에서의 삽질로 인해 김경훈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을 쳤는데, 믿을 수 없는 인물로 낙인찍혀 버린 그가 홍진호의 소수 연합에서인들 반가운 존재였을 리 만무하다. 만약 내가 홍진호 팀에 있었더라도 김경훈의 합류는 달갑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홍진호는 뒤늦게 갑자기 불쑥 끼어들어 온 김경훈을 그냥 선선히 받아 주었다. 그냥 척 봐도 의심스럽기 짝이 없건만, 전혀 의심하는 기색 없이 손을 잡아 주었던 것이다. 특별히 은혜를 베푼다는 기색도 없이, 아주 무덤덤하고 자연스럽게 김경훈을 한 팀으로 받아들여 준 홍진호는 끝까지 똑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툭하면 과하게 의리를 강조하며 끌어안고 난리치는 정치꾼들과는 무척이나 다른 태도였다. 



또한 홍진호는 가넷 보유량이 가장 적어서 탈락 후보가 될 것 같은 임요환을 어떻게든 구해주고 싶어했다. 우승을 위한 공격적 전략이 아니라, 패하더라도 최악의 사태만은 면하고자 하는 방어적 전략이었다. 홍진호의 이와 같은 자세는 소극적으로 비춰질 수 있었기에 같은 팀 구성원인 이준석은 그에 살짝 불만을 표시했다. 어쩌면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게임에 참여한 이상 최우선의 목표는 우승으로 잡아야 하는 거니까, 그래야 재미도 있고 의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홍진호의 인간적인 태도가 좋았다. 어려운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것이야말로 진실한 의리였다. 


홍진호가 애써 붙잡아 주려 했음에도 임요환은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기사 제목의 스포일러 덕분에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데스매치는 일부러 시청하지 않았다. 나는 임요환과 홍진호가 장동민의 손에 처참하게 패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장동민은 참 능력있는 사람이다. 게임 자체를 풀어나가는 머리도 비상하고, 이상민 못지 않게 정치적 수완까지 좋다. 그래서 어쩌면 시즌3에 이어 시즌4의 우승도 그의 것이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조금씩 들기도 하는데, 개인적 바람으로는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능력있는 사람'이 잘 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좋은 사람'이 잘 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좀 뜬금없는 소리지만 '식스틴'에서 박진영은 어린 소녀 제자들에게 "욕설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면서 "조심하지 말고, 아예 조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어라" 라는 말을 했다. 남들이 있거나 없거나, 누가 보거나 안 보거나, 공적인 자리에서나 사적인 자리에서나,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 공적인 자리에서만 의식적으로 '조심'하다가는, 언젠가는 은연중에 본모습이 툭 튀어나와서 꼭 걸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맞는 얘기다. 실수였든 뭐였든 사람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그 사람 자체를 의미한다. 좋은 사람은 좋은 말을 하고, 나쁜 사람은 나쁜 말을 한다. 



홍진호는 최근 '크라임씬'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부디 이번에도 시즌1에 이어 정정당당한 외톨이의 통쾌한 반란을 제대로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탈락한 임요환도 마지막 소감에서 그런 바람을 표현했다. "다수 연합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걸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게 지니어스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죠. 진호가 그걸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네요!" 예상컨대 홍진호는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화려한 언변이나 정치적 수완은 부족해 보이지만, 그는 참 볼수록 빛을 발하는 가치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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