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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무지개' 유이와 정일우의 사랑을 이룰 유일한 방법 본문

드라마를 보다

'황금무지개' 유이와 정일우의 사랑을 이룰 유일한 방법

빛무리~ 2014. 3. 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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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컨대 2011년작 '프레지던트'는 손영목 작가의 최대 야심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복잡하고 험악한 정치판의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공정한 시각으로 묘사한 '프레지던트'는 정말 수준 높고 괜찮은 드라마였다. 그러나 단순하면서도 자극적인 스토리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는 분위기 자체가 매우 낯설고 내용도 어려운 편이었다. 결국 '프레지던트'는 최수종, 하희라 부부의 열연에도 줄곧 4~5% 내외의 낮은 시청률로 고전하다가 경쟁작이었던 '대물', '싸인'의 높은 화제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쓸쓸히 종영을 맞이했다. 특별히 아끼는 작품을 야심차게 선보였으나 대중으로부터 차갑게 외면당한 손영목 작가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리 경력 수십년에 이르는 베테랑이라도 결코 면역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2012년, 자극적 스토리와 막장에 가까운 출생의 비밀로 무장한 '메이퀸'을 들고 돌아온 손영목 작가는 26~27%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로 안방극장의 주말을 장악하며 승승장구했다. 솔직히 '프레지던트'와 '메이퀸'은 같은 작가가 썼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그 성향과 색채가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한국 드라마의 현실을 새삼 뼈아프게 절감했으니, 좋은 작품을 쓰고 싶은 글쟁이로서의 열망이 아무리 크다 한들 현실적 추세를 거슬러 독야청청하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시청률의 달콤한 열매를 잊을 수 없었던지 손영목 작가는 1년 후 '메이퀸'의 아류작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황금무지개'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물론 세부적 스토리는 다르지만 전체적 구도와 설정을 볼 때 '황금무지개'와 '메이퀸'의 유사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씩씩한 캔디형 여주인공은 원래 부잣집 딸이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가난한 양부에게 입양되고, 성장해서는 원수의 아들(또는 그 하수인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 원수는 '절대악'과 같은 존재로서 모든 갈등과 비극이 그 악역 한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따라서 드라마의 초반은 억척스런 여주인공의 성장기, 중반은 원수의 아들과 나누는 애틋한 사랑, 후반은 절대악인 원수와의 끝판 대결... 대충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원수의 뿌리 깊은 악행은 여주인공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어 자극적인 조미료처럼 작품 전체에 골고루 뿌려진다. 그 원수가 하필 여주인공의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설정도 똑같다.

 

'메이퀸'의 엔딩 부분에서 작가는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지, 여주인공 천해주(한지혜)가 원수 장도현(이덕화)의 친딸이었다는 파격적 설정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선택은 지나친 무리수였고, 끝까지 충성하며 재미있게 보던 시청자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그런 욕심이 있었다면 장도현을 웬만큼 용서 가능한 복합적 악역으로 설정했어야 하는데,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악마로 그려 놓았으니 친애비고 뭐고 처음부터 화해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비록 장도현이 뉘우치면서 자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간의 악행은 자결한다 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그의 딸이었다는 설정은 여주인공 천해주의 깨끗한 이미지만 더럽혀 놓았을 뿐이다. 덕분에 줄곧 잘 나가던 '메이퀸'은 실컷 욕을 먹으며 종영하고 말았다.

 

 

처참한 실패의 기억 때문인지 '황금무지개'의 여주인공 김백원(유이)은 친할머니 강정심(박원숙) 여사의 핏줄임을 작가는 계속 암시하고 있는 중이다. "백원이 니는 내를 닮았으니 잘 해낼끼다. 꼭 이겨낼끼다!" 치매에 걸린 강정심이 친손녀 김백원에게 평생의 기업 '황금수산'을 부탁하며 수없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네가 나를 닮았다'는 대전제이다. 김백원은 결코 절대악 서진기(조민기)의 핏줄이 아니니, 나중에 뒤통수 맞을 염려 없으니 안심하고 보라는 제스처 같아 살짝 우습기도 하다. 어느 덧 40부작으로 예정된 '황금무지개'도 33회를 넘어서 종영까지 불과 7회를 남겨두고 있는데, 어린 자신을 유괴하여 불행의 늪에 빠뜨리고 생부 장덕수와 양부 김한주(김상중)를 살해한 원수 서진기에게 당당히 맞서 승리할 김백원의 활약이 기대된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남주인공 서도영(정일우)의 포지션이다. '메이퀸'의 남주인공 강산(김재원)은 여주인공 천해주와 마찬가지로 절대악 장도현에게 원한을 품은 인물이었다. 따라서 두 사람의 결합에는 별다른 장애물이 없었고, 같은 원수와 맞서 싸우며 그들의 사랑은 더욱 굳건해질 뿐이었다. 천해주의 예전 연인이었던 박창희(재희)가 장도현의 하수인 박기출(김규철)의 아들이라서 약간의 갈등은 있었으나, 박창희는 주인공이 아니라 조역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황금무지개'의 서도영은 분명한 남주인공이며, 여주인공 김백원의 유일한 연인이다. 그런 서도영이 절대악 서진기의 친아들이라는 잔인한 운명은 도대체 어떻게 풀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서도영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그는 최선을 다해 김백원을 사랑했고 그녀를 위해 자신의 인생과 목숨을 걸었다. 자기 아버지의 악행을 알게 된 후에는 어떻게든 막아보려 애썼고, 현직 검사로서의 직위를 이용해 서진기를 잡아들여 압박 수사까지 진행했다. 부자의 연을 끊겠다 결심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김백원과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지 못할 게 없다고 확신해 온 서도영이었다. 하지만 김백원의 정체가 '황금수산'의 상속녀 장하빈이었음을 알게 된 서도영은 끝내 무너지고 만다. 김백원의 양부 김한주 뿐만 아니라 생부 장덕수까지 죽이고 그녀가 누려야 할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 서진기의 아들로서,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할 자격이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너에게 모든 것을 되돌려 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거야!" 서슬 푸른 눈매에 굳은 결심이 가득찼다. 감히 그녀의 곁에 설 수는 없지만, 그녀의 빼앗긴 인생을 돌려줌으로써 아버지 대신 속죄라도 하고 싶었다. 이미 '황금수산'을 장악한 서진기의 힘이 공권력에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신참 검사의 재량으로는 도저히 그를 붙잡을 수 없음을 절감한 서도영은 미련없이 검사복을 벗어 던지고 아버지 밑으로 들어간다. 원수의 턱 밑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겠다는 뜻인데, 과연 서도영은 친아버지를 상대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악인이라도 부모는 부모인데, 연인의 복수를 위해 천륜을 거스른다면 그 사랑을 아름답게만 볼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자격 없음을 느낀 서도영은 이미 김백원에게 이별을 고했다. "무슨 이유가 있겠어? 이젠 너한테 싫증났을 뿐이야!" 하지만 김백원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연인의 진심을 믿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 난 기다릴 거야!" 과연 이들의 애틋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 한다 치면, 김백원은 서도영의 모습에서 때때로 서진기를 발견하고 몸서리치게 되지 않을까? 부모의 원수는 불공대천이라 하였는데 제 아비를 죽인 자의 아들과, 제 아비가 죽인 자의 딸과 함께 한다면 두 사람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지 않을까? 내 생각에 해법은 하나뿐이다. 알고 보니 서도영은 서진기의 친아들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엔딩 무렵에 출생의 비밀 카드를 한 번 더 써먹는 것이다.

 

 

서도영의 친모가 누구인지, 서진기가 어쩌다가 서도영을 낳게 되었는지 등 서도영 출생의 내막은 이제껏 하나도 밝혀진 게 없다. 그러니 딱히 공들일 것도 없이 아주 쉬운 뒤집기가 가능하다. 서진기에게 버림받고 앙심을 품은 서도영의 생모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아 서진기의 아들이라 속였다는 정도의 간단한 설정만 집어 넣으면 만사 오케이다. 그렇게 되면 김백원과 서도영의 사랑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어진다. 어차피 서진기는 도영을 슬하에 받아주기만 했을 뿐 아비로서의 사랑은 주지 않았고, 성장 과정에서의 물질적 지원도 따지고 보면 강정심 여사에게서 나왔으니까 서도영은 서진기에게 빚진 것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이렇게 쉬운 해결책이 있기는 한데... 출생의 비밀 카드를 사용해야만 이룰 수 있는 사랑이라니 얼마나 식상하고 허무한가? 원수의 아들과 딸이 사랑하는 이야기는 이쯤하면 그만할 때도 되었다. 모든 남녀 주인공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여버릴 수도 없는데 똑같은 테마를 무한 반복하고 있으니, 이것은 셰익스피어 이후로 수백년 동안 지속되어 온 작가들의 직무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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