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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딸 수백향' 조현재와 백제 왕조의 범상찮은 인연 본문

드라마를 보다

'제왕의 딸 수백향' 조현재와 백제 왕조의 범상찮은 인연

빛무리~ 2014. 3. 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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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부작으로 조기종영이 결정된 이후 '제왕의 딸 수백향'은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애초 예정이던 120회에서 무려 12회가 축소된 만큼 스토리 진행이 빨라지는 것은 당연지사라 하겠으나, 요즘 같아서는 이토록 재미있고 수준 높은 작품을 시청률 때문에 조기종영한다는 사실이 그저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어중간한 밤 9시대의 드라마치고 10%를 넘기는 시청률이면 그리 낮은 편도 아닌 듯한데, 황금 시간대인 10시 타임의 수목드라마들도 현재 10% 내외의 시청률로 고만고만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굳이 '수백향'을 조기종영하면서까지 후속작을 빨리 내보내겠다는 방송사의 고집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진짜 수백향인 언니 설난(서현진)을 대신하여 공주 노릇을 하던 설희(서우)는 결국 정체가 밝혀져 초라한 냉궁으로 쫓겨나고, 태자 명농(조현재)은 고구려의 국경 침탈에 대응하여 군사를 이끌고 선봉에 나선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농이 개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연불태(김병옥)는 전쟁을 기회삼아 명농을 없애고 진무(전태수)를 옹립하려는 음모를 꾸미는데, 수백향의 이름과 공주의 작위를 박탈당하고 '명비녀 부연'이라 불리게 된 설희는 장차 진무와 혼인하여 황후가 되려는 욕심으로 연불태를 도와 고구려 장수 을밀과 내통한다. 그로 인해 명농은 고구려 군의 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하지만, 다행히 몸을 숨겼다가 무사히 귀환한다. 명농의 안위를 빌며 매일같이 불전에서 절을 올리던 설난의 가슴은 애닳다 못해 무너져 내리지 않았으려나.

 

그런데 진무는 어쩌다가 설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버렸을까? 자기 것이 아닌 권력을 어떻게든 손에 쥐어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녀의 모습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명농을 꺾고 태자가 될 수 없는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느꼈던 걸까? 냉궁에 유폐된 설희의 비참한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던 진무는 그녀를 데리고 궁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설희는 절대 궁을 나갈 수 없다고 몸부림치다가 엉겁결에 진무의 몸을 칼로 찌르고 말았다. 진무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애끓는 부성애가 폭발한 무령왕(이재룡)은 서슴없이 단도로 자신의 손을 그어 뚝뚝 떨어지는 피를 진무의 입에 흘려 넣는다. 친아비의 피가 자식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민간요법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러자 위독하던 진무의 병세는 거짓말처럼 호전되고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와 같은 모습을 지켜보던 명농은 자신과 진무의 출생에 비밀이 있음을 직감한다. 진무가 자객을 보내어 수백향 일가를 몰살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 무령왕이 진무를 붙잡고 오열하며 "이 아비가 죽으련다. 아비를 때려다오!"라고 외치던 그 순간부터 시작된 불길한 예감이었다. 부왕이 가장 아끼는 염주를 자기가 아니라 진무에게 준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결국 명농은 내관 홍림(정석용)을 다그쳐 진실을 알아내고야 만다. 자기가 무령왕의 아들이 아니라 세상을 떠난 동성왕의 친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명농의 충격은 매우 컸다. 무령왕을 진심으로 흠모하며 그의 아들로서 커다란 자긍심을 느껴 왔기에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겨웠던 것이다.

 

명농은 기세등등한 군사들을 이끌고 다시 전쟁에 나선다. 내친김에 고구려에 빼앗겼던 영토의 일부까지 되찾으려는 것이었다. 진무를 함께 보내달라는 명농의 청에 무령왕은 고민하지만, 진무는 이번 기회에 공을 세워 신분을 회복하라는 연불태의 조언에 따라 전쟁에 동행한다. 전쟁은 다시금 승리로 끝나고 영토를 수복한 명농과 진무는 영웅이 되어 당당히 개선한다. 명농이 진무를 전쟁에 데려간 것은 그를 해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공을 세우게 하려는 것이었다. 죄를 지어 황족의 작위를 박탈당한 진무를 이끌어 전쟁 영웅으로 만든 후, 무령왕의 친자인 그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도할 생각이었다. 이는 무령왕의 마음을 헤아리는 효심 때문일까? 아니면 태자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사랑하는 설난과 멀리 떠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명농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진무의 마음이 어떠할지를 미처 예상치 못했다. 명농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진무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는 이제껏 무령왕이 자신의 생부 동성왕(정찬)을 해친 줄만 알고 지옥같은 원한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원수인 줄 알았던 무령왕이 자신의 생부였던 것이다. 생사를 오가는 전쟁에서 일말의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 진무는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변방으로 떠나려는 참이었다. 설희의 칼에 찔려 죽을 뻔했지만 사랑을 끊어낼 수는 없었기에, 전쟁 공로에 대한 포상으로 그녀를 풀어달라 청하여 함께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무령왕이 친아들인 자기를 버리고 명농을 선택했음을 알게 되자 엄청난 배신감과 분노가 밀려왔다.  

 

 

어차피 '수백향'의 결말은 해피엔딩일 수 없다. 설난과 명농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욕망 때문에 미쳐버린 설희도 파멸의 늪에서 구원받기는 힘들 것이다. 모처럼 개과천선하려다가 친부 무령왕에 대한 복수심으로 다시 칼을 움켜쥔 진무의 앞날도 평탄할 것 같지는 않다. 이쪽을 봐도 저쪽을 봐도 온통 비극 예감 투성이다. 여주인공 설난은 한없이 밝고 투명하고 씩씩한데, 그녀에게 주어진 삶은 어찌 이토록 가혹한 것일까? 어쩌면 그들의 인생은 온통 슬픔으로 가득한 백제 말엽의 역사를 닮았다. 무령왕이 승하하면 태자 명농이 보위에 올라 성왕이 될 것인데, 백제 성왕은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임금이었다.

 

이쯤에서 나는 배우 조현재와 백제 왕조의 범상찮은 인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현 작가와 이병훈 PD의 2005년작 '서동요'에서 주인공 무왕(서동) 역을 맡았던 조현재의 열연은 정말 대단했다. 사극의 거장 이병훈 감독은 조현재를 주인공으로 낙점한 이유에 대해 "서동은 비운의 왕자로서 얼굴에 기품이 있으면서도 그늘이 서려야 하는데, 조현재는 기품과 그늘을 겸비한 얼굴을 지니고 있어 서동 역할에 제격이었다."고 말했다. 과연 그 선택은 탁월했다. 고결하면서도 슬픔 가득한 얼굴로 종횡무진 브라운관을 누비는 서동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저렸다. 그런데 이제 8년의 세월이 흘러, 조현재는 다시 백제의 임금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무왕이 아니라 성왕이다. 무왕은 전쟁 영웅이자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기억되지만 성왕은 훗날 치욕의 왕, 슬픔의 왕으로 기억된다. 그래서였을까? 조현재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예전보다 더욱 짙어 보였던 것은.  

 


돌이켜 보니 '서동요'는 바로 성왕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는 일이 평생 숙원이었던 성왕은 고구려와의 전쟁에 앞서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었지만, 진흥왕의 배신으로 오히려 신라 군사에게 기습을 받아 어이없이 전사하고 말았다. '서동요'에서는 이 죽음을 최대한 비극적으로 묘사했다. 백제 성왕이 신라의 이름없는 병사 앞에 무릎 꿇려지고 목이 베였으며, 그 수급은 신라 왕궁의 북청계단 아래에 묻혀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혔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치욕적이고 슬픈 운명의 왕이 또 있으랴! 수십 년 후 백제 왕실에서는 성왕의 수급을 되찾아 오기 위해 신라와 협상을 벌이는데, 아좌태자(정재곤)를 보필하여 협상의 내용을 주도한 사람은 훗날 무왕이 될 서동이었으며 신라 측 대표는 바로 선화공주(이보영)였다.

 

남주인공 명농의 최후가 처참한 비극이고 머잖아 소멸하게 될 백제의 운명 또한 서럽기 그지 없는데, 이 드라마의 결말이 행복하다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겠는가? 명농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으나, 설난(수백향)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나의 예상으로는 일부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일본 황후가 되거나 또는 초야에 은신하거나 둘 중 하나일 듯하다. 그런데 만일 작가가 해피엔딩에 집착한다면, 혹시 명농과의 혼인이 가능할 수도 있을까? 무령왕의 친아들 진무가 훗날의 성왕이 되고, 태자 자리에서 물러난 명농은 설난과 함께 떠나는 결말도 가능할까? 하지만 그건 너무 억지스럽다. 나는 차라리 짙은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새드엔딩이면 좋겠다. 슬픔의 역사 속을 묵묵히 걸어간 그들의 발자취를 고요히 되새길 수 있도록 은은한 향기를 남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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