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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행복한 왕자 이종석, 눈물겨운 작별의 키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행복한 왕자 이종석, 눈물겨운 작별의 키스

빛무리~ 2013. 6. 2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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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춘심(김해숙) 아줌마가 죽는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고 억울하고 슬픈 일이라, 저는 설마 아닐거야, 아닐거야... 계속 되뇌이고 있었지요. 아무리 드라마 속의 일이라지만 그래도 정말 믿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민준국(정웅인), 이 나쁜 놈, 천벌을 받을 놈은 스패너로 춘심 아줌마의 머리를 때리고 손발을 테이프로 묶은 뒤 가게에 불을 질러 처참히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선량하고 따뜻하고 용감하고 정의롭던 우리의 국민엄마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혹시 딸이 복수심에 사로잡혀 불행해질까봐 "사람 미워하느라 네 인생 낭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렇게 떠났습니다. 자기에게 그토록 잘해주던 아줌마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칠 때, 그 놈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차 있었을까요? 이제 민준국의 과거에 그 어떤 아픈 사연이 있었다 해도 정상참작의 여지는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이 사건을 맡게 된 차관우(윤상현)는 평소 자기의 신념과 방식대로만 행동하는군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고, 피고인의 입장에 서서 그를 믿고 이해하며, 최대한 형량을 줄이거나 무죄를 받아내려 하는, 뭐 그런 정당하면서도 인간적인 방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전까지는 그렇게 멋있어 보였던 차관우의 태도가 이번에는 속 터지게 답답하고 심지어 찌질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진실을 모르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고 차관우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건만, 차라리 거짓 증언을 조작해서라도 민준국이 유죄 판결을 받게 하려던 검사 서도연(이다희)과 그 아버지 서대석(정동환)의 방식이 이번에는 더 속시원하고 옳아 보이기까지 하네요. 옳은 결과를 끌어낼 수만 있다면 방식은 옳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위험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피해자 입장에 지나치게 몰입한 거겠죠? 이제껏 여주인공 장혜성(이보영) 캐릭터에는 별로 큰 애정을 느끼거나 몰입을 하지 못했는데, 그 어머니인 춘심 아줌마 캐릭터에는 저도 모르게 너무 애정을 주고 있었나봐요. 진심으로 장혜성을 사랑하며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차관우와 신상덕(윤주상) 변호사 쪽이건만, 감정에 흔들리기 보다 원칙을 준수하려는 그들에겐 오히려 배신감이 느껴지고, 억지 방식으로나마 장혜성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려는 서도연 부녀 쪽이 더 고마운 사람들 같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민준국의 뻔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차관우를 보면 순진한 게 아니라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고, 혜성을 사랑한다면서도 너무나 이성적인 지금의 자세에는 화가 날 지경입니다.

 

 

민준국 같은 천하의 악인을 등장시켜 놓고, 변호사의 본분과 양심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의도가 저는 매우 아리송합니다. 신상덕과 차관우를 통해서는 아무리 악인이라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피해자인 장혜성의 입장에서 속 터지는 심경을 모른체 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어차피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고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닌데, 그저 '참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만약 신상덕과 차관우를 통해 주제를 구현하고 싶었던 거라면, 민준국 정도의 극심한 사이코패스를 내세워서는 안 되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그건 두고 보면 알 수 있겠죠. 앞으로의 스토리엔 무슨 반전이 있을까요?

 

그 반전의 열쇠는 차관우가 아닌 박수하(이종석)의 손에 쥐어져 있는 듯합니다. 차관우는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아픔과 억울함을 못 느끼지만, 박수하는 진실을 알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인 장혜성 만큼이나 큰 고통을 느끼고 있거든요. 장혜성이 어머니를 잃게 된 원인은 10년 전 법정에서의 증언 때문이니, 괜한 미안함과 죄책감까지 더해져 박수하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물론 사람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을 가졌다 해서 모든 진실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박수하는 진실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 있는 셈이죠. 그런 박수하가 판단하기에, 법과 원칙이란 참으로 무력하고 초라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일어섰군요.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설령 목적을 이룬다 해도 자기 인생은 덫에 걸리게 될 것임을 결코 모르지 않으련만, 과감히 정의의 칼을 손에 쥐고 민준국을 찾아나서는 박수하의 모습은 더없이 비장하고도 아름다웠습니다. 혜성과 관우가 서로 좋아하고 있음을 알기에, 수하는 아픈 가슴 억누르며 그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도와주었죠. 그리고 자기는 사랑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 갔습니다. 이 선량한 초능력 천사는 이제껏 복수 따위는 생각도 안 하고 살아왔어요. 8살 어린 나이에 눈앞에서 아버지가 처참히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그 후 10년 동안 박수하의 마음속을 지배해 온 것은 살인범 민준국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라 용감하게 증언을 해 주었던 장혜성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잠시 키워주던 고모부에게서도 야멸차게 버림을 받았지만, 깊은 상처는 받았으되 원망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복수의 칼이 아닙니다. 장혜성의 복수를 대신 해주면서 동시에 자기의 복수도 할 수 있는 셈이긴 하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복수가 아니에요. 민준국이 무죄 판결을 받아 풀려나면 다음 차례로 노릴 피해자는 바로 사랑하는 그녀이기에, 박수하는 그녀의 신변에 닥칠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해 주려는 것이죠. 간신히 유죄 판결을 내려 감옥에 잡아 넣는다 해도, 어차피 몇 년 살고 나와서 또 다시 그녀를 노릴 테니까요. 그래서 차라리 잘 됐노라고,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고 차관우 변호사에게 마음속으로 인사까지 하면서, 박수하는 정의의 칼을 휘두르러 떠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사랑을 위한 박수하의 결단은 더없이 숭고한 것이었어요. (분명 살인을 결심한 듯한 눈빛이었는데, 그것을 숭고한 결단이라고 말하다니... 저도 이런 제가 놀랍습니다..;;)

 

홈페이지에 서술된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를 보면, 초능력을 지녔으나 미성년자라서 운신의 폭이 좁은 박수하는 '왕자'이고, 변호사라는 신분을 통해 박수하의 능력을 대신 활용하며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장혜성은 '제비'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 아시죠? 불쌍한 사람을 도우려 자기 몸의 보석들을 모두 주었지만 결국엔 초라한 모습으로 버려지는 왕자... 그런 왕자의 부탁을 받고 보석을 물어다 대신 사람들을 도왔지만 추워진 날씨를 감당 못하고 죽어버린 제비... 비록 하늘에서는 왕자의 찢겨진 심장과 제비의 시체를 가장 귀한 보물로 거두었다지만 그거야 하늘의 일이고, 지상에서는 더없는 비극으로 끝나버린 동화였죠. 기획 의도뿐만 아니라 극 중 5회에서 박수하가 손에 들고 있던 책도 그거였고, 확실히 이 드라마는 '행복한 왕자'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 같긴 합니다. 그렇다면 '너목들'도 새드엔딩을 맞이할 수밖엔 없는 걸까요?

 

 

그런데 지금 박수하의 행동은 '행복한 왕자' 보다 차라리 '인어 왕자'에 가까워 보입니다. '행복한 왕자'라면 박애주의적인 성향이 짙게 나타나야 하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한 사람에게 목매는 일편단심 같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아무 말도 없이 자기를 희생하려는 그 모습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 공주'를 떠올리게 합니다. 더구나 8회 엔딩에서 두 사람이 헤어지던 배경이 하필 수족관이라, 마치 푸른 물 속에 잠겨 있는 듯하던 모습들이 얼마나 애잔하던지요. 애써 태연한 척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돌아섰지만,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음을 알기에 박수하의 눈에서는 참지 못한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다시 되돌아와 그녀를 안고 기습적으로 퍼부어댄 작별의 키스... 현실적으로 보면 어처구니 없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 드라마는 동화인 걸요. 너무 슬프고 무거운 스토리에 터질 듯 답답해진 가슴을 달래주는 것은, 눈물로 촉촉히 젖은 천사의 입맞춤이었습니다. 그 감미로움 하나에 기대어 또 다음 주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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