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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정의와 선의가 충돌할 때, 당신의 선택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정의와 선의가 충돌할 때, 당신의 선택은?

빛무리~ 2013. 6. 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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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6회가 지나도록 초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스릴 넘치는 전개를 이어가고 있으니,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하 '너목들')는 점점 더 명작의 향기가 짙어지는 듯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표현함에 가벼운 코믹과 멜로를 섞어 받아들이기 쉽게 하는 기법이 과하지 않고 적정선을 지켰기에 매우 훌륭하다 생각되고요. 매력적인 인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서로 어울림마저 좋다 보니 그 달달함에 빠져들기 십상인데, 그러다가 느슨해질만하면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보임으로써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합니다. 그러니 한시도 쫄깃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고 지루해질 틈이 없군요. 흐름의 강약을 조절하는 작가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저는 이 작품을 계기로 지금껏 주목하지 않았던 박혜련 작가의 이름을 항상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난 해 '추적자'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던 박경수 작가의 이름을 뇌리에 깊이 새긴 것처럼 말이죠.

 

1~4회까지도 각 회차의 엔딩은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5~6회의 엔딩에서 작가는 연달아 시청자의 뒤통수를 쳤습니다. 5회 엔딩 반전의 주인공은 살인 사건의 피고인 쌍둥이 형제였고, 6회 엔딩 반전의 주인공은 이 드라마에서 악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민준국(정웅인)이었죠. 그런데 차분히 생각해 보면 5회와 6회의 엔딩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겉모습만으로는 진실을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그 첫번째이고, 정의와 선의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그 두번째입니다.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자면 쌍둥이 형제 살인 사건은 비록 일회성 에피소드로 마무리 되었지만, 그 와중에 엎치락 뒤치락 2차례의 반전을 거듭하며 꽤나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었죠. 처음의 분위기로 봐서는 분명 장혜성(이보영)이 맡게 된 동생 정필승(한기원)은 선량한 인물이고, 차관우(윤상현)가 맡게 된 형 정필재(한기웅)는 악랄한 인물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재판을 지켜보던 박수하(이종석)가 초능력으로 쌍둥이 형제의 마음을 읽어냄으로써, 사실은 그들이 짜고 치밀한 계획하에 살인을 저질렀음이 밝혀졌군요. 자기 피고인에 대한 믿음으로 검사 서도연(이다희)과 맞서고 있던 장혜성으로서는 충격받지 않을 수 없는 진실이었습니다.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장혜성은 서도연과 함께 작전을 짰고, 결국 '죄수의 딜레마' 법칙을 이용하여 쌍둥이 형제의 공동정범 사실을 입증해 냈습니다. 공범끼리 서로를 믿지 못하게 함으로써 각자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방식이죠. 그런데 죄수의 딜레마보다 더 웃기는 것은 법률의 모순이더군요. 본인의 자백만이 유일한 증거일 때는 범죄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자백한 쪽은 무죄가 성립하지만 공범의 자백이 증거가 됨으로써 오히려 자백하지 않은 쪽은 유죄가 된다는, 이 코미디 같은 법률의 헛점이 없었다면 똑똑한 쌍둥이 형제는 결코 장혜성의 작전에 넘어가거나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상덕(윤주상) 변호사가 호되게 장혜성을 질책하기 전까지, 저는 장혜성의 행동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용감하게 인정했고, 진실을 밝히는 데 성공하여 죄 지은 자를 벌 받게 했으니 당연히 잘한 일이라고만 생각했지요. 게다가 변호사 장혜성과의 대화 중에 거짓말이 들통나자 더없이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던 정필승은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며 냉혹한 어조로 장혜성을 협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가증스런 모습을 보며 공포와 분노를 느끼고 있던 차에, 장혜성의 멋진 승리는 그야말로 통쾌할 뿐이었어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쌍둥이 살인범 역할을 했던 두 배우는 실제로 일란성 쌍둥이인 신인배우 한기원(정필승 역)과 한기웅(정필재 역)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봐도 1인 2역 같지는 않은데 너무 닮아서 신기하다고 생각했었죠. 쌍둥이 형제가 나란히 배우가 되다니 참 신기하고도 반가운 일이네요. 게다가 연기력도 괜찮고... 앞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들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상덕 변호사는 쌍둥이 형제의 재판을 보고 장혜성에게 큰 실망을 드러냈습니다. 유죄를 입증하여 벌을 주려는 것은 엄연히 검사의 역할이고, 변호사는 최대한 자기 피고인의 입장에 서서 형량을 줄여주는 등 유리한 판결을 끌어내야 하는데, 도리어 검사와 연합하여 자기 피고인을 궁지로 몰아간 장혜성의 행동은 변호사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거였다면서 말이죠. 글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저는 별로 공감이 되지 않더군요. 피고인이 변호사에게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한다면야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만, 가증스럽게 자기 변호사마저 속이면서 협박하는데 그 와중에 어떻게 피고의 입장을 헤아릴 것이며 또 무슨 방법으로 진실을 밝히겠습니까?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피고인이 끝내 비협조적이라면, 어떻게든 진실부터 밝히는 게 먼저 아닐까요? 멍청하게 속아서 죄 있는 자를 무죄로 풀어주는 게 변호사의 역할은 아니잖아요?

 

신상덕 변호사도 그런 뜻은 아니었을진대, 다른 방법이 없던 상황에서 무턱대고 장혜성을 '변호사 자격이 없다'며 몰아세우는 모습은 좀 보기 불편했습니다. 사실 죽임을 당한 피해자는 정필승의 애인을 성폭행한 후 그 동영상을 여자의 직장에 뿌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던 나쁜 놈이었죠. 애인의 고통을 참지 못한 정필승은 쌍둥이 형과 짜고서 보복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고요. 이와 같은 사정을 알고 나니 일말의 동정심이 생기기는 했지만, 어쨌든 쌍둥이 형제는 시종일관 변호사에게 비협조적이었고 가증스런 거짓말로 일관했으며, 심지어 궁지에 몰리자 서로 상대에게 책임을 돌리고 혼자 빠져나가려는 파렴치함까지 보여주었기에, 저는 장혜성의 선택이 여전히 옳았다고 생각되더군요.

 

 

오히려 장혜성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차관우였습니다. 장혜성이 검사와 짜고 쌍둥이 형제의 유죄를 입증하는 바람에 정필재를 변호하려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자기는 바보가 되어 버렸는데도 차관우는 화를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신변호사와 사무관 앞에서 적극적으로 장혜성을 변호해 주었습니다. "짱변은 짱변의 방식대로 진실을 밝혀낸 거니까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생각합니다!" 와... 이렇게 이해심 많고 멋진 남자가 또 있을까요? 차관우의 인품을 한 눈에 알아보고 사윗감으로 점찍은 혜성이 엄마 어춘심(김해숙)의 탁월한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상덕이 던져준 메시지는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것이었죠. 먼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장혜성의 입장이 '정의'에 해당한다면, 먼저 피고인의 편에서 그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사건을 봐야 한다는 신상덕의 입장은 '선의'에 해당합니다. 그는 '변호사로서의 본분'을 내세웠지만, 꼭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정의와 선의가 충돌하는 경우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에요. '좋은 게 좋다'를 모토로 삼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그런 경우에 주저없이 '선의'를 택하곤 하지요. 분명 틀렸는데도 굳이 따지지 않고 대충 덮어주면서 넘어가면 '사람 좋다'고들 합니다. 옳고 그름을 조목조목 따지면 '사람 쪼잔하고 치사하다'고들 합니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못인 줄 모르고, 벌을 받게 되면 오히려 억울하다 난리치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그런 게 무척이나 싫었어요. 변호사이면서 검사 역할을 해 버린 장혜성의 선택에 여전히 박수를 보내는 이유도 저의 이런 성향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엄격히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너그러운 선의로 감싸고 넘어가는 편이 더욱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는 없겠죠. 정의를 내세워 죄인을 질책하기보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감화시켜 뉘우치게 만드는 것은 종교의 순기능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되는 경우가 있고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정의가 우선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선의가 우선해야 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판단 못 하면, 충분히 선의로 감복시킬 수 있었던 사람을 모질게 다그침으로써 오히려 독기만 품게 할 수도 있고, 엄한 정의로 꾸짖어 바로잡을 수 있었던 사람을 느슨하게 풀어줌으로써 구제불능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예요. 10년 전 박수하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지금은 장혜성의 목숨을 노리는 민준국, 그를 상대하는 해결책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강인한 청년으로 성장한 박수하가 늘 장혜성의 곁을 지키고 있는 바람에 계획이 여의치 않게 된 민준국은 1차 목표를 변경하여 장혜성의 모친 어춘심에게 접근합니다. 장혜성이 세상 만사에 무심한 듯 시크한 와중에도 틈틈이 드러내는 의협심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듯, 괄괄하면서도 따스하고 정의로운 어춘심은 더없이 매력적인 국민엄마 캐릭터인데요. 이 정겨운 아주머니가 영문도 모른 채 사이코패스 민준국에게 처참히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오는 것 같죠. 이 두려움은 아마도 모든 시청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텐데요. 행여나 그 못된 놈에게도 선의가 통하지 않을까, 어쩌면 춘심 아줌마의 따스한 애정이 꽁꽁 얼어붙은 준국이의 마음도 녹여줄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품게 하는 장면이 있었더랍니다.

 

민준국은 가까운 곳에서 기회를 노릴 속셈인지 어춘심이 경영하는 치킨집에 알바생으로 취직을 하는데, 정 많은 춘심은 어느 새 준국의 생일까지 알고 챙겨 주네요. 뜨끈한 미역국을 보온병에 담고 맛갈스런 밑반찬들까지 정성껏 준비하여, 홀로 사는 준국이의 생일을 외롭지 않게 토닥여 줍니다. 쓸쓸한 표정으로 혼자 앉아서 그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는 민준국... 이 쪽에서는 그의 마수로부터 장혜성을 지키고 싶어하는 박수하가 어떻게든 그를 먼저 찾아내어 처리(?)하기 위해 휴대폰 위치 추적까지 의뢰하며 애를 쓰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춘심 아줌마의 생일 밥상 하나로 민준국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아까운 음식들을 모두 화장실 변기에 쏟아버리는 민준국의 냉혹한 표정을 보니, 그건 부질없는 꿈이었네요.

 

 

가족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 춘심에게 "죽었어요" 하고 섬뜩한 어조로 대답하는 걸 보니 어쩌면 민준국에게도 피 맺힌 원한과 잊지 못할 상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재판에서 사실대로 증언한 것뿐 아무 잘못도 없는 혜성에게 무려 10년 동안이나 원한을 품고 있던 것을 보면, 이 녀석은 오갈 데 없는 미친 놈입니다. 혜성이가 제 부모를 죽인 것도 아닌데, 몇 마디 증언한 것만으로 피 맺힌 원한을 품는다면 정상이라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민준국을 상대할 방법은 선의의 포옹이 아니라 정의의 칼이 맞는 것 같은데, 그 정의의 칼은 과연 어디에서 나올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휘두를 수 있을까요? 설마 경찰들 앞에서 박수하가 선언한 것처럼, 그 아이가 직접 찾아가 민준국을 죽이거나 하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결론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법정 안에서나 밖에서나 끝없이 정의와 선의가 충돌하는 전개를 보니, 작가가 꽤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어춘심이 민준국의 손에 죽는다면, 작가는 명백히 정의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봐야겠죠. 만약 그렇게 되었는데 변호사로서의 본분이니 어쩌니 하면서 신상덕 변호사가 피고 민준국의 편을 든다면, 모든 시청자들은 그의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어질 테니까요. 혹시라도 춘심 아줌마가 죽는다면, 그 때는 용서고 나발이고 없습니다. 민준국은 그냥 무조건 쳐 죽일 놈이 되고, 선의는 정의 앞에 여지없이 초라한 모양새로 무릎 꿇려지겠죠. 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결말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에, 절대로 어춘심은 죽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정의와 선의의 다툼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로, 영원한 화두로 남아있는 편이 더 나을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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