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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리플"을 끝내 외면하고 만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내가 "트리플"을 끝내 외면하고 만 이유

빛무리~ 2009. 7. 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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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C에서 방송되는 수목드라마가
"트리플"이죠. 많은 분들에게 질타를 받았고 시청률도 좋지 않고... 한편에서는 예쁘게 보아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트리플"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일본 선수를 롤모델로 한 드라마라거나, 주인공들의 사랑이 너무나 상식적이지 못하고 비정상적일 만큼 쿨해서 지겹다거나 등등... 굳이 김연아 선수와 연관된 내용을 들추지 않더라도 참 트집 잡힐 데가 많은 드라마 "트리플"인 것은 맞는 듯 합니다.




그래도 저는 아련히 여중시절에 즐겨 읽던 순정만화를 떠올리게 해주는 그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소재는 위험하지만 잘만 다루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의붓오빠를 향한 소녀의 애달픈 사랑도 그렇고, 친구의 아내를 향한 아슬아슬한 연정도 그렇고... 왠지 금단의 열매가 더욱 탐스러운 것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면서도 아프게 마음을 잡아끄는 면이 있으니까... 잠시 칼날처럼 아프게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묘사되겠지 했습니다. 설마 극단으로 치달을 거라고는 상상 못 했었지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 트리플과 상당히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지만 아주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던 강신재님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가 생각나더군요. 영화 및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었죠. 제 기억 속에는 드라마가 더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주인공인 여고생 숙희 역은 김혜수씨(당시 브라운관에 처음 데뷔할 무렵이니 실제 나이도 여고생이었을 겁니다)였고, 대학생 의붓오빠 현규 역은 이효정씨(좀 안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숙희를 사모하던 오빠 친구 지수 역은 정보석씨였습니다.

숙희와 현규 역시 부모님의 재혼으로 남매가 되었는데, 숙희는 차츰 현규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괴로워합니다. 숙희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짝사랑이라고도 느껴지지요. 숙희는 오빠와 마주치면 항상 비누 냄새를 맡게 되는데, 그러면 가장 고통스런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며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온다고 독백을 합니다(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너무 가슴아픈 대목이라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현규의 친구인 지수가 숙희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면서, 현규는 숨기지 못한 질투심을 드러냅니다. 두 사람은 서로 강하게 끌리면서도 아무런 표현을 하지 못한 채, 가슴앓이만 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렇게 드라마 "젊은 느티나무"는 원작에서처럼, 두 젊은이의 애끓는 감정을 차분한 절제와 더불어 보여주었고, 시청자로 하여금 도덕이나 윤리적 가치관을 떠나 미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트리플에는 절제의 미학이 거의 전혀 담겨있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순수해 보이고 매력적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그저 자기의 사랑만이 소중할 뿐, 타인이 받을 상처는 무시해버릴 만큼 이기적입니다. 그런 주인공이 가슴 아프다면서 눈물을 흘려봤자 시청자들은 공감할 수 없습니다.

철없는 여고생 이하루(민효린)가 결혼까지 한 의붓오빠 신활(이정재)에게 일방적으로 키스까지 하면서 마구 들이대는 모습이 상당히 거북스러웠지만, 그래도 좀 저러다 말겠지 하면서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서른 네살이나 된 유부남 신활이 조카뻘되는 의붓여동생 하루에게 휘둘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더 이상은 짜증스러워서 보고 싶지가 않습니다. 



절제심과 아예 담쌓은 인물은 또 있습니다. 친구와 이혼도 안한 현재의 부인인 것을 알면서도 무단 가택 침입까지 불사하며 계속 들이대던 장현태(윤계상)... 이제는 마음 접겠다고 하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 윤계상씨의 연기는 괜찮았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그 가슴아픈 눈빛을 저는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으니까요. 


얼마 전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예능 고참 PD인 김영희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밤샘 회의 후 아직 어둑한 새벽에 차를 몰고 집에 가는데,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에서 무심히 정지신호를 지켰다. 보통 때라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그날따라 어쩌다보니 규칙을 지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나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양심냉장고를 기획하게 되었다. 시청자들은 분명 지금 내가 느낀 감정처럼,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양심을 지키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매우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양심냉장고 아이템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올바른 것에 대한 갈망, 타인을 배려하는 것에 대한 갈망, 자기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절제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에 대한 갈망이 항상 내재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변해서 개인의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쿨함의 미학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왔다고 해도, 그 쿨함이 지나쳐서 기본을 무너뜨리게 되면 사람들은 다시 절제의 미학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작품은 이러한 인간의 심성을 고려하여 만들어질 때에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좋은 작품으로 탄생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트리플은 실패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지 모르지만, 주인공들이 이미 자기 감정대로 저지를 일은 다 저지르고 나서 되돌아 후회한다 해도 이미 그때는 늦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진 출처 - MBC드라마 "트리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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