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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생뎐' 의외로 괜찮은 아이들이 숨어있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신기생뎐

'신기생뎐' 의외로 괜찮은 아이들이 숨어있다

빛무리~ 2011. 4. 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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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생뎐'이 아주 많은 문제점을 지닌 드라마임은 확실합니다. 가장 큰 막장요소로 지적받고 있는 것은 역시 '기생'이라는 여주인공의 직업으로 인해, 현실에 존재하는 텐프로들의 삶이나 팁 문화 등이 모두 정당한 것으로 미화될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혹시라도 막장드라마의 필수 요소를 하나라도 빠뜨릴까봐 신경쓴 것처럼, 여기저기 복잡한 출생의 비밀과 불륜 코드마저 세심하게 채워넣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고전에서나 볼 수 있던 식상한 설정으로, 의붓딸을 구박하는 못된 계모마저 등장합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신기생뎐'은 욕 먹어 마땅한지도 모르겠군요. 이 드라마에 관한 기사만 떴다 하면, 온통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의 지독한 비방으로 댓글란이 채워집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드라마를 왜 빨리 끝내지 않느냐는 식의 내용이 대부분이며,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는 다 그렇다면서 이제까지 임작가의 작품들을 모조리 폄하하는 댓글도 많습니다. 블로거들의 리뷰 중에도 이 드라마 자체를 '존재해서는 안 될 무언가'로 규정하는 듯, 굉장히 노골적이고 단호한 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기사나 댓글들을 볼 때마다,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만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한보따리로 묶어서 쓰레기통에 처넣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기생뎐'을 보면서 진짜로 감동받고 눈물이 핑 돌았던 경험이 꽤 여러 번 있는 저로서는, 이 드라마가 정말 그렇게 쓰레기처럼 악취만 풍기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특히 여기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의외로 참 기특하고 괜찮은 녀석들이 많아요.

1. 단사란 (임수향)


이 아이의 결정이 결코 옳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틀렸죠. 분명히 틀렸습니다. 양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려면, 기생이 되어서는 안되죠. 집에 돈이 없는게 문제라면, 차라리 자존심을 꺾고 아다모(성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편이 낫습니다. 그의 집안과 수양딸의 인연을 맺기만 하면, 재벌 아수라 회장(임혁)의 지원을 받아 가난한 집안 정도는 얼마든지 피어나게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기생이 되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낫지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쪽을 선택하는 게 옳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드라마의 스토리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겠군요.

그러나 잘못된 결정이었다 해도 그 마음마저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단사란의 양부모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녀를 데려다가,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전혀 눈치도 못 챌 만큼 친자식처럼 키웠습니다. 넉넉치 않은 살림에 무용대학까지 졸업시켰을 정도면, 그 아이를 위해서 온갖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셈이군요. 재벌가와 다를 것 없는 금병원집 외동딸 금라라와 같은 학교를 다니게 했으니, 그것만 보아도 단사란의 양부모는 그 아이에게 진심어린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갓난아기 단사란을 품에 안아서 데려왔던 양엄마는 수년전에 병으로 죽었고, 양아버지 단철수마저 신장병에 걸렸습니다. 과로하면 금세 치명적으로 악화되는 병이라 직업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꾸준히 치료를 해야 할 테니 그 병원비도 만만치 않을테고, 다달이 120만원씩 나가는 집세까지 부담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사란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충격받은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양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죽어버린 엄마가 무척이나 그립고, 병든 몸으로 살아남은 아빠가 못견디게 가여워집니다.

지화자(이숙)는 자기의 입장에서만 보면 아주 못된 계모입니다. 하지만 아빠와는 알콩달콩 더없이 사이가 좋습니다. 단사란은 그런 아빠의 행복을 차마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피붙이도 아닌 자기를 친딸처럼 키워 준 아빠인데, 이제는 자기 삶을 희생해서라도 그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비록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아빠를 위하는 단사란의 마음은 진짜였습니다. 그 어리석음 때문에 더욱 가엾어서 눈물이 나더군요.

2. 아다모 (성훈)


임성한 드라마의 젊은 주인공들은 대부분 생짜 신인으로 캐스팅되지요. 그 중에도 남주인공 아다모 역을 맡은 성훈(본명 방성훈)이라는 배우는 단역이나 엑스트라의 경험조차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생전 처음으로 해보는 연기가 50부작 주말드라마의 주인공인 셈이죠. 이런 무모함이라니... 그래서인지 벌써 20회가 훌쩍 넘어가는데, 아직도 연기를 참 못합니다..;; 

하지만 아다모라는 이 뻣뻣한 녀석, 볼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세술의 요령이 너무 없이 곧이곧대로라서, 그런 점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군요. 서른이 다 된 아들이, 어머니한테 좀 잘해주시라고 아버지한테 버럭버럭 대들다가 혼쭐나는 모습도, 철없고 한심하긴 하지만 한편 귀엽기도 했습니다.

단사란을 좋아하는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이별을 고한 이유가 드라마상에 충분히 설득력있게 표현되지 않았으니, 그 부분은 작가의 큰 실수였지요. 처음의 의도와 달리 단사란에게 너무나 빠져들고 있는 자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가볍게 정신적인 연애만 하자고 단사란과 일종의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점점 그녀를 놓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된 거죠. 현실적으로 그녀와 결혼까지 하려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온갖 고초를 겪어야 할텐데, 아수라 회장의 성격을 익히 아는지라 아버지를 이길 자신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단사란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졌지만, 경제적 이유로 고통받는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서 강구해낸 방법이, 자기 집안에 수양딸로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딸자식 키우는 재미를 모르고 지내신 자기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 살가운 딸 노릇이나 좀 해드리면, 자기 집에 넘쳐나는 것이 돈이니 그 문제로 단사란이 고생하지는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이었지요. 

한때 남녀의 감정으로 사랑했던 사이인데, 이제와서 어떻게 오누이로 지낼 수 있느냐며 단사란은 몹시 화를 냈지만, 글쎄 꼭 그렇게만 생각해야 할까요? 오랜 친구였다가 애인이 되기도 하고, 애인이나 부부였다가 쿨하게 친구가 되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꽤 있던데요. 저는 사랑의 종류가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에로스였다고 해도 나중에 아가페로 변하는 일이 왜 불가능할까요? 단사란이 그렇게 화를 낸 이유는 아직도 그녀가 아다모를 남자로서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다모는 그녀를 동생으로 삼을 수도 있을 만큼 사랑의 종류가 변했는데 말이죠. 여자로 보던 눈을 바꿔서 동생으로 보려면 참 그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아다모는 단사란을 진심으로 아끼기 때문에 힘든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제 단사란이 독하게 기생의 길을 선택하면서 아다모의 계획은 틀어졌고,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단사란의 모습을 보며 가슴은 점점 더 아파오겠지요. 그렇게 가엾어하다 보면 결국은 또 감정이 변하고, 애틋한 사랑이 다시 시작되겠지요. 기생이라는 자극적 소재로 인해, 이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적 농도가 매우 짙을 것입니다.

아다모는 재벌의 아들답게(?) 마초 기질도 있고 자뻑왕자 기질도 있어서, 만약 실제로 만난다면 그다지 호감형의 인물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사란을 여동생으로 삼으려던 그 마음 자세가 저는 특히 좋았습니다. 어떻게든 그녀의 힘든 삶을 돕고 싶어한, 그 뻣뻣하고 요령 부득인 진심이 말이죠. 이상하게 제 마음에 들더란 얘기입니다..^^

3. 금라라 (한혜린)


금어산 원장(한진희)의 외동딸로 자라난 금라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이기적인 철부지 아가씨로만 보였습니다. 단사란이 자기에게 비밀로 한 채 아다모와 잠시 사귀었다는 이유만으로 꼭지가 돌아서, 밤중에 그 집에 찾아가 뺨을 때리고 소란을 피우던 장면은 최악이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다가 채였는데, 바로 그 남자가 가난한 친구와 사귄다니까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후에 보여준 괜찮은 모습들 덕분에, 이제는 그 때의 실수조차도 솔직함과 귀여움으로 봐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숙부와 숙모가 사실은 친부와 친모였다니, 그 사실 자체가 꽤 큰 충격이었을텐데 금라라는 의외로 의연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제껏 아무 내색 없이 따뜻하게 길러주었던 지금의 부모에게 남아있기로 결정한 것이죠. 현재 외국에 살고 있지만 어쨌든 작은집에는 연상이라는 남동생도 있고, 자기가 떠나겠다고 하면 지금의 부모는 너무 외로워질 테니까요. 물론 원래 작은엄마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어떤 이유로든 자식을 직접 키우지 않고 형님 내외에게 맡겼던 친부모를 용납하기 어려운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길러준 부모에 대한 사랑이 우선이었습니다.

요즘 '신기생뎐'에서 가장 밉상인 캐릭터는 바로 금어산의 아내 장주희입니다. 시아버지 금시조가 세상을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이혼하겠다고 나선 그녀에게는 알고보니 오래된 정부가 있었군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며느리로 받아 준 시아버지가 고마워서 이제껏 모시고 살았다지만, 사실은 꼬장꼬장한 시아버지에게 불륜을 들키게 되면 어떤 후환이 있을지 두려워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장주희가 이렇게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니, 부모의 이혼마저 쿨하게 받아들이는 딸 금라라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더 빛나게 됩니다. 금라라는 자기 인생 찾아 떠나겠다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이해하며, 이제부터는 혼자 된 아버지와 할머니를 스스로 지키겠다고 결심합니다. 엄마를 대신해서 주부 역할을 맡아 집에 오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식혜 만드는 법까지 배워서 할머니의 간식을 책임집니다. 할아버지를 잃고, 큰아들 내외의 이혼까지 겹쳐서 의기소침해 있는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커피전문점에 모시고 가서 맛있는 와플을 대접하기도 합니다. 금라라가 이렇게 어른스럽고 든든한 딸자식인 줄은 처음 알았네요.

게다가 금라라 역의 한혜린은 꽤 연기력이 괜찮은 편입니다. 단공주 역의 백옥담과 더불어 앞으로 주목해야 할 신인 여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사란 역의 임수향은 고정적인 억양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연기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데, 한혜린과 백옥담은 마치 실생활인 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더군요.


이렇게 저는 '기생'이라는 소재 자체가 지닌 퇴폐성에 주목하기보다는, 주로 이 아이들의 기특한 면에 집중하면서 드라마를 봅니다. 양아버지를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할만큼 효심어린 단사란... 좋아하던 여자를 위해 흑심을 접고 동생으로 삼을 수도 있을 만큼 순수한 아다모... 평소에는 철부지 같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집안의 듬직한 기둥으로 변할 줄 아는 금라라... 의붓 언니가 기생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울고불고 매달리던 착한 단공주... 이 아이들을 보면 막장스런 스토리 와중에도 감동을 느끼고, 때로는 오히려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기생이라는 소재 역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가상의 세계라는 점을 참작하여 조선 시대 기생들의 삶과 애환을 다룬 것처럼 여긴다면 조금은 거부감이 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텐프로를 미화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볼 수가 없겠지만요..;; 원작소설도 괜찮은 작품이라 들었고,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나름 좋은 점도 많은 드라마이니, 무작정 너무 혹독하게 비난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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