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해피투게더' 조폭 전문 배우(?) 김정태의 재발견 본문
단역 또는 비중이 높지 않은 역할을 주로 맡았을 경우, 그 배우의 얼굴은 사람들의 뇌리에 조금씩 천천히 각인되어 가지만 좀처럼 이름은 기억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배우 김정태가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것은 영화 '친구'에서였다고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지 유오성과 장동건이 나왔었다는 것과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라는 유명한 대사가 엄청나게 패러디 되었던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군요. 그 영화가 좀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친구'에 김정태가 나왔었다는 사실조차 어제 '해피투게더'에 함께 출연했던 절친(?) 안선영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김정태가 나이는 많지만 학교에는 안선영의 후배로 입학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안될 만큼 귀엽고 순하고 말 잘듣는 후배였다지요. 그런데 10여년 후에 다시 만나서 반갑게 "오빠~!" 하고 인사했더니 거친 남자의 포스를 물씬 풍기며 "오랜마이네~" 하고 인사를 받더랍니다. 맡은 역할에 따라 성격도 달라지는, 뭐 그런 면도 있겠지만 어제의 방송을 보면서 "과연 저 사람의 실제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조금은 들었더랍니다.
제가 김정태라는 배우의 얼굴과 이름을 뚜렷히 기억하게 된 계기는 장혁, 이다해와 함께 출연했던 드라마 '불한당'에서였습니다. 비록 시청률 면에서는 참패했지만, 작품성 면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제가 선택한 베스트5 안에 포함되는 드라마였지요. 김정태가 맡은 역할 또한 다른 작품에서와는 아주 다른 캐릭터였는데, 공교롭게도 그 이전까지의 이미지가 전혀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던 관계로, 저는 오히려 배우 김정태와 캐릭터 '김진구'를 완전히 동일시하면서 시청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진구는 늙은 홀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이혼남으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평생 구두쇠 사업가로만 살아왔던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 자라왔기 때문인지,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감정선이 그에게는 처음부터 메말라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경제적 부유함에 해외유학파 출신의 유능한 펀드매니저에 멀쩡한 허우대까지 갖추었으나, 사람이라기보다는 나무토막에 가까운 무뚝뚝함에다가 남의 입장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기에 기본적인 매너도 갖추지 못한 치명적 결점이 있었지요.
이러던 그가 따뜻함의 결정체인 여주인공 달래(이다해)를 만나서 차츰 변화해 가는 과정은 지금 떠올려도 아찔할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마치 메말랐던 나무토막에 갑자기 물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푸른 잎이 돋아나는 느낌이었어요. 평생 '감정 표현'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살아 온 김진구는 조금씩 자기 안에 살아나는 감정을 어떻게 분출시켜야 할지 몰라서 수시로 난감한 표정을 드러내지요. 천천히 한 마디씩, 미안하다는 말, 고마웠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그리웠다는 말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그 방법을 배워 가는 김진구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주인공 장혁의 캐릭터보다 김정태가 연기했던 김진구가 더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어요.
그래서 '태양을 삼켜라'에서 찌질한 깡패두목 한석태로 출연한 김정태를 보았을 때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김진구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말이지요. 그런데 어렴풋한 기억들을 떠올려 보니, 예전부터 주로 그런 쪽의 역할들을 많이 맡았던 것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깡패 중에서도 정의로운 역할이 아니라 가장 악질적인 역할로 많이 출연했었지요. 'Dr. 깽'에서 끝까지 양동근을 괴롭혔던 넘버쓰리(?)... '연인'에서 이서진에게 비겁하게 칼을 꽂았던 넘버 투(?)... 보통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이런 식의 배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역할들도 꽤 잘 어울리긴 했어요.
그런데 제 마음속에는 '김진구'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히 굳어져 있었기에, 그렇게 상반된 이미지를 완벽한 싱크로율로 표현해내는 배우 김정태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나쁜 남자'에서 스턴트맨 김남길과 친하게 지내는 무술감독으로 출연하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저 배우의 본래 모습과 제일 가까운 것은 저 역할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무뚝뚝한 듯 하지만 의외로 유머러스하고, 허당스런 면도 있고 속정은 깊고... 뭐 그런 느낌 말이지요.
어제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모습을 보니 저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더군요. 아, 저의 예상보다 좀 더 소탈하고 재미있긴 했지만 말입니다. 태권도 선수와 씨름 선수 출신이었던 친형님들이 집안에 들어온 도둑을 잡기 위해 많이 때려서 오히려 도둑에게 폭행죄로 신고당할 뻔했던 이야기라든가, 술에 취하기만 하면 '개를 쫓아가는' 습관이 있던 친구의 이야기라든가,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말솜씨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조폭이나 무술감독이나 개도둑... 그런 역할만이 아니라, '불한당'에서의 김진구처럼 전혀 다른 이미지의 배역으로도 그를 자주 만나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충분히 가능성이 흘러넘치는 배우거든요. 그 능력을 한정된 배역 안에 가두어 두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움'에 목말라 있으니까요. 연기 변신에 성공한 연기자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은, 쉽게 채울 수 없는 그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일상의 단비와도 같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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