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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정보석, 세경을 구박하며 더욱 불쌍해진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지붕뚫고 하이킥

'하이킥' 정보석, 세경을 구박하며 더욱 불쌍해진다

빛무리~ 2009. 12. 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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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라면 아무래도 세경(신세경)과 신애(서신애) 자매를 꼽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 그녀들의 인생은 한편 희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언젠가 아빠를 만나서 예전처럼 함께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으며, 세경에게는 비록 짝사랑에 불과하지만 지훈을 바라보는 애틋한 마음이 깃들어 있어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이미 인생의 찬란한 시절을 훌쩍 지나 노년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하루 하루 삶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울분과 컴플렉스에만 시달리고 있는 가엾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순재의 사위 정보석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으니 그도 엄연한 가장이련만, 가족들 중 그를 정말 가장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이유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나쁜 머리와 무엇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무능력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에게 불쌍한 이유가 하나 더해졌습니다.


처음에 정보석은, 능력은 없지만 착한 남자였습니다. 장인이 그토록 심하게 구박하는데도 서운한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사람 좋게 허허 웃는 착한 사위였습니다. 툭하면 발길질을 해대는 뻣뻣한 아내 현경에게도, 그악스럽게 기어오르는 딸 해리에게도 늘 자상한 남편이요 좋은 아빠였습니다. 비록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의 끝없는 무능력함 때문에 언제나 답답하고 불쌍하긴 했지만, 그래도 속없이 웃는 착한 남자의 모습은 나름대로 예뻐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그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세상에서 가장 못난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장인과 처남은 물론이요, 아내와 자식들조차 그에게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성깔 대단한 처가 식구들 사이에서 언제나 기죽어 살던 그에게 모처럼 만만한 상대가 나타났으니, 동생까지 데리고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어린 식모 세경입니다.


발단은 아주 작은 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장인 이순재 앞에서 간단한 계산을 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던 정보석의 옆으로 걸레를 들고 스쳐 지나가던 세경이 암산을 하여 답을 쉽게 맞혀버렸던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늘 그를 무시하던 순재는 혀를 끌끌 차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정보석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세경을 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고지식하고 눈치없는 세경은 그 후로도 정보석이 뭔가 실수를 하고 있다 싶으면 그냥 모른척 지나치지 못하고 일일이 지적해 줍니다. 그녀의 속마음은 좋은 뜻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보석의 입장에서는 전혀 고맙지 않은 일이지요. 그러나 세경의 그런 모습을 사람 좋게 웃어 넘겼다면, 대인배이며 착한 남자로서의 매력이나마 간직할 수 있었던 정보석은 노골적으로 세경을 질시하며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세경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어린 처녀아이에 불과합니다. 정보석은 비록 여기저기서 무시를 당하기는 하지만 좋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중년의 가장이며, 회사에서는 부사장이라는 직함까지 갖고 있습니다. 실속은 좀 없을지 몰라도 재력과 명예를 겸비(?)했다고도 말할 수 있으니, 굳이 세경과 비교한다면 천지차이라고 할만한 강자입니다. 그런 그가, 억울해도 한 마디 항의할 수조차 없는 딱한 입장의 세경을 노골적으로 쥐잡듯이 구박하고 있으니, 세상에 못난 놈도 그런 못난 놈이 없습니다.

가족들 중에는 단 한 사람에게도 기를 펴고 말 한 마디 못하면서, 어린 식모 세경에게만 악을 쓰며, 자기 안에 억눌렸던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 정보석의 모습은 너무 못났기 때문에 지독하게 슬픕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런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에 더욱 슬픕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좀 치사한 면이 있습니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것이 물론 치사합니다만, 어쩌면 인지상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능력하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무시당하고 치이는 사람이 좋은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는 이런 곳에서도 해당이 됩니다. 어디엘 가서나 일처리도 잘하고 칭찬을 받는 사람은 본인의 마음이 여유롭기 때문에 타인을 대할 때에도 너그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무시당하고 치이는 사람은 자기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 남을 배려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능력있는 사람은 성격도 좋아지고, 능력없는 사람은 성격도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100%는 아닙니다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바닥까지 추락한 정보석의 모습은 그런 슬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못나서 무시당하고, 무시당하니까 울분이 쌓이고, 그 울분을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분풀이하고, 그러면서 점점 더 못나게 되고... 현재 정보석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저 악순환의 고리 속에 놓여 있습니다.


세경을 구박하는 정보석이 밉다기 보다도 너무나 불쌍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세경이 수시로 자기를 무시한다고 주장하며, 일상적인 장면을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서 증거랍시고 보여주며 다그치는 그 못난 중년 남자 앞에서, 어린 식모 세경이 똘망똘망하고 당찬 모습을 보여주니 그 남자는 더욱 초라해집니다. "아저씨, 무시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자기 할 말을 마치고 일어서서 가버리는 세경의 모습은, 어쩌면 이제부터 그녀가 진짜로 정보석을 무시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김병욱의 시트콤은 때때로 이렇게,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잔인한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곤 합니다. 그는 평범한 듯 보이는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잔인함을 예리하게 잡아 표면으로 끌어내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못난 남자 정보석의 변화를 기대하려 합니다. 변화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희망이 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가장 못나고 불쌍한 캐릭터 정보석이, 어느 날 기적과도 같은 돌파구를 찾아내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어쩌면 가엾은 그의 모습은,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고되게 치이며 살아가는, 별로 잘나지 못한 우리 모두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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