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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거나 미치거나' 상큼한 로맨틱 코미디 사극의 역습 본문

드라마를 보다

'빛나거나 미치거나' 상큼한 로맨틱 코미디 사극의 역습

빛무리~ 2015. 1.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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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고운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로맨틱 코미디 사극'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표방하며 출발했다. 남주인공 왕소(장혁)는 고려의 제4대 임금 광종(光宗, 925 ~ 975)이며, 여주인공 신율(오연서)은 발해의 마지막 공주로 설정되어 있는데 주요 캐릭터 중에는 거의 유일한 가상 인물이다. 왕소의 연적 왕욱(임주환)은 태조 왕건의 아들이자 광종의 이복형제이며 8대 임금 현종의 부친으로 기록된 인물이고, 신율의 연적 황보여원(이하늬)은 광종의 비(妃)인 대목왕후(大穆王后)로서 역시 실존 인물이다. 일단 묵직하고 비장한 시대적 배경에 마음이 끌리는데, 어울리지도 않는 코미디 욕심 때문에 망가질 듯하여 미리 걱정을 좀 했다. 하지만 첫방송을 보니 의외로 코믹 요소가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었고, 혼란의 시대에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남녀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인생 초반이 역동적으로 그려지며 진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대 이상의 제법 산뜻한 출발이었다. 



최근 어쩌다 보니 현실 사회 비판의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심각한 드라마들을 연달아 시청했는데, 뚜렷이 의식은 못했지만 속으로는 꽤 많은 피로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코믹 장면은 배경 음악의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며 신나게 즐길 수 있을 만큼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마치 중국의 코믹 무협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신선하기도 했다.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는지 초반에 중국 분위기가 많이 났지만 거부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1회에서는 주요 인물 4인방 중 왕욱을 제외한 3인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왕소와 신율이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라면, 황보여원과 왕욱 남매는 단정함 속에 불꽃을 품은 야심만만한 캐릭터로 표현될 듯하다. 


왕소는 장차 황실을 피바다로 만들 것이며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저주받은 예언 속에서 태어났다. 불행히도 왕소가 8살 되던 해 동복형인 왕태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왕소를 향한 끔찍한 예언은 기정 사실화되고 말았다. 태조 왕건은 매정하게도 어린 왕소를 머나먼 금강산으로 내쫓았고, 어머니마저 다른 자식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를 버리고 말았다. 금강산을 누비며 야생마처럼 성장한 왕소는 어느 날 태조의 부름을 받아 황궁에 다시 들어오는데, 태조는 뜻밖에도 그에게 고려와 황실의 미래를 당부한다. 아들들 중에서도 가장 출중한 왕재가 엿보였으나 저주받은 운명 때문에 내쳤던 것인데, 그 운명을 찬란한 빛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자미성을 품은 여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바로 태조의 딸이며 왕소의 이복누이인 황보여원이다.



 

족내혼이 허용되던 고려 왕실에서는 이복남매나 사촌간의 혼인이 매우 당연하고 흔한 일이었다는데,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친딸을 며느리로 삼고 친아들을 사위로 삼는 그 모양새가 매우 기이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족내혼을 위해 태조의 왕씨 성은 아들에게만 이어지고 딸들은 외가의 성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황보여원이 공주이면서도 황보씨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왕자와 공주가 혼인을 하면, 공주의 입장에서 볼 때 아버지 쪽의 친가는 시집이 되고 어머니 쪽의 외가는 친정이 된다. 이렇게 자미성을 품은 여인을 만났으니, 왕소의 저주받은 운명은 찬란한 빛으로 바뀌고 그의 앞날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도 같다. 하지만 자미성을 품고 태어난 여인이 2명이었다는 데서 비극적으로 뒤엉킨 사랑의 아픔이 시작된다. 그 둘 중 왕소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은 얄궂게도 발해의 공주 신율이었던 것이다. 


신율이 탄생할 때도 범상찮은 예언이 있었다. 이 공주는 발해가 아닌 다른 나라의 빛이 될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이었다. 발해의 왕실에서 볼 때는 역시 저주받은 운명이라, 갓 태어난 신율은 왕세자의 손에 죽임을 당할 뻔하지만 생모의 기지와 궁녀의 희생으로 무사히 구출되었다. 그런데 하필 거대한 청해상단의 양딸이 되어 유능한 여상(女商)으로 자라난 것은 너무 식상한 설정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극의 여주인공이 상인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내 기억에는 2001년 '상도'의 여주인공 다녕(김현주)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 후 2005년 '해신'의 정화(수애)가 그러했고, 2006년 '주몽'의 소서노(한혜진)가 그러했다. 이 외에도 차분히 돌이켜 보면 더 있는 듯한데, 이제 사극에서 장사하는 여주인공은 너무 질렸다. 



하긴 무능한 민폐녀보다야 남주인공을 훌륭히 내조하여 위대한 업적을 이루도록 돕는 유능한 여주인공이 훨씬 매력적인데, 시대적 배경 때문에 여성 캐릭터에 자유로운 직업을 부여할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상단을 운영하며 풍부한 경제력과 노련한 장사 수완과 거대 인맥을 소유한 여인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남주인공을 강력하게 내조할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극 여주인공들이 저마다 장사를 하겠다며 나서는 것도 십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빛미나'에서는 장사꾼에 이어 곧 '남장여자' 설정까지 등장한다니, 이건 클리셰의 집합도 아니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부디 초반의 식상한 설정이 빨리 지나가고, 고려 왕실에서의 여주인공 신율은 좀 더 유니크한 캐릭터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장혁과 오연서의 사극 어울림이 퍽이나 좋고 투샷이 예뻐서, 결코 순탄치 않을 이들의 애절한 멜로가 더욱 기대된다. 가능하다면 '선덕여왕' 이후로 오랜만에 편지 형식의 리뷰를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부디 지금의 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지 않기를, 추억 속에 잊혀졌던 나의 캐릭터 편지 시리즈가 다시 부활할 수 있기를 스스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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