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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 써니, 그녀의 퇴장이 반가웠던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꽃보다 할배' 써니, 그녀의 퇴장이 반가웠던 이유

빛무리~ 2013. 9. 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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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이 시대의 핫한 예능이라 해도, 아무리 인기 폭발이라 해도 나는 할 말을 해야겠다. 솔직히 나는 처음부터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 제작진은 그 부분을 프로그램의 정체성이라고 인식했는지 전혀 고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나영석 PD는 아직도 '1박2일' 시절의 생고생 프로젝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평균연령 76세의 어르신들이라는 사실보다도, 이 출연자들을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는 장면을 뽑아내려는 욕망이 앞설 뿐, 그들을 편안히 모시려는 생각은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제작진의 생각이 맞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그들도 이 여행의 컨셉이 어떤 것인지를 다 알면서 승낙했을 테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꽃할배들을 특급 호텔에 모시고 최고급 식사를 대접했다면 결코 얻어낼 수 없었을 꿀재미와 쫄깃한 예능의 맛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려낸 그들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소와 식당 예약을 비롯한 모든 작업을 이서진에게 일임한 채 여행 내내 방관자 모드로 일관하는 제작진의 태도는 불편했다. '1박2일'의 리즈 시절에는 결코 느껴본 적 없었던 불편함이었다. 

 

젊은이건 노인이건, 남자건 여자건, 어른이건 아이건, 똑같은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언제나 냉철한 이성과 보조를 맞추기 힘든 법이다. 똑같은 고생을 해도 혈기왕성한 이십대의 청년이 하는 것과 팔십 노인이 하는 것과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서진을 깜짝 영입한 이유는 아마도 거기에 있었을 테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이루었다. 걸그룹을 이용해서 자행한 두 차례의 몰카 역시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서진과 써니는 이제껏 본업인 연기 활동과 가수 활동을 통틀어서도 얻지 못했던 국내 인기를 한 몸에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공짜 여행도 하고 국제적 인기도 얻으니 할배들도 좋고, 이번 기회에 이미지 쇄신을 함으로써 얻게 될 부수적 효과가 엄청나니 이서진과 써니에게도 좋은 일이다. 이 최상의 프로젝트가 어째서 내 마음에는 불편하게 와 닿는 걸까? 일단은 노인들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너무 적은 예산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 마치 '1박2일'의 멤버들에게 했던 것처럼 생고생 프로젝트를 가볍게나마 재현하고 싶어하는 눈치가 보여서 별로 탐탁치 않았다. 냉정하게 보면 나이가 많건 적건, 그들은 출연료를 받고 일하는 프로 연기자니까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나는 보면 볼수록 자꾸만 친정 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어떻게든 더 편하고 좋은 일정을 제공해 드리고 싶어졌다. 백일섭의 아픈 무릎과 게스트하우스의 열악한 잠자리를 볼 때면 늘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만 제작진은 재미로 펼쳐진 고스톱 판에서조차 냉정하게 승리하면서 한 푼의 제작비도 보태주질 않았다. 의대 출신이라는 미모의 여성 스태프가 승리하는 순간, 쾌재를 올린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나는 깊은 탄식을 내뿜었다. 어째서 예능을 단순한 예능으로 보아주지 못하고 그토록 진지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이렇게 타고났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만들어 준 장조림통을 길바닥에 내팽개치는 백일섭의 모습을 볼 때도, 나는 무릎이 안 좋은 칠십 노인에게 그 무거운 짐을 떠맡긴 제작진을 원망했다. 어차피 다 함께 먹자고 마련해 온 음식인데, 아무리 짐을 미리 부쳤어도 그것 하나 대신 맡아 줄 스태프가 없었던 걸까?

 

기본적인 마인드가 다르다 보니 여행 내내 타인들이 즐기는 웃음 포인트도 나에겐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백일섭을 향해 쏟아진 대중의 비난이 마치 나를 향한 것처럼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내가 보기에 백일섭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단지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술 한 잔 기울이는 자리였을 뿐이다. 하지만 서로 자기 생활이 있어 바쁘다 보니 좀처럼 그런 시간조차 마련하기 힘들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 모처럼 그런 자리를 몇 차례 갖게 되어서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여행을 즐기고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껏 비행기 타고 프랑스 스위스까지 가서 걷기 힘들다고 구경보다 쉬는 것을 선택한 백일섭의 행동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 2회 출연만으로 모든 포털의 인기 검색어를 장악하고 엄청난 이미지 쇄신의 효과를 본 그녀, 써니의 이야기가 남았다. 이서진이 할배들을 모시고 짐꾼 겸 가이드 역할을 할 때는 무척 힘들어 보였지만 쉽게 공감도 느낄 수 있었다. 반면에 써니가 등장한 후로는 모든 일이 너무 쉽게 풀려가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발랄한 애교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흥겹게 만들었고, 여행 내내 80% 정도는 부루퉁한 얼굴로 그늘에 앉아 있던 심통 백일섭마저 써니 앞에서는 너그러운 할아버지로 돌변했다. 모바일 검색에 능수능란한 그녀는 식당이며 각종 목적지를 찾는 데도 척척이었고, 이동 중에는 할배들 옆에 착 붙어 1:1 애교로써 피곤을 잊게 했다. 그야말로 써니는 최고의 여행 동반자였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써니를 가리켜 '성격이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나의 오랜 의문점이 고개를 쳐들었다. 도대체 '좋은 성격'이란 어떤 것일까? 써니처럼 낯가림 없고 활발하고 인사성 밝고 붙임성 좋은 성격만 '좋은 성격'인 걸까? 내성적이고 수줍어하고 붙임성 없는 성격은 '나쁜 성격'인 걸까? 그저 사람마다 타고난 개성이 다를 뿐인데, 한 가지 특성만을 콕 집어 '좋은 성격'이라고 표현해도 괜찮은 걸까?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좋은 성격'이라는 단어에 의문을 품어 왔다. 과연 어떤 성격을 진짜 '좋은 성격'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걸까? 

 

 

남에게 불만이 있어도 꾹꾹 눌러 참고 내색 안 하면 성격 좋은 걸까? 싫을 때 싫다고 곧이 곧대로 말하면 성격 나쁜 걸까? 마음 약해서 남의 부탁을 거절 못하면 성격 좋은 걸까? 단호하게 거절하면 성격 나쁜 걸까? 사람을 쉽게 사귀고 발이 넓어야만 '좋은 성격'인 걸까? 사람 사귀기를 어려워하고 무뚝뚝하면 '나쁜 성격'인 걸까? 도대체 누가 그런 규칙을 정해 놓은 걸까? 써니의 발랄한 성격은 '꽃보다 할배'의 분위기를 삽시간에 하늘로 띄워 놓았다. 예쁜 외모와 젊은 나이도 한 몫을 했겠지만, 그녀의 최대 장점은 밝고 애교많은 성격이었으며, 그래서 프로그램이 더욱 재미있기도 했다. 그런데도 내 맘은 썩 편치만은 않았다.

 

'꽃보다 할배'가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각종 매체에서 써니를 향한 각종 찬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그 말들은 '오로라 공주'의 윤해기(김세민) 감독이 툭하면 부르짖던 "여잔 그래야 돼!" 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살살 눈웃음쳐도 "여잔 그래야 돼!", 촬영장에 간식거리 싸들고 와도 "여잔 그래야 돼!" ... 한동안 박지영(정주연)을 편애하는 윤해기의 대사는 그것이었다. "여자는 그래야 돼!" ... 임성한 작가가 그려내는 인간 군상은 때때로 너무 과장되어서 황당한 느낌을 주지만, 때로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섬뜩한 느낌을 준다. 윤해기의 캐릭터가 바로 그랬다. 현실 속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권위적인 스타일의 나이 든 남자... 그들에게 여자의 존재는 얼마나 귀엽게 착착 비위를 맞춰주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정해진다. "여잔 그래야 돼!"

 

 

수줍고 내성적이고 붙임성 없는 자녀들도 늙으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단지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러서 전달이 잘 안될 뿐이다. 써니처럼 곁에 착 붙어서 애교도 떨고 어르신의 노래 한 자락에 화음까지 넣으며 장단을 맞출 수 있다면 좋겠지만, 평생 그런 행동을 해본 적 없는 수줍은 성격으로는 아무래도 힘든 일이다. 따지고 보면 그게 나쁜 성격도 아니고 죽을 죄도 아닌데, 남들이 '꽃할배'의 써니를 보며 열광하면 할수록 괜시리 죄의식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써니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써니 찬양에 동참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였다. 이번 주에 써니가 퇴장하고 이서진만 홀로 남아 다시 잔잔한 분위기로 돌아가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어쩌면 참으로 찌질한 변명이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밝은 성격을 강요받는 듯한 그 기분은 참으로 거북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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