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브레인' 김상철 악역 만들기, 참 유치하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브레인' 김상철 악역 만들기, 참 유치하다

빛무리~ 2011. 12. 20. 17:15
반응형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될 일이었습니다. 이미 주인공 이강훈은 신하균의 훌륭한 연기력에 힘입어 명실상부한 드라마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여기저기서 '하균앓이'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더불어 캐릭터의 인기도 나날이 상승하는 중입니다. 이만하면 주인공 살리기는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김상철(정진영) 교수를 악역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9회까지만 해도 천사였던 김상철은 10회부터 급격히 악마로의 변신을 시작하더니, 11회에서는 심하게 유치하고 뻔뻔한 기질을 드러내며 추락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이 '예전 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지경입니다. 

10회에서는 그래도 약간의 희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김상철은 20년 전 의신대 병원에서의 기억을 모두 잃은 듯 싶었거든요. 이강훈의 아버지를 수술하다가 실수로 죽게 했던 일은 김상철 자신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을 테니까, 너무 고통스런 기억을 잊고 싶은 나머지 일종의 기억상실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마 모든 일을 기억하면서도 그렇게 시치미를 뚝 뗀다고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건 지금까지 보여 왔던 김상철의 캐릭터와 너무도 다른 행동이니까요. 언제나 환자들을 진심으로 대하던 그 태도가 위선이었나요? 홀로 집에서 쉬는 동안에도 환자들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 성의껏 답장까지 써 주던 그 모습이 가식이었나요? 혼자 있을 때마저도 그토록 피곤하게 가식을 떨면서 사는 사람이 있나요?

아무리 천사같은 사람이라도 까마득한 후배가 무작정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살인자!" 라고 소리지르면 당연히 화가 나겠지요. 김상철이 기억을 잃었다고 가정했을 때, 자기는 의신대 병원에서 근무한 적도 없고 이강훈의 아버지를 수술한 적도 없는데, 이 녀석은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와서는 다짜고짜 자기를 살인자로 몰아붙이니 억울하겠지요. 좋은 말로 차근차근 타일러도 듣지 않고 눈에 시뻘겋게 핏발을 세운 채 자기를 노려보고 있으니, 김상철이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 해도 자기를 그토록 증오하는 후배를 예쁘게 보아주기는 힘들겠지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뇌종양이 악성 교모세포종으로 밝혀지자 이강훈은 치료법을 찾기 위해 만방으로 수소문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맙니다. 그 와중에 평생 오해하고 미워해 왔던 어머니의 진실마저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던 게 아니라, 임신한 상태로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잠시 피해 있던 거였습니다. 어머니의 불륜의 씨앗이라고 생각했던 여동생 하영은 자신과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친동생이었습니다. 사실을 알고 나니 걷잡을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결코 이대로 어머니를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기댈 곳은 김상철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교모세포종 연구 뿐이었습니다. 이강훈은 자신이 김상철과 힘을 합친다면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연구를 성공시킬 수 있고, 그 치료법을 어머니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거라는 데에 실낱같은 마지막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김상철을 찾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고 철석같이 믿으면서도, 아버지의 수술실에서 나왔던 그 의사의 눈빛이 김상철과 똑같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도, 이강훈은 꼿꼿한 무릎을 원수 앞에 꺾으며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제 어머니를 살려 주십시오!" 

지금껏 천사처럼 어필되어 왔던 김상철의 캐릭터에 맞아떨어지려면, 그는 당연히 너그럽게 받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연구팀에 합류하고 싶다는 이강훈의 부탁을 김상철은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자네는 아직도 나를 살인자라고 믿고 있지 않나? 어떻게 살인자와 함께 일을 하겠다는 말인가?"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반응이라 몹시 당황스럽더군요. 잠깐 그러다 말겠지, 이제 곧 생각을 바꿔서 이강훈을 받아들여 주겠지... 했는데 의외로 김상철의 거부는 완강하고 오래 갔습니다. 이강훈을 짝사랑하는 윤지혜(최정원)까지 나서서 부탁해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김상철은 이강훈 어머니의 경우 자신들의 임상 시험 투약 기준에 맞지 않으므로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강훈은 포기하지 않고 김상철 교수의 방문 앞에 선 채, 몇 시간이 흐르고 밤이 새도록 끈덕지게 버텼습니다. 헛고생 말고 차라리 어머니 곁에 가서 시간을 보내라고 김상철이 말했지만, 이강훈은 자기를 받아주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런 이강훈에게 김상철은 차츰 유치하고 비열한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정말 어머니를 살리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결론이 어떻게 나든 내 고집을 꺾어보고 싶어서는 아니고?" 오직 어머니를 살리려는 아들의 간절한 마음을 향해서 저 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캐릭터가 김상철이었나요? 사람이 어쩌면 갑자기 그렇게 변할 수 있는지 황당할 뿐이었습니다.

잠시 후, 어린 환자의 뇌수술을 앞두고 두 의사의 견해차가 벌어졌는데, 김상철은 윗사람의 권위를 내세우며 이강훈에게 무조건 자기 말을 들으라고 명령하는군요. 하지만 이강훈은 "수술방에 들어온 이상, 저는 오로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만을 생각할 겁니다!" 하면서 자기의 방식을 고집합니다. 그런데 원래 환자의 입장에서, 어떻게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만을 생각하는 의사는 김상철 아니었나요? 원래 이강훈은 환자보다 자신의 출세를 더 중요시하는 캐릭터였고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김상철은 수술실에서 권위나 내세우는 속물적인 의사가 되고, 이강훈은 환자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좋은 의사가 되었군요.

어쨌든 이강훈의 선택은 옳았고, 어린아이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이강훈의 실력이 이렇게 또 한 번 증명된 후, 김상철은 드디어 그를 자기 연구팀에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고재학(이성민)이 반대하고 나서는군요. 표면상 이유는 천하대병원이 싫다면서 그만두고 나갔던 사람을 다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이강훈의 연구 논문을 가로채려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화가 났던 것입니다. 신경외과 과장인 고재학이 막아서니, 이강훈은 천하대병원 신경외과 전임의로 복귀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김상철은 이강훈을 자신의 개인 연구원으로 채용하겠다고 합니다. 그 결정 자체는 좋은데, 이강훈을 향해 던지는 대사가 너무 유치하고 악랄해서 정말 짜증났습니다. "내가 내 연구비로 월급을 주고 자네를 쓰겠다는 거야. 처지가 예전과는 많이 다를 거야. 내 허락 없이는 진료도 수술도 해서는 안 되고, 무조건 내 명령에 따라야 해. 내 눈밖에 나면 즉시 그 날로 해고야. 폼에 살고 폼에 죽던 이강훈은 잊어야 해. 지금까지 자네가 쌓아왔던 그 화려한 이력들을 깡그리 죽인 채 살란 얘기야. 성공할지 어떨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 성공할지도 모를 연구를 위해서 말야. 어떤가?" 대사를 할 때 김상철의 표정은 또 어찌나 비열한지요!

"하겠습니다. 말씀하신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오직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이강훈은 모든 자존심을 꺾었지만, 시련은 이제부터였습니다. 이강훈의 가장 밉살스런 라이벌 서준석(조동혁)도 김상철의 연구팀에 합류하기로 어느 사이엔가 결정되어 있었던 겁니다.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연구이니 자기도 밥숟갈이나 얹어 보자는 심산이었겠지요. 이강훈의 논문을 훔쳐보고 약간 다르게 재구성하여 제출한 서준석의 논문은 김상철 교수의 마음에 썩 들었던가 봅니다. 김상철은 환한 얼굴로 서준석을 반기며 이강훈에게 다시 한 번 유치한 대사를 던집니다. "이선생은 임시 연구원 신분이니 서교수의 지시에 잘 따르도록 해. 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알아. 서교수 밑에서 일하는 게 내키지 않으면 그만두든지!"

기막힌 심정에 입술을 일그러뜨리면서도 이강훈은 버팁니다.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서준석과 단둘이 되었을 때는 그의 교묘한 논문 짜깁기 실력을 비웃어 주는 것도 잊지 않는군요. 그에 관해 당당할 수 없는 서준석은 말을 돌리며 유치한 반응을 보입니다. 섬세하고 눈부신 손놀림으로 완벽한 뇌수술을 해내는 의사 이강훈에게, 그 손으로 지저분한 연구실 청소나 하라고 시킨 것입니다. 부교수라는 서열과 지위를 한껏 이용한, 나름대로는 통쾌한 복수였을까요? 묵묵히 연구실 청소를 하는 이강훈의 초라한 뒷모습에, 그를 사랑하는 윤지혜의 가슴은 찢어지는군요.

고재학이나 서준석은 원래부터 유치하고 찌질한 악역이었였으니 상관없지만, 왜 김상철의 캐릭터를 갑자기 이렇게 망가뜨리는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9회까지 보여준 모습은 완벽한 위선이며 가식이었던 걸까요? 김상철의 진짜 실체는 악마였던 걸까요? 만약 의신대 병원에서의 과거를 모두 기억하면서 지금 이강훈에게 저토록 못되게 구는 거라면, 김상철은 그대로 악마가 맞습니다. 하지만 김상철이 악마라면, 이강훈과 김상철의 관계는 결코 진정한 스승과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처음의 설정과 달리 두 사람은 대결 구도로 갈 수밖에 없어요. 

김상철이 이강훈의 멘토가 된다는 처음의 설정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김상철은 절대 악마가 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드는 걸까요? 혹시 김상철이 자기만의 방식대로 이강훈을 조련하기 위해서, 교만을 버리고 숙일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이강훈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짓밟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김상철의 캐릭터 변화가 너무 심합니다. 그 따뜻하던 사람이 어쩌면 갑자기 이렇게나 야비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변할 수가 있나요? 반면에 차디차던 이강훈은 오직 어머니를 위해서 자기의 모두를 희생하는 애절한 효자로 변신했으니, 두 캐릭터가 바뀐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혹시 이강훈을 더욱 빛내기 위해서 김상철을 악역으로 만드는 거라면, 그럴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김상철은 과거에 큰 죄를 지었으므로 이강훈 앞에서 떳떳할 수 없는 사람이지요. 그도 나약한 인간일 뿐, 완벽한 천사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기억을 잃었다면 차츰 그 기억을 되찾게 하고, 이강훈을 볼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조금씩 넣어 준다면, 김상철을 통해서도 충분히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텐데요. 어쩐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아서 '브레인' 11회는 참 실망스러웠습니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