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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사택가문의 사람들이 백제의 권력을 움켜쥐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명석한 두뇌를 지녔고, 권력의 속성에 밝으며,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더없이 비정한 성품을 지녔습니다. 무왕(최종환) 역시 뛰어난 지략으로 신라와의 수차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지만, 손에 넣은 살생부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하는 무왕의 머릿속은 사택비(오연수)에게 훤히 읽히고 있었습니다. 무왕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미리 예측하여 모든 대비를 해 놓는 상황이니 이래서는 속수무책, 이길 방도가 없습니다. 심지어 사택비는 자부심과 기개 면에서도 무왕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사택가문의 사람답게 비정하기 짝이 없는 대좌평 사택적덕(김병기)은 살생부를 무왕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자기 딸 사택비를 희생시키려 ..
드라마 '선덕여왕'이 드디어 62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예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허전함이 밀려드네요. 지난 7월, 처음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선덕여왕'은 항상 단짝 친구처럼 제 곁에 있었습니다. 이제껏 다른 드라마를 시청할 때에는 이토록 깊이, 적극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마다에게 몰입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선덕여왕'은 그토록 특별한 드라마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애정이 쌓여 갔고, 주인공만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조차도 모두 친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중 한 캐릭터는 이제껏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인물이었는데, 최종회에서야 비로소 제 눈에 들어오더군요. 언제나 소중함은 떠난 이후에야 깨닫게 되는 걸까요?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왠지 또 슬퍼지려고 합니다..
유신(庾信), 자네를 향한 나의 믿음이 헛된 일이었단 말인가? 나의 판단이 그릇된 것이었단 말인가? 말을 해 보게. 자네의 흉중에 담긴 진정한 포부가 무엇인지를 말일세. 나 월야(月夜)의 두 어깨에는 60만 가야백성의 한과 더불어 내 아버지이신 월광태자(月光太子)의 슬픔이 깃들어 있네. 부친께서는 대가야와 신라의 결혼동맹으로 인해 태어나셨으니 명백한 신라왕실의 외손자이셨으나, 신라는 일방적으로 동맹을 깨뜨리고 장군 이사부의 정예군을 보내어 우리 대가야를 공격해 왔네. 그 당시 선봉에 섰던 인물은 화랑 사다함이었네. 배신당한 우리 대가야의 군사와 백성들은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네. 가야산에서 흘러내려 온 우리 비옥한 땅의 내천들은 피로 물들었지. 자네는 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가야를 점..
공주님, 힘을 내셔야 합니다. 절대로 눈물을 흘리셔서는 안됩니다. 공주님의 그 가녀린 어깨 위에 놓인 짐이 너무도 크고 무겁습니다. 힘겨우신 모습을 보면서도 항상 이렇게 다그칠 수 밖에 없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저 김유신(金庾信)은 멸망한 가야의 후예로 태어났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겪으며 고통받고 있는 가야 유민들의 앞날이 제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제 아버님 서현공께서 목숨을 걸고 어머님 만명공주와 무리한 혼인을 감행하셨던 것도 오직 연모 때문만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님을 많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저에게 주어진 사명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제 삶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기에, 저는 어려서부터 감정을 ..
문노의 재등장과 비담의 출현으로 떠들썩했던 '선덕여왕' 21회 본방송을 어제 놓치고 오늘에서야 시청했다. 과연 비담의 존재는 충분히 화제가 될만했다.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한때 무협소설을 탐닉했던 나는 초록누리님의 포스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화려하게 등장하는 비담(김남길)을 보며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전설적 무공을 지닌 사부 밑에서 어릴 때부터 엄격한 훈련을 받았으나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그 자유로운 영혼 캐릭터는, 얼핏 '소오강호'의 영호충을 연상시키기도 했으나 그보다 더 야생에 가까운 원초적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강한 이미지를 어필했다. 야생 버라이어티 1박2일이 현재 예능 프로그램 중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듯이, 요즘 대세는 '야생'인데 참 그 컨셉 한 번 제대로 잡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