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조진웅 (11)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솔직히 내게는 박근형과 윤여정의 이름만으로도 망설일 필요가 없는 영화였다. 원래부터 무척 좋아하는 배우들이기도 했지만 특히 최근 나영석 PD의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를 통해 새롭고 인간적인 매력까지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명품 연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기회를 어찌 마다할소냐! 더욱이 여타 작품들에서 노인 배우들의 역할이란 젊은 주인공들의 부모나 조부모 자격으로서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데 반해, '장수상회'에서는 그들이 어엿한 멜로의 주인공들로서 2시간 가량의 러닝타임을 꽉 채우게 될 터이니, 개봉 첫날 영화관에 들어설 때부터 마음은 기분좋은 설렘으로 콩닥거리고 있었다. '장수상회' 관람 후의 느낌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먹먹함'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가슴 한 쪽이 따스하면서도..
물론 모든 여성 관객에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남성 못지 않게 액션과 전투씬을 즐기고, 배우 최민식을 열렬히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명량'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평소 액션이나 전투씬을 즐기지 않고, 배우 최민식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여성에게는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가 '명량'이었다. 일단 전투씬이 너무 길다. 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투씬은 제법 장관을 이루어 상당한 제작비와 공을 들였음이 느껴지지만, 신기한 눈으로 감탄하며 지켜보는 것은 처음 몇 분에 지나지 않고 후반에는 무척 지루하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드라마적 스토리를 즐기기 때문에 전투씬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스토리의 일부로 인식할 뿐인데, '명량'은 대략 70~80% 가량이 해상 전투씬으로 채워져..
윤종빈 감독이 악역 조윤(강동원)의 캐릭터에 너무 심취했던 것일까? 조윤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캐릭터와 전체적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무게의 비극과 장중함에 비한다면 다소 가볍게 처리된 느낌도 있다. 하지만 '군도: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민초(民草) 들의 한(恨)이라면 그 메시지는 충분히 어필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주인공 도치(하정우)의 캐릭터가 지극히 단순했기 때문에 표현이 극대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도치는 원래 '돌무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쇠백정이었다. 배운 거라고는 고기써는 칼질뿐이요, 가진 거라고는 황소같은 힘과 돌처럼 단단한 육체뿐이다. 복잡한 생각이나 고민 따위를 할 줄 아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 ..
비극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지독한 비극으로 '뿌리깊은 나무'는 막을 내렸습니다. 역사적 실존 인물을 제외하고 허구로 창조된 인물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했지요. 지난 번 리뷰에서 제가 예상했던 대로 소이(신세경)가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했지만, 어차피 강채윤(장혁)의 목숨도 그리 길게 남아 있지는 않았습니다. 소이가 죽어가면서 치맛자락에 남긴 훈민정음 해례를 가슴에 품고 그녀의 유언에 따라 반포식장으로 달려온 강채윤은,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하여 세종(한석규)의 목숨을 지켜내고 소이가 그토록 원했던 반포식을 끝까지 지켜본 후 눈을 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리뷰의 스크롤 압박은 제 블로그 역사상 최대치입니다. 이건 뭐... 한 편의 소설이네요;;) 돌궐의 위대한 전사이며 천..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전하, 우리 임금님이 너무나 가여워서 볼 수가 없습니다. 너무 아프니까 눈물도 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부왕 세종(한석규)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한글 창제 사업의 오른팔로서 든든한 역할을 해주던 효자 광평대군(서준영)은 결국 밀본에 의해 처참히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싸늘하게 식은 아들의 시신을 품에 안고서도 차마 믿을 수 없다는 듯, 축 늘어진 그 손을 자꾸만 들어올려 자신의 뺨에도 대어 보고, 아비를 한 번만 안아 달라는 듯 자꾸만 자신의 몸에 걸쳐 보는 세종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마저 갈갈이 찢어지게 만들더군요. (쓰다 보니 리뷰가 너무 길어졌네요. 스크롤 압박이 장난 아닐 듯하여 미리 사과드립니다..;;) 홀로 편전으로 돌아온 세종은 허깨비처럼 휘청이며 이리저리 맴돌기 ..
14회까지는 거의 단역에 지나지 않았던 광평대군(서준영)의 존재감이 15회에 이르러 극대화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은 부왕 못지 않게 학문에 힘써 사서삼경 등에 능통하였고 국어, 음률,산수에도 밝았으며, 서예와 격구에도 능하였다 합니다. 또한 성품이 너그럽고 용모마저 아름다웠으나, 안타깝게도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는군요. 그는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유일한 왕자로서 부왕의 한글 창제를 적극 돕고 있습니다. 1. 호랑이 아들 광평대군의 신념과 기개 사대부의 거센 반발을 일단 잠재우고자 한글 연구 자료들을 몰래 옮기려던 광평대군(서준영)과 궁녀 소이(신세경)은 밀본에 의해 납치를 당하지만, 다행히도 강채윤(장혁)의 손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세종(한석규..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그 누구 하나 행복한 사람이 없습니다. 백성들도, 신하들도, 임금도... 저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고 날마다 눈물 속에 살아갑니다. 보통은 그 눈물이 꽁꽁 싸매어져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때로는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흘러나올 때가 있지요. 12회에서는 특히 그들의 감춰져 있던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면서 보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1. 강채윤의 절규 (똘복이와 담이의 재회) 궁녀 소이(신세경)는 강채윤(장혁)이 붙인 벽보를 보고 어린 시절에 헤어졌던 똘복 오라버니가 살아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복(福)이라는 글자의 수를 놓다가 훔쳐낸 금실이 모자라서 획수를 빠뜨리고 새길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탄생하게 되었던 기묘한 틀린..
드디어 베일에 싸였던 밀본의 수장, 본원 정기준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추측 속에서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반촌의 백정 가리온(윤제문)이 바로 그였습니다. 오히려 너무 강력히 추측되는 인물이므로 뻔한 전개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를 후보에세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별다른 반전은 없었습니다. 아무튼 정기준은 현재까지 세종(한석규)과 강채윤(장혁)을 완벽히 속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리온의 정체를 꿈에도 모르는 세종은 그를 소중한 인재로 아끼며 자신의 사업에 동참시키려는 중이고, 강채윤은 천민의 설움을 겪는 그를 통해 죽은 아비 석삼의 모습을 발견하며 지극한 연민을 품게 되었습니다. 적들로부터 경계심이나 악의가 아니라 오히려 완벽한 믿음과 호의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정기준은..
"내가 대체 뭘 그리 잘못했느냐? 나는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이었다. 내 신하들은 지금도 모두 모여서, 내 뜻을 거스를 모의를 한다더구나. 그래, 생각해 보면 항상 그랬다. 중국의 책력이 아닌 우리의 책력을 만든다 할 때도, 천문기기를 만들기 위해서 중국에 사람을 밀파할 때도, 세법 가부조사를 할 때도, 노비 장영실에게 관직을 주려 할 때도... 대행 대왕의 뜻을 거스를 수 없사옵니다, 국고가 낭비 되옵니다. 신분 질서가 어지럽혀 지옵니다... 지랄들 하고는... 결국엔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것이면서, 온갖 공맹의 도리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공자께서 언제 자국의 책력을 만들면 안된다 하셨느냐? 맹자께서 언제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들으면 안된다 하셨어? 나는 단지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이었는데, 대..
"네가 흔들리면 나도 무너진다. 흔들리지 마라..." 국가의 지존이신 임금 세종(한석규)이 한낱 궁녀에 불과한 소이(신세경)에게 내린 어명입니다. 세종의 마음속에 소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크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강력한 절대군주 세종이 나약한 궁녀 한 사람에게 이토록 마음을 의지하고 있다니,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일이지요? "네가 흔들리면 나도 무너진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말할 만큼, 세종에게 소이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임금 또한 사내이니, 세종이 소이를 여인으로 바라보며 사랑하고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판단하기에 그건 아닌 듯 싶습니다. 앞으로 세종과 소이, 그리고 강채윤(장혁)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는 모르나,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