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정성모 (14)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정말 이것이 최선이었을까? 하긴 대다수 시청자들의 마음은 억지스러워도 해피엔딩을 원했을 테지만,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 드라마에 깊은 애착을 품었던 내 마음은 오히려 슬퍼졌다. 왜일까? 나는 평소 사극의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었는데, 유독 '제왕의 딸 수백향' 에만 꼼꼼한 고증과 역사 재현을 바랐던 것일까? 다시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은 역사적 기록과 드라마 내용의 일치가 아니라, 제목과 주제에 걸맞는 엔딩이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도 제목과 주제에 어긋나는 엔딩을 맞이한다면, 화룡점정을 찍으려다가 그림을 아예 망쳐버리는 셈이니 이보다 더 애통한 일이 흔히 있으랴! '제왕의 딸, 수백향' 이라는 제목은 바로 주인공 설난(서현진)의 운명과 일치되어 있었다..
드디어 최충헌(주현)이 죽고, 장남 최우(정보석)가 무신정권의 제1인자로 등극했습니다. 최향(정성모)와의 권력다툼에서 손쉽게 이길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은 바로 비천한 노예 김준(김주혁)이었지요. 최우를 안흥리로 끌어들이기 위해 최향의 수하들이 계속 찾아올 것을 예측하고, 그들 중 누군가를 붙잡아서 길을 터야 한다는 김준의 조언은, 결과적으로 무혈입성을 가능케 한 계책이었습니다. 물론 최상의 적임자 김덕명을 선택한 최우의 안목과 혜심대사의 환약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지만요. 김준이라는 인재의 가능성을 알아본 최우는 그의 공로를 치하하며 자신의 최측근 무사로 임명합니다. 벌레 목숨만도 못하던 노예의 처지에서 삽시간에 대역전되었으니 어쩌면 온갖 질시의 대상이 된 것도 당연한 일이긴 한데, 잔인하게도 질투..
첫 회부터 제 눈을 사로잡은 김윤후(박해수)가 2회부터 거의 나오지도 않는 단역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물론 훗날에는 승려 장군이 되어 큰 활약을 한다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님) 저는 조금씩 '무신'에 대한 관심을 잃어갔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 김준(김주혁)의 캐릭터에 별다른 공감이나 몰입이 되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무슨 격구시합 이야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질질 끄는지, 이환경 사극 특유의 지루함이 초반부터 느껴지더군요. 결투 장면이 길게 이어지는 것은 전적으로 남성들 취향일 뿐, 그런 걸 좋아하는 여성은 드물거든요. 예를 들어 유난히 전투씬이 많았던 '반지의 제왕2'를 극장에서 볼 때, 저는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쿨쿨 자고 있었다죠.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긴 아쉬워서 띄엄띄엄 보고 있었는데, 드디어 격구시..
주말 밤이면 MBC와 SBS에서는 1시간짜리 연속극을 연달아 2편씩이나 방송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물량이 많으면 양질의 작품들도 적잖이 나올 법 하건만, 어찌된 셈인지 거의 다 막장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지독히 식상한 소재들만 우려먹고 있는 상황이라 좀처럼 끌리는 작품이 없더군요. 특히 최근 종방한 MBC 연속극 두 편, '애정만만세'와 '천번의 입맞춤'은 어쩌면 그렇게도 속속들이 진한 막장의 향기를 풍기는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역겨울 만큼 얽히고 설킨 가족관계의 함정은 왜 그리도 자주 사용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어쨌든 두 편의 막장드라마가 비슷한 시기에 끝나고, 새로운 드라마가 또 연달아 2편이나 시작되었습니다. '신들의 만찬'은 초반의 여러가지 설정을 보니 2010년 여름 '제빵왕 김..
추석 특집으로 마련된 '제빵왕 김탁구 스페셜'은 드라마를 뛰어넘는 배우들의 막강한 매력에 푹 빠져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방송은 아주 잘 만들어져서, 정식 예능 프로그램에 맞먹는 수준의 웃음과 재미를 보장해 주더군요. 특히 서경석, 이지애와 더불어 MC로 변신한 이한위의 맛갈스런 진행 능력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예능의 게스트로 출연할 때마다 빵빵 터뜨리는 입담은 벌써 알고 있었으나, MC로서의 능력은 또 다른 것인데 이한위는 놀랍게도 아주 멋지게 수행해 주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와 달리 너무도 유쾌하고 즐거워 보이는 연기자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흐뭇하게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품은 드라마이긴 했으나, 돌이켜 보면 등장인물들이 행복하게 웃는 얼굴을 본 시간은 아주 짧..
염려했던 것처럼 팔봉 선생(장항선)이 하차한 후의 '제빵왕 김탁구'는 완전히 김 빠진 사이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쪽에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신유경(유진)이 있고, 한쪽에는 누구의 아바타인지 다 알고 있는데 괜히 어설픈 연막을 치는 조진구(박성웅)가 있습니다. 너무 뻔한 결말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지루함을 덜기 위하여 미스테리한 느낌을 가미한 듯한데, 솔직히 조진구가 김탁구를 배신하고 다시 한승재와 손을 잡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말이 나온 김에 조진구 쪽 이야기를 먼저 해보도록 하지요. 조진구는 박변호사와 더불어 구일중(전광렬)이 남겨 둔 탁구의 수호천사라 볼 수 있습니다. 김탁구(윤시윤)가 거성에 입성하여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초반에 강력한 버팀목이 되어 준 ..
'자이언트' 33회를 보면서 가장 섬뜩했던 장면은 전신마비가 되어 누워 있는 황태섭(이덕화)을 두고 그의 아내 오남숙(문희경)이 벌이는 범죄행각이었습니다. 이제껏 '드라마 속의 지극히 평범한 재벌 사모님'일 뿐 별다른 활약이 없던 오남숙은 최근 들어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요. 황태섭은 적자인 황정식(김정현)을 외면하고 서녀인 황정연(박진희)를 후계자로 삼았으며, 죽은 줄 알았던 이강모(이범수)가 살아 돌아오자 그에게 전재산의 반을 주겠다고 몰래 유언장을 수정했습니다. 시청자들의 눈에야 합당한 결정이었지만 오남숙의 입장에서는 남편을 증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죽이려고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충격이었습니다. 오남숙이 이처럼 부각되니, 그와 비견되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은..
착한 편과 나쁜 편으로 정확히 갈라져서 싸우기 시작한 잔혹동화 '제빵왕 김탁구' 23회에서는, 첫째로 팔봉 선생(장항선)의 죽음이라는 슬픈 사건이 발생했고, 둘째로는 거성의 주인과 안주인이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는 우스꽝스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팔봉 선생의 이야기는 따로 언급하도록 하고, 우선은 급격히 널을 뛰면서 다른 쪽으로 이동해 버린 구일중(전광렬)과 서인숙(전인화)의 캐릭터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황당한 것은 갑자기 '전형적인 아버지상'으로 변모한 구일중이었습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구마준(주원)을 향해 "너를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너에게서는 어떤 변명도 듣고 싶지 않다!" 라고 차갑게 단죄하며 참회할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리고 "두 번 다시..
구일중은 참으로 나쁜 아버지입니다. 14년만에 재회한 아들 탁구(윤시윤)와 끌어안고 폭풍 눈물을 흘리는 전광렬의 연기는 더할 수 없는 명품이었으나, 그 순간에도 제 마음은 차갑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오히려 속으로 "탁구야, 속지 마!" 라고 되뇌었다죠. 탁구의 인생 중 12년을 허비하게 만든 장본인은 사실 조진구(박성웅)가 아니라 구일중이었습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장 자애로운 아버지인 척하고 탁구를 끌어안고 있으니 제 눈에는 가증스럽게만 보였습니다. 그는 탁구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욕심을 냈던 것입니다. 천부적인 후각을 타고나서 제빵 사업에 큰 도움이 될만한 아들 탁구를 온전히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 모자간에 생이별을 시키려 했던 것이지요. 아무래도 후계자 자리에 앉힐 장남이..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방송 전에는 K방송사의 '버리는 카드' 라는 말까지 돌았었다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도 별로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단 시선을 끌만한 톱스타가 존재하지 않았지요. 타이틀롤을 맡은 윤시윤은 이제 겨우 시트콤에서 '그 집 손자'인 고등학생 역할을 해본 것이 연기 경력의 전부일 만큼 신인이고, 뮤지컬배우 출신의 주원은 아예 브라운관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며, 이영아는 너무 오랜만의 컴백이고, 유진은 히트작 하나 없는 무관의 요정이었습니다. 특히 라이벌 구도의 두 남자 주연이 너무 신인급이라, 안정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실험적인 작품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요. 그러나 '제빵왕 김탁구'는 아마도 천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