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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1~2회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신의 선물-14일'은 3~4회에서도 복잡하고 산만한 느낌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곳곳에 크고 작은 옥에 티가 난무하며 몰입을 방해했다. 예전에 아무리 깡패 여고생이었다지만 지금은 여리여리한 모습의 방송작가인데, 젊은 남자들과 맞붙어도 크게 밀리지 않는 김수현(이보영)의 엄청난 몸싸움 실력에는 그저 실소만 나올 뿐이다. 또 약간은 본질에서 빗나간 이야기지만, 여주인공의 이름을 '김수현'이라고 지은 것은 실수였던 것 같다. 김수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신의 선물' 주인공 김수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별그대'의 청춘스타 김수현, '세결여'의 드라마 작가 김수현... 두 사람 모두 현재 열렬히 활동하고 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장혜성'이라..
기본 설정과 출연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던 '신의 선물 14일' 첫방송이 드디어 전파를 탔다. 그런데 역시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1회는 전체적으로 매우 산만하여 집중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의외로 템포가 느려서 지루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모든 시청자들은 어린 샛별이(김유빈)가 유괴 살해될 것임을 미리 알고 보는 중인데,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드라마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는 것인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수많은 등장인물이 혼잡하게 쏟아져 나오며 한 시간 내내 기초 공사에만 분주했다. 이를테면 가수의 노래를 듣고 싶어서 콘서트 구경을 갔는데 객석에 앉아 무려 한 시간 동안 지켜본 것은 수십여 명의 스태프들이 들락거리며 앰프를 설치하고 무대장치를 하는 모습이었을..
영화에서는 감독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드라마에서는 작가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영화 시나리오는 연출자인 감독이 직접 쓰는 경우도 많지만, 드라마 대본은 전문 드라마 작가가 아닌 이상 쓰기 어렵죠. 영화에서의 '스토리'가 영상미나 배경음악 등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드라마에서는 '스토리'가 작품 전체의 80% 이상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스토리의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며 예외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장르의 특성이 그러한지라 저는 드라마를 선택할 때 연출자보다는 작가의 이름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허준'과 '대장금'의 눈부신 대성공에 힘입어, 1944년생의 노익장 이병훈 감독은 이 ..
김병욱 PD는 이번 작품에서 특히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욕구를 리얼하게 표현하려는 듯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먹고 자고 배설하는 문제 말입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생명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봤자 인간도 별 수 없습니다. 안내상 일가가 빚쟁이에 쫓겨다니면서도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이 바로 굶주림이었습니다. 입을 옷이 없어서 아빠가 딸의 옷을 입고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쯤은 웃어 넘길 정도로 괜찮았으나 배고픔만은 견딜 수 없었지요. 오죽하면 며칠 전까지도 부자였던 그들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낯선 소년(강승윤)이 사주는 피자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을까요. '하이킥3 - 짧은 다리의 역습'이 초반 6회까지 달리고 있는 이 때, 기본적 생존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서 가장 헉..
다음 주 종영을 앞둔 드라마 '싸인'은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으나 대체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은 수작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신선한 소재와 잘 짜여진 구성,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잘 어우러져서 긴장을 풀거나 지루할 틈 없이 계속 몰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연기자 박신양에게는 별로 흡족하지 않은, 아니 어쩌면 오히려 아픈 기억의 출연작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신양의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은 '파리의 연인'에서부터 '쩐의 전쟁'까지의 시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역을 맡았던 여배우 김정은과 박진희도 인기를 얻기는 했으나 박신양의 막강한 존재감에 비한다면 미약한 수준이었지요. 한창 물이 올랐던 그 시절에는 "애기야, 가자!"를 비..
박신양은 원래 연기를 참 잘 하는 배우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신인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1996년작 드라마 '사과꽃 향기'에서 저는 그를 처음 보았습니다. 무려 15년 전이군요. 김혜수와 김승우가 주연을 맡았고, 김혜수의 예전 남자친구 역할은 배우 윤동환이었습니다. 그럼 박신양은 뭐였냐구요? 마치 동성 친구처럼 김혜수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아주 성격 좋은 베스트프렌드 역할이었지요. 메인 러브스토리는 오히려 좀 어둡고 칙칙하게 느껴졌는데, 이 친구만 등장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밝아졌습니다. 밝고 명랑하고 사려깊은 친구 역할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는지, 연기가 아닌 실제처럼 보일 정도였어요. 그 후에도 박신양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보여주며 배우로서의 탄탄한 입지를 쌓아갔습니다. 그랬는데 ..
'닥터 챔프'는 참 묘한 드라마입니다. 지난 주에는 당황스런 베드신으로 실망을 주더니만, 이번 주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최고의 키스신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는군요. 언뜻 보면 별로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키스신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의 섬세한 감정을 극도로 끌어올린 김소연의 연기력은 13회의 엔딩 장면을 부인할 수 없는 명장면으로 끌어올려 주었지요. 저와 같은 '닥터 챔프' 매니아들의 머릿속에 정겨운과 김소연의 첫 키스신은 전설처럼 새겨질 것입니다. 비견될만한 장면을 꼽는다면 '검사 프린세스'에서 나왔던 서변 박시후와 마검 김소연의 첫 키스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또 김소연의 작품이군요. 오랜 공백기 동안 내면적으로 성숙해지면서 물이 오를대로 오른 김소연은 '아이리스'의 불꽃같은..
'닥터 챔프' 11회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엄태웅과 차예련의 베드신은 참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물론 두 사람 다 현재 싱글이고, 오래 전에 사랑했던 감정이 아직도 마음 속에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따지자면 굳이 흠잡을 일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드라마의 순조로운 진행을 생각해 본다면, 아무래도 없는 것만 못한 장면, 말하자면 큰 실수가 아니었을까 싶군요. 유도 챔피언 유상봉(정석원) 선수의 부상은 모든 사람에게 지독한 아픔과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필 자기와의 시합 중에 친구가 부상을 당해서 반신불수가 되어 버렸으니, 그 착한 박지헌(정겨운)이 받았을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한편 오래 전의 자기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은 유상봉 선수 때문에, 의무실장 이도욱(엄태..
'솔직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는 뜻입니다. 아주 좋은 말이지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저는 이 말에 묘한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솔직하다'는 말의 의미를 "거짓이나 숨김이 없다"는 쪽으로만 해석할 뿐 "바르고 곧다" 쪽과는 전혀 관계 없는 듯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단어의 잘못된 해석의 전형적인 예를 발견한 곳은 다름아닌 '채팅'에서였습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며 고정방에 들어가 익숙한 이름의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가벼운 담소를 나누는... 채팅은 한동안 저에게 있어 여가 시간을 즐기는 소중한 취미생활이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디조차 잊어버릴 만큼 예전의 일이지만요. 그런데 저와 제 친구들처럼 단순한 대화..
사회생활의 요령은 없어도 의사로서는 최고의 실력을 지닌 김연우(김소연) 선생이지만 때로는 실수를 하는군요. 일반 병원에서의 의사 생활과 태릉선수촌에서의 의사 생활은 확실히 다르긴 한가 봅니다. 시합이 다음날로 다가온 선수에게 수액 처방을 하는 바람에 도핑테스트에 걸릴 것을 우려한 코치는 그 선수를 경기에 불참시키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참가만 했으면 금메달이 유력시되는 선수였기에, 이것은 대형사고였습니다. 태릉선수촌에서는 긴급 회의가 소집되었군요. 의무실장 이도욱(엄태웅)은 매우 이성적인 태도로 회의에 임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김연우의 실수를 인정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도핑에 대해 철저한 교육을 하지 못한 선수촌 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며, 이대진 선수 외에 다른 선수들도 얼마든지 비슷한 경우에 처할 수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