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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사극 이미지가 강했던 중견배우 최수종이 오랜만에 현대극으로 돌아온 작품이 '하나뿐인 내 편'이다. 죽어가는 아내의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강수일(최수종)은 수십 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지만, 성장한 딸 김도란(유이) 앞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살아간다. 살인자에 전과자인 생부의 존재가 도란의 인생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해만 끼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법칙이 늘 그렇듯 모든 등장인물들의 운명은 계속 엮이게 된다. 강수일은 봄앤푸드 왕진국 회장(박상원)의 운전기사로 고용되고, 김도란은 왕회장의 장남 왕대륙(이장우)과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 설상가상 왕대륙의 차남 왕이륙(정은우)과 결혼한 장다야(윤진이)는 강수일이 과거 살해했던 남자의 딸이다. 이렇게 한 집안에서..
김수현 작가의 신작 '그래 그런거야'가 막장의 홍수 속에 따뜻한 가족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제법 야심차게 시작되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썩 좋지 못한 편이다. 첫방송은 4%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고, 해당 기사에는 재미가 아닌 피로를 느꼈다는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반드시 김수현 특유의 따발총 대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개인주의적 사고와 생활 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현대인들에게, 대가족이라는 집단의 모습은 더 이상 따뜻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이라 이름붙여진 그 거대한 집단의 일률적 원칙을 내세워 구성원 개개인의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노인들의 모습은 한없는 갑갑함으로 느껴질 뿐이다. 1년 365일 내내 명절 분위기를 이어가는 대가족 안에서 안주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주부 한혜경..
백과사전에 의하면 '운명론'이란 세상 만사가 미리 정해진 필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여기는 사상이다. 운명론의 특징은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논리적인 인간관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점에 있다고 한다. 운명이 전능의 힘을 가지고 인사(人事) 일체를 지배하기 때문에, 예컨대 한 사람이 어떤 날에 죽도록 운명지어지면 사전에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그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이제 보니 임성한 작가는 운명론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것 같고, 샤머니즘(무속신앙)에 끈질긴 애착을 갖고 있으며, 환생 등의 몽환적 개념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 싶다. 전작들에서도 그런 경향이 적잖이 드러났지만, 특히 '오로라 공주'는 임성한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각종 신앙과 사상과 개념들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
오로라(전소민)과 황마마(오창석)의 결혼이 확정되자, 이른바 '욕하면서 보던' 막장 러브라인이 일단은 종결된 셈이라 급격히 흥미가 떨어진 느낌이다. 원래대로 120회에서 마무리될 예정이었다면 더 이상의 변수는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무려 30회나 연장하는 바람에 앞으로도 50회를 넘기는 분량이 남아 있으니, 이제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아무리 드라마 속 일이라도 행복한 결혼식을 보면 덩달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신랑 신부가 행복하게 웃을수록 못마땅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동안 이 신혼부부의 염치없는 행위들을 바라보며 꼬여버린 심정은 저절로 또 다른 태풍을 기대하게 된다. 메인 스토리가 제1막을 내리며 한숨 돌리는 요즘,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한창 물이 올..
"얼굴 안돼 보이진 않아요?" 설설희(서하준)의 입에서 이 한 마디가 나오는 순간, 나의 눈시울이 세번째로 젖어들었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절실했는지, 이제껏 오로라(전소민)을 향해 왔던 설설희의 마음은 그 한 마디에 모두 담겨 있었다. 그토록 모질게,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 없이, 끝내 그의 이해와 배려만을 요구하며 이별을 통보한 그녀였다. 그도 사람인데 어찌 분노가 치밀지 않았으랴! 오로라는 무례한 이별 통보를 끝낸 후 잽싸게 먼저 차에 올라탔고, 설설희가 칼에 찔린 가슴을 채 봉합도 못한 상태로 운전석에 들어오자 "불편하면 따로 갈게요" 라고 말했다. 남자의 인내심을 테스트라도 하는 것처럼, 더 이상 뻔뻔할래야 그럴 수 없는 정도였다. 아무리 몰락했어도 '공주'는 이래서 '공주'인 것일까? ..
'막장'이라든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등의 수식어를 줄줄이 달고 다니는 드라마 작가가 몇 명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서영명, 문영남, 임성한 등이 그렇습니다. 이들의 드라마에는 참으로 기이한 공통점이 있는데, 방송될 때마다 논란이 그치지 않고 호평보다는 악평이 자자한데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동시간대 1위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높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서영명과 문영남의 작품은 제 취향에 맞지 않아서 거의 안 보았고, 임성한의 작품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좋은 시선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동안 저의 사전에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인생 최초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생겼으니 바로 구현숙 작가의 '불굴의 며느리'입니다. 한동안은 너무 짜증나서 시청을..
'세상을 바꾸는 퀴즈' (이하 '세바퀴')는 대략 1년 전까지만 해도 기타 예능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경실, 조혜련, 김지선 등 기 센 아줌마들의 오버스러움은 애교스런 할머니 선우용녀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아래 융화되어 거부감의 덫을 비켜났고, 그 위에 임예진의 귀여운 푼수기와 조형기의 구수한 입담과 김태현의 촌철살인 개그 등이 잘 버무려져 독특한 감칠맛을 냈지요. 초대되는 게스트들도 매우 다양해서, 좀처럼 TV에서 볼 수 없던 반가운 얼굴들을 수시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게스트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우선 프로레슬러 이왕표라든가, 코미디언 최병서, 배우 이정섭 등의 이름이 떠오르는군요. 20대 초반의 젊은 게스트는 예쁜 고명처럼 조금씩 얹혀져 있었을 뿐, 대부분은 높은 연령..
엄마 김민재(김해숙)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수십년 전에 헤어진 전남편이 죽음을 앞두고 딸을 찾는다는데, 민재는 딸 양지혜(우희진)가 임신중인데 충격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지혜에게 말도 하지 않고 그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자기 혼자 전남편을 만나 지혜의 사진만 전해주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장례를 치렀다며 마지막 소식을 알리는 문자가 민재의 휴대폰에 도착했고, 하필이면 주방에서 엄마와 함께 일하고 있던 지혜가 그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혜의 상실감과 분노는 예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생부였지만, 그리고 34년 동안 단 한 번도 자기를 찾은 적 없는 매정한 생부였지만 그녀의 가슴 속에는 평생 그리운 아빠였던 것입니다..
영화배우 임예진이 1970년대 후반에 누렸던 인기는 그 어떤 여배우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국민여동생' 이라는 칭호가 없었지만, 굳이 비교한다면 문근영이 영화' 어린 신부' 이후에 누렸던 인기보다도 훨씬 더 압도적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네요. 우선 당시에는 활동하는 여배우 및 연예인들이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었고, 여고생 임예진의 청순가련한 미모는 남학생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요 여학생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임예진이 어느 순간부터 코믹한 이미지로 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억에는 '진실게임'에 고정패널로 출연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진실게임에서 그녀는 언제나 송은이의 옆자리에서 콤비를 이루며, 정통 영화배우로만 보기에는 만만치 않은 내공의 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