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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솔직히 가끔은 '내가 이 유치한 드라마를 왜 보고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길 때도 있다. 처음에는 그저 '관성' 때문이었다. 무려 133부작에 달하는 '못난이 주의보'를 재미있게 시청하다가 그게 종영되고 나니 허전했던 탓이다. 경쟁사의 '오로라 공주'도 막장 논란을 즐겨가며 시청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종영되고 말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후속작들은 전작들의 재미와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조선시대 뺨칠 만큼의 남녀차별 가풍을 보여주는 '잘 키운 딸 하나', 단순한 구조 속에 우유부단의 극치를 달리는 여주인공을 내세운 '빛나는 로맨스'... 둘 다 썩 마음에 안 들지만 아무것도 안 보자니 허전해서, 어쨌든 나는 '잘 키운 딸 하나'를 선택했다. 두 작품이 60회 가량 방송된 현재의..
예고편만 보았을 때는 기본 설정 자체가 너무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에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가업을 잇기 위해서 꼭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집안이라니 그 발상부터가 믿기 어려울 만큼 고루하고 어리석은데, 이 드라마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장여자라는 주인공의 정체성 또한 그 한심스런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잘 키운 딸 하나' 라니 제목은 또 왜 그리 촌스러운지! 지나치게 높은 출산율이 사회 문제가 되었던 1970년대에는 산아제한을 권장하는 표어가 유행이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지라 표어의 내용도 모두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처음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였다가, 여전히 인구조절이 잘 되지 않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
'굿 닥터' 1~2회는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의사...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아주 강렬하게 시선을 끌었죠.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누구보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소아외과 의사라니, 마치 꿈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듯한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은 단숨에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게다가 서번트 증후군으로 인한 천재적 암기력과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짚어내는 판단력도 매력적이었고요. 박시온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참 많이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주원의 명품 연기도 감탄을 자아냈죠. 하지만 신선함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3회 이후로 '굿 닥터'는 급격히 밋밋해지면서 초반의 흡입력을 잃고 말았어요. 일단은 주..
오랜만입니다. 이러다가는 훌쩍 건너뛰고 마지막회 리뷰나 쓰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좀 일찍 돌아왔습니다. 몇 분이라도 반겨 주신다면 다행이겠네요..^^ 종방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점점 지쳐서 받아먹을 힘도 없는데, 스텐레스김이 던지는 떡밥은 점점 커져만 가니, 그걸 일일이 쫓아다니다가는 꽥~ 맞아 죽을지도 몰라요. 저는 이제 아무리 탐스러운 떡밥이 던져져도 일단 슥~ 피하고 볼 생각입니다. 김병욱은 116회의 엔딩에 "삶은 참 불가측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다..." 라는 이적의 의미심장한 나레이션을 삽입함으로써 모든 애청자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지만, 저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제 눈에는 떡밥 티가 너무 심하게 났거든요. 며칠 후면 다시 만나게 될 윤지석(서지석..
앞으로 김병욱 시트콤을 감상할 때는 매회마다 리뷰를 올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매번 리뷰를 쓰다 보니 개인적으로 두 가지 부작용이 있군요. 첫째는 너무 '하이킥'에만 빠져들어서 다른 글을 쓰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고, 둘째는 갈수록 스텐레스김의 손바닥 위에서 농락당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떡밥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그의 어장에 노는 물고기로서 받아먹지 않기에는 떡밥들이 너무나 크고 먹음직해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떡밥이라도 애써 던져주는데 매몰차게 외면하자니 좀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허구헌날 판단과 예측이 바뀌며 횡설수설하게 되는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원래 고집이 상당히 세고 초지일관하는 편인데, 이러면서 스타일도 무너지고 자존심도 구겨집니다...
"저도 아저씨를 따라서 르완다에 가고 싶어요!" 언젠가는 김지원의 입에서 그 말이 꼭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장면에서 제가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오랫동안 설레면서 기다려 왔던 장면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정과 목소리로 그 말을 할지가 늘 궁금했지요. 아직 신인에 불과한 김지원의 연기력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김병욱이 선택한 여주인공이니까, 연기자가 좀 부족하더라도 정성껏 이리저리 고치고 다듬어서 최고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무슨......;; 지난 번 놀이공원 에피소드 이후로 급격히 망가져 가고 있는 김지원의 캐릭터 때문에 좀 불안하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한 편의 공포영화처럼 스릴 넘치게 만들어진 105회는 나름 수작이라 할만했습니다. 짧은 분량 속에서 어쩌면 그토록 탄탄한 짜임새를 구축할 수 있는지, 새삼 김병욱 사단의 역량에 놀랄 수밖에 없는 회차였지요. 한 장면도 놓칠 수 없고 버릴 것도 없었던, 모든 장면이 암시와 복선으로 이루어졌던 24분이었습니다. 리뷰를 쓰면서 줄거리를 자세히 늘어놓는 것은 원래 제 스타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 섬세한 연출에 경외심을 느끼며 재미삼아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조목조목 써놓고 보니 좀 길어지기는 했네요..ㅎㅎ 1. 박지선은 특별활동 영화부 지도를 맡아 자료를 검토하느라 어두운 학교 강당에서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던 중, 갑자기 불쑥 나타난 박하선 때문에 깜짝 놀란다. 서류를 찾으러 왔던 김에 박하선도 영화 관..
오래 전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원래는 사형 제도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였는데, 사형수로 등장한 숀펜의 캐릭터가 소름끼치도록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그 주제에 별로 공감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팀 로빈스 감독은 무조건 한 쪽의 타당성만을 주입식으로 전달하지 않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양쪽의 입장 모두를 관객에게 제시하려 했다는데, 저의 견해로는 객관적인 거리 유지를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헬렌 프레장이라는 수녀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헬렌 수녀(수잔 서랜든)는 영적 지도자로서 사형수 매튜(숀펜)의 상담을 해주고 있었는데, 영화 초반에 억울한 누명을 쓴 힘..
예고도 없이 시작되었던 생뚱맞은 스페셜 방송을 거쳐 일주일만에 '하이킥3'가 다시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시청자와 다시 만나는 방송일 뿐만 아니라 100회라는 숫자의 특성도 겸비한 회차였기 때문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며 잔뜩 부푼 기대감으로 시청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막상 시청한 후에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 내용도, 의미도, 웃음도 없는 듯 했거든요. 모처럼 인생의 진지한 의미를 찾는가 싶었던 윤유선은 생뚱맞게 춤바람이 나 버렸고, '카리스마 블랙하선' 에피소드는 그저 인기 높은 박하선의 팔색조 매력에 의존해서 겨우겨우 한 회를 때우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일주일이나 쉬었으면서... 이쯤 되면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래도 명색이 ..
생각해 보면 스텐레스김은 가난한 사람의 캐릭터를 멋지게 그려주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똑바로 살아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박영규가 가장 찌질한 못난이였죠. 손윗 동서 노주현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처지에 툭하면 병원 공금을 횡령하고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등 민폐 행각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진 자' 노주현이 너그러운 아량으로 늘 용서해주며 데리고 살았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그와 같은 설정은 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극심한 가난은 사람의 마음조차 척박하게 만들어 버리니, 인간으로서의 품위나 사회적 정의 따위를 챙길 여유가 없겠지요. 스텐레스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 '지붕킥'의 신세경 한 사람을 제외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찌질하게 그려졌습니다. 이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