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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아무래도 주인공을 악역으로 설정한 것은 치명적 패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본인이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드라마의 주인공을 통해서나마 대리만족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주인공이 나쁜 놈으로 그려지면 절대 몰입할 수가 없거든요. (혹시 "저 나쁜 놈... 그런데 보면 볼수록 나랑 비슷하네. 그러니까 응원해야지" 이러면서 몰입할 사람도 있을까요? ㅎㅎ) 물론 주인공도 악한 행동을 할 수 있으나, 그 행동에 충분한 이유가 주어지고 보편적으로 이해 가능한 수준이 되어야만 몰입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입봉작이라 할 수 있었던 '추적자'의 호평과 성공에 너무 들떴던 게 아닐까요? 주인공을 악역으로 만들고 그에 합당한 동기 부여마저 쿨하게 넘겨버린 박경수 작가의 용감함은 언뜻 과도한 자신감으..
'추적자 THE CHASER'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박경수 작가가 1년만에 신작 '황금의 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추적자'는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폐단이라 할 수 있는 '뒷심 부족'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보기 드문 수작이었죠.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려 온 차기작인데, 아무래도 평온한 마음으로 즐겁게 시청하기는 그른 듯 싶군요. 홈페이지를 둘러 본 느낌부터 쎄하더니 첫 방송을 시청한 후에는 더욱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하긴 돌이켜 보면 '추적자'도 맘 편히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전혀 아니었죠. 볼 때마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 답답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이끌림에 빠져들게 되는 묘한 작품이었습니다. 너무도 가감없이 표현되는 잔혹한 현실은 차라리 눈 감은 채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
시종일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초등학생이 국어책 읽는 듯한 대사를 치는 한가인의 연기는 8회에서도 전혀 나아진 바가 없었습니다. 영의정 윤대형(김응수), 대왕대비 윤씨(김영애), 국무 장녹영(전미선), 내관 형선(정은표) 등 명품 조연들의 연기에 넋을 놓고 푹 빠져 있다가, 여주인공이 등장할 씬만 다가오면 불안감에 가슴이 두근두근해집니다. 그러면 한가인은 언제나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연기로 저의 두근거리는 심장에 보답해 줍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라는 표현이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이제껏 본 적이 없군요. 몸종 설이(윤승아)와 함께 있을 때는 그나마 둘이 비슷한 수준이라 비교가 안 되니 좀 낫습니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과 맞붙을 때는, 마치 두 개의 다른 드라마..
걱정스런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긍정적인 자세로 기다려 왔건만, 희망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우려했던 것보다도 사태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차라리 대사를 안 하고 있을 때는 그럭저럭 봐줄만 했는데, 한가인이 입을 열자마자 '해품달'은 사극도 아니고 시트콤도 아닌, 기묘한 장르의 알 수 없는 드라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껏 드라마 전체를 은은하게 휩싸고 있던 슬프고도 신비한 분위기는 한순간에 와장창 깨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야말로 "헉~!"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 충격이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몇 년만의 안방극장 컴백인데,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다시 드러낼 모처럼의 기회이며,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온갖 비난을 잠재우고 주연급 여배우로서의 위상을..
'몽땅 내 사랑'에서 드디어 감격적인 부녀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토록 애타게 친딸 샛별이를 찾아 헤매면서도 바로 눈앞에 있는 딸(윤승아)을 알아보지 못하고 매일 구박만 하는 김갑수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는데, 그들이 혈육을 만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한 마음이 앞서더군요. 작품 전체의 가장 큰 비밀이 풀렸으니 앞으로의 변화무쌍한 전개는 더욱 흥미로워질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샛별이의 행방에 대해 마지막 단서를 쥐고 있던 최순옥 할머니가 결국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김갑수의 절망은 극에 달했지요. 이제 영영 딸을 찾을 방법이 없어졌다고 여긴 김갑수는 비밀의 방에 꽁꽁 숨겨 놓았던 샛별이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어딘가에 살아 있을 딸을 향해 목 멘 소리로 중얼거..
'몽땅 내 사랑'에서 사랑과 복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전태수가 느닷없이 음주 폭행 사고를 일으켜 하차하게 된 후 '몽땅'의 스토리는 혼란을 거듭해 왔습니다. 전태수가 빠져나간 빈자리가 너무 컸기에, 도대체 이제 와 그를 빼놓고 무슨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었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몽땅'은 다른 캐릭터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소소한 웃음으로 시간을 벌며 잘 버텨왔고, 최근에는 새로 투입된 진이한이 전태수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채움으로써 안정적 포맷을 되찾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후속작으로 예정된 '하이킥 시즌3'의 제작이 늦어짐에 따라, 원래 120회 예정이었던 '몽땅 내 사랑'이 연장되어 무려 200회까지 방송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화제성과 시청률 면에서 대박을 쳤던 '거침없이 하이..
최근 '몽땅 내 사랑'에 굉장히 예쁜 캐릭터 하나가 생겨났습니다. 순덕이라는 이 아가씨는 구수하면서도 통통 튀는 부산 사투리를 쓰는데, 오래 전부터 윤두준을 짝사랑한 나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두준오빠야~"를 불러대며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어차피 공부에는 취미도 없고 하니 두준오빠 곁에서 돈이나 벌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예쁘장하게 생긴데다 어찌나 싹싹하고 붙임성도 좋은지,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두준엄마 방은희도 그녀의 깜찍함에 반해 선뜻 하숙방을 내주었으니, 순덕이는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두준오빠야랑 한집에 살 수 있게 되었군요. 귀여운 순덕이 역할을 맡아 멋지게 소화하고 있는 연기자는 바로 애프터스쿨의 리지입니다. 아마도 연기는 처음이지 않을까 싶은데 어쩌면..
일일시트콤 '몽땅 내 사랑'은 작품성 면에서 보았을 때 크게 흥미로운 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시트콤은 드라마보다 더욱 캐릭터가 중요시되는 장르지요. 드라마는 전체적인 스토리가 탄탄하게 짜여져 있으면 개별적 캐릭터가 매력없더라도 흥미를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트콤은 호흡이 짧고 각 회마다 별개의 에피소드를 소화해야 하므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은 스토리보다 캐릭터의 힘입니다. 시트콤의 캐릭터는 매력적일 뿐 아니라 설득력이 있어야 하며,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지붕뚫고 하이킥'의 황정음, 신세경, 이지훈(최다니엘), 정준혁(윤시윤) 등은 모두 제각각 다른 스타일로 뚜렷한 개성을 지녔는데, 다양한 시청자들은 저마다 자기의 취향에 맞는 캐릭터를 골라 심취할 만큼 몰입..
큰 기대는 없었으나 그저 호기심에 '고사2'를 보고 왔습니다. 전편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능했지만, 역시 수작(秀作)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여 저의 예상은 엇나가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어지럽게 흔들리는 화면과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시끄럽게 질러대는 비명소리 및 끼익거리는 음향효과 때문에 눈과 귀가 상당히 피로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허술한 플롯 때문인지 공포는 함량미달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간을 늘리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지 않아서 1시간 30분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으로 마무리한 것이 오히려 깔끔하게 느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별 내용 없이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영화를 더 이상 길게 본다는 것은 너무 지치는 일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