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유인나 (9)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내가 기억하는 연애 프로그램의 시초는 1994년에 시작되었던 MBC '사랑의 스튜디오'였다. 당시 나는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던 한동준의 '사랑의 마음 가득히'라는 노래에 반해서 끝없이 반복해 듣곤 했었다. "때로는 누군가 그리웠던 적도 있었지~ 그렇게 혼자만 있던 시간은 이제는 안녕~ 때로는 누군가 가슴에 품고 싶었었지~ 외롭게 보냈던 지난 날들은 잊고만 싶어~ 언제나 내 곁에서 날 위로해 줄~ 그 누군가가 필요한 거야~" 지금 들어도 참 좋은 이 노래의 가사는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의 간절함과 외로움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비범한 재능을 갖춘 젊은 연예인들이 '강호동의 천생연분'이나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등의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폭넓게 알리기 시작했다. '비'라..
소재와 설정은 이토록 매혹적인데 나는 왜 빠져들 수 없는 것일까? 종영을 불과 5회 앞둔 '별에서 온 그대'의 스토리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남녀 주인공 천송이(전지현)와 도민준(김수현)의 멜로 역시 그 정점을 찍었다. 15회 엔딩에서 마법같은 초능력으로 천송이를 끌어당겨 '내가 너한테 할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인 짓'을 하겠다며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도민준의 모습은 순정만화 속의 판타지 그 자체였다. 지구를 떠나 자신의 고향 별로 돌아가야 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극구 사랑을 부인하며 다가오는 천송이를 밀어내던 도민준이 결국 불가항력적인 사랑 앞에 굴복하고 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도 그닥 가슴이 설레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 탓이었다. 천송이는 솔직..
제1회의 폭풍 전개에 비하면 '별에서 온 그대' 2회는 코믹 에피소드 중심의 다소 느슨한 전개를 보여주었다. 어려서부터 배우 활동에만 전념하느라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천송이(전지현)의 몰상식함은 나날이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포털 검색 순위를 장식하는데, 매니저가 성실히 베껴 짜깁기 해준 리포트 덕분에 강의실에서 젊은 교수 도민준(김수현)에게 빵점을 맞는 모습이 '천송이 스페셜' 다큐에 그대로 찍히면서 상한가를 치고 말았다. 모카라떼가 맛있다며 '모카씨(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에게 감사하고, 갈릭 피자에서 이상하게 마늘 냄새가 난다며 투덜거리고, 피부 관리를 위해 언제나 프로포폴(프로폴리스)을 애용한다는 천송이... 그 정도로 무식하면 아무리 예뻐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할 것 같은데 ..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과 '내 딸 서영이'가 연이어 5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대박을 기록한 후, 그 축복의 시간대에 '최고다 이순신'이라는 제목의 새 드라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그 시간대에는 달리 볼만한 공중파 드라마가 없을 뿐 아니라, KBS 주말드라마는 원래 주 시청층의 연령과 충성도가 높은지라 이번에도 별 무리없이 중박은 장담해도 되지 않을까 싶군요. 하지만 전작들이 워낙 대박을 쳤던지라, 그 바통을 이어받고도 중박에 그치면 찬사는 커녕 비웃음만 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최고다 이순신'에 임하는 배우들과 제작진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첫 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일단 남주인공이 여러모로 아주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신준호라는 캐릭터 자체도 신선하고 매력적이지만..
하정우와 공효진의 이름을 믿고, 개봉하자마자 '러브픽션'을 보았습니다. 과연 하정우와 공효진의 후덜덜한 연기력이 이 영화를 살렸더군요. 그들이 아니라 다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면 별로 가망이 없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영화 자체의 퀄리티는 높지 않습니다. 연애를 소재로 만든 영화들은 보통 고백하기 이전의 설레는 감정에서부터 사랑이 시작되기까지의 풋풋한 시간들을 주로 다뤘다면, '러브픽션'은 연애의 시작에서부터 연애를 오래 지속한 커플들이 겪어 나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제작진 측에서는 주장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물론 영화가 아니라 가요이긴 하지만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발표된 시점이 1992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 전입니다. "저녁이 되면..
드디어 10년 전, 국보소녀의 해체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많은 사람의 예상대로 그 원인은 한미나(배슬기)에게 있었습니다. 미나는 옛 동료였던 제니(이희진)와 강세리(유인나)를 불러 모든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국보소녀로 활동할 당시, 연예인의 삶 자체를 너무도 힘겨워했던 미나는 남자 아이돌 스타(브라이언)와 사랑에 빠졌고, 그와의 결혼을 통해 현실에서 달아나려 했습니다. 부적절한 상황이지만 그녀에게 잉태된 아기는 현실에서 도망갈 수 있게 해 줄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멤버들 중에서는 오직 리더인 구애정(공효진)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구애정이 자기를 따돌린다고 오해한 강세리가 음료수에 약을 타는 해서는 안 될 장난을 했고, 우연히 구애정 대신 그 음료를 마신 한미나는 유산을 하고 말았..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최고의 사랑' 속에는 '커플메이킹'이라는 TV 프로그램이 나옵니다. 등장인물들의 만남과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이 '커플메이킹'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구애정(공효진)입니다. 한 때는 '국보소녀'라는 이름의 걸그룹 멤버로서 화려한 시절을 보냈으나, 지금은 비호감으로 낙인찍힌 채 험난한 연예계 생활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기에 온갖 굴욕을 감수하면서도 TV 출연 기회을 구걸하고, 무리한 지방 행사까지 전전하면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던 그녀의 인생에 10년만에 기적과도 같은 변화가 찾아드는데, 그것은 두 남자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남자 주인공 독고진(차승원)입니다. 영화배우인 그는 현..
참 오래 걸렸습니다. 총 20부작 드라마의 절반을 훌쩍 넘어, 무려 11회의 엔딩 장면에 가서야 제가 드디어 이 드라마의 히어로 김주원(현빈)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군요. 그렇다고 남들처럼 현빈앓이에 동참하게 된 수준은 아니지만, 이제껏 대책없는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던 김주원이 심상찮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제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아파 옵니다. 어쩌면 그 동안 김주원에게 빠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마음을 더 닫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군요. 그는 너무 매력적인 남자인데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소년처럼 외로운 자아를 지녔습니다. 못된 성질도 못된 말버릇도, 차분히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부러 김주원에게 몰입하지 않으려 하며, 철저히 여주..
옛날 옛날에... 아니, 그렇게 옛날은 아닌지도 모르겠는데... 해리라는 어린 공주님이 살았어요. 공주라고 하니까 아주 예쁘고 사랑도 듬뿍 받았을 것 같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리 공주는 그렇지를 못했어요. 해리 공주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큰 회사의 사장님과 부사장님이에요. 임금님처럼 돈이 많아요. 그래서 언제나 해리 공주는 예쁜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냥 그것뿐이었어요. 해리네 나라보다 더 가난한 이웃나라 왕자님과 공주님은 모두 가족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노는데, 그 커다란 궁궐같은 집안에서 해리 공주는 늘 혼자예요.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아빠와 엄마는 해리를 혼자 놔두고 둘이서만 저녁을 먹으러 나갔어요. 할아버지도, 삼촌도 모두 여자친구가 있어서 자기들만 행복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