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산군 (5)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윤균상)과 활빈당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쌀보다도 돈보다도 복수(?)의 쾌감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사람은 오직 나뿐일까? 물론 끼니를 해결하기 힘들 정도의 형편이라면 쌀이나 돈이 더 반갑겠지만, 요즘은 그렇게까지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보다는 정신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현실이기에,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아마도 많을 거라 생각된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쌀과 돈을 베풀어 주는 홍길동의 모습이야 제법 익숙한 것이지만, 천민과 여성 등의 약자들을 잔인하게 괴롭힌 양반들을 찾아가 통쾌하게 복수해 주고 똑같은 고통을 전해주는 홍길동의 모습에서는 뭔가 새로운 매력마저 느껴지지 않는가! 홍길동과 활빈당 동료들이 가장 먼저 찾아간 양반은 진사 박종주였다. 그..
처음부터 범상한 느낌은 아니었다. 처음 만난 덩치 큰 사내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고, 뭔가 신경에 거슬린다 싶으면 거침없이 뺨까지 올려붙이는 조선시대 여자아이라니! 신분 높은 공주나 양가댁 규수도 아니고, 기생도 천대받던 시절인데 하물며 기생의 몸종에 불과했으니. 가령(채수빈)은 천한 중에도 가장 천한 신분이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가령의 존재는 벌레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 누구든 마음껏 짓밟을 수 있고, 설령 죽인다 해도 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그만큼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았을 거라는 얘기다. 그러한 신분의 가령이가 어찌 그토록 당돌한 성품으로 자라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어려서부터 천대받고 짓밟히며 성장했다면, 티..
큰 기대는 없었으나 그저 호기심에 '고사2'를 보고 왔습니다. 전편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능했지만, 역시 수작(秀作)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여 저의 예상은 엇나가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어지럽게 흔들리는 화면과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시끄럽게 질러대는 비명소리 및 끼익거리는 음향효과 때문에 눈과 귀가 상당히 피로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허술한 플롯 때문인지 공포는 함량미달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간을 늘리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지 않아서 1시간 30분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으로 마무리한 것이 오히려 깔끔하게 느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별 내용 없이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영화를 더 이상 길게 본다는 것은 너무 지치는 일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와중..
배우 정진영의 연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참 많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정진영이 출연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작품에 대해 든든한 신뢰까지 생기곤 하거든요. '동이'를 2회까지 시청하면서 제가 참 다행이라고 느낀 점은, 포도청 종사관 서용기라는 역할을 다른 배우가 아닌 정진영이 맡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서용기는 기본 성격이 너무 올곧은 사람이기에 악역이 될 수는 없는 인물이지만, 과연 주인공인 동이(한효주)의 편에 서 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의 부친 서정호가 살해당한 곳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최효원(천호진)의 모습을 보고, 서용기의 얼굴에 떠오르던 경악스런 표정은 제 가슴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습니다. 아무리 그가 유능한 수사관이며 침착한 성품을 지녔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
"세상 어디에도 도망친 노비가 갈 곳은 없다!" 이것은 '추노'의 대사일까요? 아닙니다. MBC에서 새로 시작된 월화드라마, 이병훈PD의 사극 '동이'의 첫방송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요즘 '추노'라는 드라마에 한동안 빠져서 지내고 있던 터라, '도망친 노비'라는 익숙한 표현을 들으니 왠지 반가웠더랍니다..^^ 사실 '동이'에서 도망친 노비나 추노꾼들은 중요한 역할이 아닙니다. 그들이 잠시 등장한 이유는 이 드라마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검계(劍契)를 인상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함이었지요. 검계는 조선후기에 실존했던 조직으로, 학자에 따라서는 민중 저항운동 세력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단순한 반양반 세력으로 본다고 합니다. 폭력을 행동강령으로 삼으며 약탈, 살인 등을 일삼고, 스스로 자기 몸에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