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아가사 크리스티 (4)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10회에 이르러 중대한 비밀의 일부가 명백히 밝혀졌다. 거의 확신에 가깝게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끔찍한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르니 가슴에 느껴지는 먹먹함의 정도는 이전과 비할 수가 없었다. 어린 산이의 존재를 이용해서 강유정(황정음)의 가석방을 막은 사람... 치매에 걸린 유정의 아버지(강남길)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 그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이 두 가지 죄악을 저지른 사람은 역시 안도훈(배수빈)이었다. 강유정은 안도훈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는데, 안도훈은 자신의 안위와 출세를 위해서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을 빼앗아갔던 것이다. 강유정은 안도훈의 뺑소니 범죄를 대신 덮어쓰고 옥살이를 함으로써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수없이 입었지만, 이제..
스텐레스김이 예측 불허 '뒤통수 반전'의 대명사가 된 것은 '지붕뚫고 하이킥'의 결말 때문이었지요. 별로 명예로운 칭호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만큼 충격적인 반전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간 부분의 개연성이 떨어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발표된 후, 그 범인이 너무 뜻밖의 인물이라는 이유로 논란이 일었다지요. 최소한의 복선도 깔아놓지 않고 제멋대로 이끌어낸 결말이었다며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전문가들의 세심한 분석을 통해 크리스티가 곳곳에 숨겨 놓은 미묘하고 세심한 복선들이 속속 드러나며 비난은 곧 감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붕킥'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죠. '지붕킥'의 결말 때문에 온 세상이 시끄럽던 당시,..
'대물'은 여러모로 참 시끌시끌한 드라마입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출연을 강행하는 권상우 때문에 방송 전부터 말이 많더니만, 뚜껑이 열리고 난 후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현실에 가까운 설정들로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드라마와 현실의 경계선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것은 결코 저만의 느낌이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위험한걸!" 하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대물'은 총 26부작 중 겨우 4회까지 방송되고 나서 작가와 PD가 모두 교체되는 대파란을 겪었습니다. 저같이 눈치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는 분명하지만, 제작진 내에서의 의견 충돌 및 과다 업무 등의 문제로 그렇게 된 것일 뿐 외압은 없었노라고 그들 자신이 말하고 있으니, 추측만으로 단정짓고 뭐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구미호 여우누이뎐' 10회에서는 구미호(한은정)의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는 퍽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는군요. 이것은 공포 드라마가 아니라 일종의 심리 드라마, 또는 추리 드라마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공포물보다 추리물을 훨씬 더 무서워하는 독특한 경향이 있거든요. '전설의 고향'의 귀신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고, '스크림' 류의 영화에 나오는 연쇄 살인마도 끔찍하기는 하지만 크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아가사 크리스티 극장' 류의 추리물은 너무나 무서웠어요.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 뾰족한 칼날이 숨겨져 있는 느낌이랄까요? 서늘한 냉기는 끊임없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 차츰 소리없는 공포는 깊어져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