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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 히어로물일거라 생각했던 '각시탈'은 점점 더 묵직한 주제의식을 드러내며, 이 시대 사람들에게 어느 새 잊혀져 버렸던 애국심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촬영 초기에 있었던 보조출연자 사망 사고에 대한 뒷수습이 말끔하게 처리되지 못한 것과, 중간 부분에 필요 이상으로 커다란 욱일승천기를 등장시키며 여배우로 하여금 기미가요를 완창하게 했던 회차를 계기로 "오히려 친일드라마가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던 것 등, 몇 가지 만만찮은 잡음이 있었던 탓에 이 작품이 국민드라마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선뜻 자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더구나 우연인지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방송 시기가 올림픽 기간과 맞물..
지난 주 신지현(남규리)의 목걸이에 첫번째 눈물 방울이 담겼을 때, 저는 당연히 한강(조현재)의 눈물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바로 직전에 나온 장면이 한강의 방에 놓여있는 화분에서 신지현의 도장이 발견되고, 그것을 본 한강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바로 다음 장면에서 송이경(이요원)의 몸 속에 갇힌 신지현의 영혼은 하늘을 향해 "살려주세요, 난 살아야 해요, 살고 싶어요" 하고 간절히 외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그녀의 목걸이가 눈부신 빛을 내더니 첫번째 눈물 방울이 담겨졌습니다. 정말 감격적인 순간이었죠. 저는 드라마 리뷰를 쓸 때 추측성 글은 되도록 쓰지 않는 편입니다. 사실 그 쪽에는 별 능력이 없거든요. 저는 그 눈물의 주인이 당연히 한강일 거라고 생각..
현재 OCN에서 금요일마다 방송 중인 액션 사극 '야차'는, 만약 공중파에서 편성되었다면 작년 겨울의 '추노'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호평을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을 작품인데, 케이블의 특성상 시청률에 한계가 있으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공중파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 액션을 선보이며 독특한 매력을 살리고 있지요. 사람마다 시청 포인트는 다를 수 있겠으나, 저는 언제나처럼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갈등구조를 중심으로 감상합니다. 특히 8회와 9회에서는 주인공들의 사랑과 원한과 복수가 본격적인 궤도에 접어들며 긴박감을 고조시켰습니다. '야차란 원래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사람을 해치는 귀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가진 '야차'는, 이 드라마에서 사랑하는 사람..
걸그룹 '슈가'의 멤버로 활동할 당시, 황정음은 지금보다 약간 동그스럼한 얼굴에 아주 귀여운 가수였습니다. 저는 2003~2004년 무렵에 '도전 1000곡'을 굉장히 즐겨 보았었는데, 출연할 때마다 황정음이 보여주던 노래 실력에 무척 감탄하곤 했습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오래된 노래까지 두루 섭렵했을 뿐 아니라, 가사조차 한 번도 안 틀리고 끝까지 청아한 목소리로 완창하는 그 모습은 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지요. 어떤 대선배 여가수는 귀엽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기는 이 조그만 머릿속에 어쩜 그렇게 많은 가사를 집어넣고 다니니?" 라고 물었던 적도 있습니다. '슈가' 해체 이후 황정음은 연기자로 데뷔했으나 한동안 부진의 늪에서 시달렸지요. '사랑하는 사람아', '겨울새' 등의 작품에 ..
드디어 이강모(이범수)가 출소하여 '한강건설'이라는 회사를 창립하고 야심찬 복수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강모는 별로 운이 나쁜 편도 아니군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긴 했지만 형 이성모(박상민)가 정부기관 쪽에 연줄이 닿아 있어서 어느 정도 보호를 받으며 출소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고 (아직 형기를 마친 것은 아니지만), 황태섭(이덕화)이 그의 아들 대신 누명을 써 주는 댓가로 선선히 이강모에게 넘겨 주었던 개포지구의 거대한 노른자위 땅이 모두 그의 소유로 남아 있으니, 재기의 발판은 더없이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덕분에 그는 사회에 다시 발을 내딛자마자 조금도 시간을 끌지 않고 즉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시원스레 오르기 시작했군요. 사채업계의 독사라 불리는 노인, 백파(임혁)를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