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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이제 종영을 향해 달려가는 KBS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의 내용은 사실 매우 단순하고 진부하다. 부자인데다 젊고 잘생기기까지 한 남주인공과, 가난하지만 예쁘고 씩씩한 여주인공이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이끌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내 사랑을 이룬다는 뭐 그런 얘기다. 보통은 멀쩡한 총각 재벌2세가 가난한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남자네 집에서 죽자고 반대하며 돈봉투를 던지거나 물컵을 뿌리거나 하는데, 여기서는 남자의 나이가 좀 많고 아이 셋 딸린 홀아비라는 것 때문에 오히려 가난한 여자 쪽의 아버지가 죽자고 반대를 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설정은 현실적으로 거의 공감되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딸 본인의 마음인데, 이 아가씨는 애 셋 딸린 홀아비든 막내 삼촌뻘 나이..
평소 눈길을 주지 않던 일일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것은 이유리의 이름 때문이었다. MBC 연기대상의 영예까지 안겨 주었던 '왔다 장보리'의 대성공 후 1년 4개월만의 공중파 복귀였다. 그 동안 케이블에서 한 편의 드라마를 선보이긴 했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던 터라, 공중파 복귀를 앞두고 작품 선정에 무척이나 고심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일일극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약간 의아했으나, 어쩌면 이유리에게는 가장 안정적인 선택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민정'이라는 희대의 악녀 연기로 주목받았던 이유리에게는 갈등의 수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능력이 있다. 드라마의 본질은 '갈등'이다. 갈등이 없는 드라마는 한 마디로 재미가 없다. 자극적인 막장드라마가 욕을 먹으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
비난이든 뭐든 예전처럼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음에도 임성한 작가의 '압구정 백야'는 어김없이 연장이 결정되었다. 전작 '오로라 공주'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끌시끌하긴 했지만 그만큼 대중적 관심이 높다는 증거였기에 30회 연장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밋밋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29회 연장을 결정했으니 아직도 MBC는 임성한 카드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최근 황당스레 죽음을 맞이한 조나단(김민수) 때문에 임성한의 데스노트가 다시 화제를 일으켰다. 나 역시 개연성 없는 죽음으로써 등장인물을 너무 쉽게 하차시키는 임성한의 수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굳이 비난의 어조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이틀의 문제도 아니고 어쩌면 이제 그 부분은 임성한 특유의 스..
드디어 비정한 엄마 서은하(이보희)를 향한 백야(박하나)의 한맺힌 복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압구정 백야' 29회를 보고 있자니 임성한의 과거 히트작 두 편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데자뷰 현상이 느껴졌다. 우선 '인어 아가씨'의 아리영(장서희)은 외도하느라 가족을 버린 아빠 때문에 엄마와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자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쳐 냉혹한 복수를 전개했는데, 현재 백야의 모습은 복수의 상대가 아빠에서 엄마로 바뀌었을 뿐 그 내용면에서 아리영과 별로 다르지 않다. 또한 '하늘이시여'에서는 여주인공 자경(윤정희)이 친엄마인 영선(한혜숙)의 의붓아들 구왕모(이태곤)와 결혼하면서 족보가 황망하게 꼬여버리는데, 현재 백야가 선택한 복수의 방법 역시 친엄마의 의붓아들을 유혹하는 것이라 그 포맷이 대동소이하다. 결..
'보고 또 보고'(1998)의 김지수부터 '신기생뎐'(2011)의 임수향까지, 임성한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선택받은 배우들은 로또에 당첨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특히 20년 무명을 견뎌 온 중고신인 장서희에게는 '인어 아가씨'(2002)의 성공으로 배우 인생의 화려한 제2막이 열렸고, '왕꽃 선녀님'(2004)의 이다해와 '하늘이시여'(2006)의 윤정희는 연기 경험이 없는 신인이었지만 임성한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곧바로 전성기에 돌입했다. 물론 '아현동 마님'(2007)의 왕희지와 '보석 비빔밥'(2009)의 고나은처럼 혜택을 누리지 못한 경우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임성한의 여주인공은 무명 또는 신인 여배우에게 놓칠 수 없는 대박 기회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로라 공주'(201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