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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하 '알함브라')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시청자의 극한 몰입을 유도하는 드라마다. 전작인 '나인'과 '더블유' 등에서도 언제나 참신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설정을 시도해 온 송재정 작가였지만, 이번에 더욱 몰입이 강한 이유는 아마도 이 작품의 소재가 '게임'이라서가 아닐까?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시청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손으로 조종하는 주인공(플레이어) 캐릭터에 점점 더 몰입하면서, 그 캐릭터가 상처를 입으면 마치 자신에게 상처가 난 것처럼 움찔하게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현왕후의 남자'라든가 '나인'의 소재인 시간 여행은 실제로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더블유'의 소재인 웹툰은 그저 눈으로 보고 읽는 것만 가능하다. 하지만 '알함브라'의 소재인 게임은..
처음에 큰 기대를 걸었다가 중반부터 급격히 실망했지만,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끝까지 시청했던 '피노키오'가 종영을 맞이했다. 이 드라마의 젊은 주인공 기하명(이종석)과 최인하(박신혜)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도 흔들림없이 굳건한 초심을 지키며 달려온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들이다. 결국 그들은 완벽하게 승리했다. 숨겨졌던 진실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기자의 소명을 다했고, 개인적 복수가 아니라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악을 응징했다. 심지어 마음에 품었던 원망과 복수심을 내려놓고 용서까지 했으며, 의외로 너무나 손쉽게 마음을 돌린 노인네의 허락을 받아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골인했다. 당연한 것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며, 부모를 죽음으로 몰아간 원수조차 사랑으로 가뿐히 용서하는 주인공의 성..
아무래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같은 명작이 연달아 나오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작품성과 대중적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전작 '너목들'의 기세를 어떻게든 이어가 보려고 애쓴 흔적이 많이 엿보이지만, 안타깝게도 '피노키오'는 전작에 비해 많이 부족한 퀄리티로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고 있다. 나는 그 일차적 원인을 '진실과 정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나 역시 진실과 정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 없을 만큼 절대적인 덕목이라 여겨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실과 정의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이 드라마를 통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일단 '거짓말을 못하는' (정확히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가상의 병 '피노키오 증후군'이 예상했던 것만큼 매력..
작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하 '너목들') 이후 박혜련 작가의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드디어 오랜 갈증을 해결할 수 있게 될 듯 싶다. '너목들' 첫방송 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피노키오'의 첫방송을 시청한 후 최근 거의 1년 동안이나 잊고 지냈던 두근거림이 되살아났다. 이 드라마 때문에 차후 2개월 동안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설렘... 아무래도 '너목들'은 박혜련 작가의 화려한 전성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모양이다. 더불어 '너목들'의 남주인공 '박수하' 역을 멋지게 소화해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종석까지 다시 만나게 되니 더욱 정겹고 반가울 뿐이다. '너목들'의 박수하에게는 타인의 눈빛만 보면 그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
'사남일녀'라는 프로그램은 어찌 된 셈인지 초반부터 제목과 어긋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1~4회까지는 명실상부 '4남1녀'였으나 게스트가 초대된 5회 이후부터는 '4남2녀' 또는 '5남1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획 단계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었다면 제목을 '사남일녀'라고 지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니었을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신뢰를 잃었다.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기존 멤버들의 캐릭터가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려서 간헐적으로 게스트를 활용했다면 이렇지는 않았을텐데, 시청률이 기대했던 수준에 못 미쳐서 마음이 급했던지 너무 일찍부터 게스트 카드를 꺼내는 바람에 정체성을 포기한 셈이 되고 만 것이다. '막내동생' 컨셉의 젊은 게스트가 매..
난공불락의 철옹성처럼 보이던 제국그룹의 김남윤(정동환)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만약 현실이라면 그 상황에서 이런 식의 변화가 일어나리라 생각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이 드라마에서 김회장의 위독은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였다. 대략 20년 동안이나 김회장의 명목상 본처 자리를 지키며 호시탐탐 제국그룹을 집어삼킬 계획을 세워 온 정지숙(박준금) 여사는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는 듯 자신의 추종자들을 불러모아 총공격을 개시하고, 김회장의 반목하던 두 아들 김원(최진혁)과 김탄(이민호)는 경영권을 남의 손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자연스레 화해했다. 두 형제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도 얕은 데다가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허를 찔렸기 때문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비서실장이었다가 ..
처음엔 특별한 개성도 없어 보이고 밋밋한 캐릭터라 생각했는데, 김탄(이민호) 이 녀석 볼수록 매력적이다. 순수가 실종된 시대에, 순수를 지닌 채로는 살아남을 수조차 없는 그 곳에서, 어떻게든 순수를 지켜 보려는 그 아이의 마지막 발버둥이 한없이 애처롭다. 물론 그 발버둥도 아직은 열 여덟 살이기에 가능한 것일 뿐, 이복형 김원(최진혁)을 원망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김탄 역시 10년쯤 흐른 후에는 형과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다. 어린 이복동생을 영영 미국으로 쫓아 보내려는 냉혹한 김원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테니까. 자신과 김탄의 약혼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과 기업의 거대한 약속이라며 차은상(박신혜)을 다그치는 유라헬(김지원)을 볼 때 너무 어른같은 모습에 나는 살짝 소름이 끼쳤는데, 사실은..
김은숙 작가의 로코물이며 수많은 청춘 스타들을 출연시킨 야심작치고는 화제성과 시청률 면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이고 있던 '상속자들'이다. 일단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산만했고, 그 인물들의 제각각 스토리를 일일이 언급하며 진행되니 주인공들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졌다. 여주인공 차은상(박신혜)의 캐릭터는 흔해빠진 캔디 꼭 그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녀의 백마 탄 왕자님 김탄(이민호)의 캐릭터도 별로 신선한 부분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못된 무법자 최영도(김우빈)는 이미지가 워낙 강렬한 데다가 그 아버지의 캐릭터가 나름 독특하여 시선을 끌었다. 김탄의 아버지는 지금껏 드라마에서 보아 왔던 재벌 회장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지만, 최영도의 아버지처럼 중후한 나이에도 깡패 수준의 저급한..
평판이 워낙 좋길래 뒤늦게나마 발품을 팔아 상영관까지 보러 갔습니다. 그러나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대원칙을 깨뜨릴만한 명작은 아니더군요. 물론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진 영화이긴 했지만, 제게는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고 크게 느껴졌습니다. 혹자는 이처럼 동화같은 환타지를 표방하는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태도라고도 하더군요. 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기엔 지나치게 유치하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기엔 걸맞지 않는 성인물의 분위기가 풍겼습니다. 일단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부터가 어린이 대상의 영화로는 적합치 않거니와, 지적장애인 이용구(류승룡)를 향한 경찰청장(조덕현)의 무차별적 폭력 장면이라든가, 심지어 "당신이 죽어야 딸이 산다"고 회유하는 변호사의 모습이라..
앞으로 김병욱 시트콤을 감상할 때는 매회마다 리뷰를 올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매번 리뷰를 쓰다 보니 개인적으로 두 가지 부작용이 있군요. 첫째는 너무 '하이킥'에만 빠져들어서 다른 글을 쓰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고, 둘째는 갈수록 스텐레스김의 손바닥 위에서 농락당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떡밥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그의 어장에 노는 물고기로서 받아먹지 않기에는 떡밥들이 너무나 크고 먹음직해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떡밥이라도 애써 던져주는데 매몰차게 외면하자니 좀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허구헌날 판단과 예측이 바뀌며 횡설수설하게 되는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원래 고집이 상당히 세고 초지일관하는 편인데, 이러면서 스타일도 무너지고 자존심도 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