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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요즘 안방극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수준 높고 괜찮았던 작품 '제왕의 딸 수백향'을 조기종영하면서까지 하루빨리 방송하고 싶어했던 드라마라면 어느 정도는 기대를 걸어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오산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여주인공 서윤주 역을 맡은 탤런트 정유미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녀 때문에도 제발 괜찮은 작품이기를 바랐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한 조각 희망을 어디에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식상한 설정들, 이제껏 각종 한국 드라마 속에서 마르고 닳도록 수없이 보아왔던 이야기... 1~2회만으로 평가할 때 '엄마의 정원'은 한 마디로 클리셰의 집합소라 할만하다. 주연 배우들의 이미지는 상큼하고 연기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되어 나갈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자폐증을 앓는 주인공이 좋은 의사가 되는 이야기 '굿 닥터'는 참으로 따스한 드라마입니다. 순수를 찾기 힘들어진 사회 속에서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들과 그 순수의 힘으로 생명을 되찾고 행복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그 주제와 의도를 알면서도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이 드라마 또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마찬가지로 이상향을 그리는 동화쯤으로 생각하고 봐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첫 회부터 머리를 떠나지 않더군요. '너목들'은 초능력이라는 판타지를 내세움으로써 동화적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에 다소 과장된 설정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자폐증이라는 현실적 질환을 내세운 '굿 닥터'는 훨씬 강한 리얼리티로 다가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비현실적이거나 과장된 요소가 발견되면..
세자빈 화용(정유미)인지, 그 여동생 부용(한지민)인지, 아니면 또 다른 궁녀인지 알 수 없는 한 여자가 300년 전의 조선 왕궁에서 연못에 빠져 죽었습니다. 비록 한창 젊은 나이의 서글픈 죽음이었지만, 그래도 연못에 떠다니던 연꽃들과 평화롭게 노닐던 물고기들은 자기들만의 노래와 언어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해 주었겠지요. 하지만 300년 후의 대한민국 서울에서 가냘픈 몸뚱아리를 사정없이 자동차에 받힌 후 내동댕이쳐진 박하... 그녀가 풍덩 빠져버린 저수지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요? 그 이름도 살벌한 공룡저수지에는 향그러운 연꽃 한 송이 떠다니지 않고, 각박한 서울 생활에 지쳐버린 물고기들은 밤낚시꾼들의 속임수를 피해 꽁꽁 숨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박하의 곁에 다가와 위로의 노래를 불러주는 친구는 아무도..
여전히 재미있기는 하지만 '동안미녀' 14회에서는 몇 가지의 불안 요소가 표면화되었습니다. 첫째는 이소영(장나라)의 미각 상실과 안구 이상증세입니다. 강윤서(김민서)와 그 어머니 현이사(나영희)의 방해로 경합에 필요한 재료조차 넉넉히 구할 수 없었던 이소영은 스스로 원단을 가공해서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장면이 나왔었지요. 아무 보호장비도 없이 독한 염색약품을 만지고 원단을 태워 보기도 하던 이소영이, 순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에 눈이 몹시 아픈 듯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질끈 감던 장면입니다. 사실 저도 원단을 태울 때 일어나는 검은 연기를 보면서, 하다못해 마스크에 보안경이라도 쓰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무방비 상태의 얼굴에 그 연기를 쏘인..
사실 이강석(서지석)과 정윤서(소이현)는 커플이 아닙니다. 이강석은 나진진(배두나)과, 정윤서는 하동아(이천희)와 커플이죠. 앞으로는 그렇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시적으로나마 자기들끼리 커플이 될 것 같은 낌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자기의 진정한 삶과 행복을 포기해 버린 젊은이들만이 할 수 있는 선택, 오직 부모의 결정에 따라 아무런 감정도 없이 결혼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소개로 만나자마자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재벌가의 서자와 서녀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풍족하게 자라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마음이 누구보다 공허한 까닭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완벽히 녹아들 수 없는 서글픈 교집합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단..
'민들레가족'의 후속으로 방송되는 주말드라마의 제목이 '글로리아'라는 것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성가(聖歌)의 제목이었습니다. 'gloria'는 라틴어로 '영광'이라는 뜻을 지녔고, 가톨릭의 대표적인 미사곡 중 하나입니다. 저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어이지만 TV 드라마의 제목으로 접하니 좀 신기하더군요. 주인공 나진진은 앞으로 변두리 나이트클럽의 가수로 활동하게 될 것이며, 그녀가 사용하게 될 무대명이 바로 '글로리아'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름이지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주인공에게 작가가 굳이 '글로리아'라는 이름을 지어 준 뜻을 저는 이미 알 것 같습니다. '글로리아'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척박한 삶을 견디어내고 있습니다. 나진진(배두나)은 나이 서른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