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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봄이 오나 봄'은 한국 드라마에서 이미 식상해져 버린 영혼(육신) 체인지를 다루고 있지만, 그 방식이 조금은 독특하다. 지금까지의 다른 드라마에서는 영혼(육신) 체인지가 이루어질 때, 언제나 영혼이 육신을 따라갔다. 육신은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고 영혼이 그 육신에 들어오게 되는 식이다. 예를 들자면 '시크릿 가든'에서 폐소공포증을 앓고 있는 김주원(현빈)과 공포증 전혀 없는 길라임(하지원)의 몸이 바뀌었다. 그 상태에서 길라임은 (김주원의 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순간 정전이 되어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하필이면 그 때 다시 몸이 바뀌어 버린다.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는 김주원의 몸 안으로 폐소공포증 있는 김주원의 영혼이 컴백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존의 공식이다. 몸이 있는 곳..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확실히 김은숙 작가와 저는 코드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같은 여성이면서도 '매력적인 남자'를 보는 기준이 너무도 현격히 다른 것을, 저는 매번 그녀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군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가 시청률 면에서 거의 대박을 쳤고, 남주인공은 선풍적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았던 사실이라든가, '신사의 품격' 6회에서 장동건이 부쩍 멋있어졌다는, 저로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의견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상을 보면, 제가 유난히 특이한 사람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언제 어디에서든 '앞으로 나서서 외치는 자' 보다는 '침묵하는 자'가 절대 다수임을 생각해 본다면, 진짜 현실이 어떤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현빈의 반짝이 츄리닝에 ..
원작이 있는 드라마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각시탈'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원작에 나타난 주인공의 초반 캐릭터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드라마는 그 장르의 특성상 책(만화 포함)과는 확실한 차별화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어느 시간보다도 경쟁이 치열한 현재 수목드라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책은 언제든 읽고 싶을 때에 집어들어 읽으면 되는 것이지만, 드라마는 마음에 닿지 않는다 싶으면 곧바로 채널을 돌려버릴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본방사수하지 못한 드라마는 내용을 알 수가 없게 되고, 다음 번 수요일에는 자연스레 앞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는 다른 드라마 쪽으로 채널을 맞추게 되지요. 그러므로 ..
저는 시트콤을 아주 좋아합니다. 저에게 세상은 언제나 심각하고 무겁게만 느껴지는데, 시트콤을 볼 때면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김병욱의 시트콤에서는 이제 가벼운 즐거움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을 중독시키는 스텐레스김 특유의 재미는 여전하지만, '지붕뚫고 하이킥' 때부터는 분위기가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져 버린 거죠. 그런데 심각한 것은 원래 저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몰입도는 점점 더 높아지더군요.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 예민해져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시트콤을 보는 원래의 목적과는 좀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하이킥3'가 끝나면 곧바로 채널을 돌려 '청담동 살아요'를 시청하며 무거워진 마음을 달래곤 했지요..
'보스를 지켜라' 5회는 두 커플의 달달한 키스씬으로 마무리 되었었습니다. 차지헌(지성)이 노은설(최강희)에게 마음을 고백한 후 이 두 사람의 애정 전선은 거침없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서나윤(왕지혜)과 노은설 사이에서 상당히 애매해 보였던 차무원(김재중)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저는 무척이나 그 장면이 반갑더군요. 드디어 식상한 사각관계에서 벗어난, 유니크한 설정의 드라마를 보게 되나 싶었거든요. 만날 두 남자는 한 여자를 같이 좋아하면서 연적이 되고, 한쪽 옆에는 또 다른 여자가 있어서 질투심을 불태우고... 꼭 이런 식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왜 주인공들의 애정 전선은 항상 겹치고 꼬여야만 하는 걸까,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무원이 서..
사실 '동안미녀'의 주인공 이소영(장나라)의 캐릭터는 순수하고 선량하고 배려심이 깊은 아가씨로서 충분히 처음부터 호감형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괜시리 초반에 남주인공들과의 자극적 만남을 위해 무리한 설정을 넣은 것이 비호감으로 작용했었지요. 이소영은 최진욱(최다니엘)과 처음 만났을 때는 나이트클럽에서 온갖 사고를 저지르며 추태를 떨었고, 지승일(류진)과 처음 만났을 때는 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팬티바람으로 있어야 했습니다. 주의산만한 사고뭉치 캐릭터를 싫어하는 제 눈에는 참 한심한 아가씨로 보였더랬습니다. 그러나 34세의 나이에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이소영의 매력은 조용히 제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혹자들은 장나라가 20대 초반의 풋풋함과 귀여움은 잃어버리고 30대의 성숙함은 갖추지 못했기에, 매..
'시크릿가든 스페셜'에서는 시청자들이 주는 특별한 상이 출연진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중 '미친 존재감' 김비서 역의 김성오에게 돌아갔군요. 김주원(현빈)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박상무(이병준), 길라임(하지원)의 액션스쿨 선배로서 재벌인 김주원을 "우리 주원이~"라고 부르던 능청꾸러기 황정환(장서원), 짧은 등장에도 성자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길라임의 아버지 길익선(정인기)이 김비서와 더불어 물망에 올랐는데, 그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김비서가 소박한 영예를 차지한 것입니다. 따로 시상식도 없이 그냥 개인 인터뷰 중에 트로피가 전달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척이나 인상적인 것은 그 트로피를 받고 너무나 진지하게 기뻐하는 김성오의 모습이었습니다. 자기 앞으로 쑥 내밀어지는 트로피를 보더니 그는 ..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지만, 아무래도 저와는 코드가 잘 맞지 않는 듯합니다. 저도 그 열광에 동참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서 소외감을 느꼈거든요. 그러다가 지난 주 11회에서 싸가지 김주원(현빈)이 스스로 인어왕자가 될 것을 자청하며, 대놓고 길라임(하지원)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는 "이거다!" 싶었습니다. 무조건 그녀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것이 아니라, 겸허한 마음으로 자기가 그녀에게 맞춰 변화되려는 결심이라고 판단했거든요. 드디어 저도 남들과 같이 '주원앓이'의 감미로움을 이제부터 체험할 수 있겠다 싶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더 크게 실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13회에서는 제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이른바 '노출 ..
참 오래 걸렸습니다. 총 20부작 드라마의 절반을 훌쩍 넘어, 무려 11회의 엔딩 장면에 가서야 제가 드디어 이 드라마의 히어로 김주원(현빈)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군요. 그렇다고 남들처럼 현빈앓이에 동참하게 된 수준은 아니지만, 이제껏 대책없는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던 김주원이 심상찮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제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아파 옵니다. 어쩌면 그 동안 김주원에게 빠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마음을 더 닫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군요. 그는 너무 매력적인 남자인데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소년처럼 외로운 자아를 지녔습니다. 못된 성질도 못된 말버릇도, 차분히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부러 김주원에게 몰입하지 않으려 하며, 철저히 여주..
'시크릿 가든'의 두 남자, 김주원(현빈)과 오스카(윤상현)에게는 아주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김주원은 속속들이 자신만만한 사람이지요. 자신이 엄청난 재력과 더불어 스마트한 두뇌와 신이 내린 외모까지 겸비한, 완벽한 남자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앞에서든 겸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영혼이 체인지되었을 때, 툭하면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길라임(하지원)을 보고 "내 머리를 어디다 숙여!" 라며 구박했던 것은 그야말로 김주원다운 행동이었지요. 그의 본질적인 자신만만함은 예상치 못한 일생의 위기 앞에서도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재벌 3세 백화점 사장에서 갑자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스턴트우먼의 삶으로 전락했는데도, 걱정하거나 슬퍼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