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정난 (10)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가 벌써 16회까지 방송되었음에도 시청률은 경쟁작 '황금무지개'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황금무지개'가 일주일 먼저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역전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김수현의 이름값도 이제는 그 효력이 떨어진 걸까? 등장인물 각각의 뚜렷한 개성과 치열한 심리 묘사도 여전하고, 칠순을 넘긴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통통 튀는 대사의 재미도 살아있건만, '세결여'가 김수현의 전작들 만큼 대중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주인공 오은수(이지아)의 캐릭터가 시청자와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김수현 드라마의 시청층은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중년 이상 시청자들의 몰입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반향이..
이건 뭐 40대 남성들의 사랑 이야기라는데, 무슨 10대 소년들의 첫사랑보다도 유치하기 짝이 없네요. 김도진(장동건)이 서이수(김하늘)에게 하는 행동은 꼭 유치원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치맛자락을 들추고 냅다 도망가는 (일명 아이스케키..;;) 짓거리와 별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여주인공 김하늘은 매회 점점 더 심해지는 오버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데, 솔직히 너무 오글거려서 닭이 될 지경입니다. 제가 원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취향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특히 정 붙이기가 힘드네요. 형식만 부부일 뿐 '제비와 사모님'에 지나지 않는 이정록(이종혁)과 박민숙(김정난)의 이야기도, 코믹한 껍데기로 둘러싸 놓기는 했지만 그 내면을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역겨운 악취를 ..
역시 정통 정치드라마는 정치 이야기가 중심이 될 때라야 제맛이 납니다. 유민기(제이)와 장인영(왕지혜)의 러브모드가 진행될 당시에는 엄청 지루하고 오글거렸지요. 게다가 장인영의 생모 주일란(조은숙)이 등장하여 퇴폐적인 냄새를 풍기며 장일준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도 별로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현실 속에서 있을법한 이야기지만, 느닷없이 막장드라마적 요소가 첨가되니 '프레지던트'만이 갖고 있던 독특한 분위기가 죽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13회에서는 다시 본격적인 정치 싸움이 주된 테마로 등장하며 흥미진진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은, 이 드라마에서 단연 최고의 악역이라 할 수 있는 백찬기(김규철)였습니다. 김경모(홍요섭)의 참모인 백찬기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
'프레지던트' 7~8회에서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장일준(최수종)의 모습이 드러나며 커다란 파문이 일었습니다. 현직 대통령 이수명(정한용)이 노골적으로 김경모(홍요섭)를 지지하며 자신에게 물러날 것을 종용하자, 장일준은 보다 강력한 방식으로 그 막강한 연합에 대항하려고 마음먹게 되지요. 마침 그의 캠프에는 최근 합류한 천재적 두뇌의 젊은 참모 기수찬(김흥수)이 있어 장일준의 무기가 되어 줍니다. 대통령이 직접 김경모에게 필승의 공약을 건네주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장일준은 어떻게 해서든 그 공약을 빼내어 오려고 마음먹는데, 그의 아내 조소희(하희라)가 선택한 방법은 영부인(양희경)을 통해 직접 자료를 건네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기 아내가 장일준과 한편이라는 사실을 꿰뚫고 일부러 ..
제가 드라마 '프레지던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는 사실입니다. 출연 분량이 많거나 적거나에 관계 없이 '프레지던트'의 인물들은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명확한 이유를 지녔습니다. 현재까지 이 드라마에서 개연성 없는 행동을 보이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오히려 너무 그렇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정통 정치드라마를 표방하는 '프레지던트'에는 적합한 인물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3회의 내용도 아주 알차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주인공 장일준(최수종)은 판단이 빠르고 현명한, 젊은 대선 후보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이 인물은 선악의 경계에 모호..
식상한 소재를 다루었으되 그 방식의 신선함으로 많은 기대감을 안겨 주며 시작했던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적잖은 아쉬움을 남기고 종영했습니다. 중간까지의 전개를 보았을 때는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내용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탄탄한 플롯을 지니고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며 인과관계가 불확실해졌습니다. 윤두수 집안의 과거에 얽힌 수많은 비밀들은 결국 풀리지 않았고, 그토록 관심을 모으던 만신의 정체도 알고보니 단순하고 황당할 뿐, 복잡하고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윤두수에게 원한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그저 어떤 개인적 사정으로 죽지 못하는 몸이 되어 수백년간이나 사람의 간을 먹으며 살아 온 요괴(?)에 불과했군요. 천우의 어머니라던 기생 매향이 어떤 존재였는지, 왜..
'구미호 여우누이뎐' 10회에서는 구미호(한은정)의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는 퍽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는군요. 이것은 공포 드라마가 아니라 일종의 심리 드라마, 또는 추리 드라마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공포물보다 추리물을 훨씬 더 무서워하는 독특한 경향이 있거든요. '전설의 고향'의 귀신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고, '스크림' 류의 영화에 나오는 연쇄 살인마도 끔찍하기는 하지만 크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아가사 크리스티 극장' 류의 추리물은 너무나 무서웠어요.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 뾰족한 칼날이 숨겨져 있는 느낌이랄까요? 서늘한 냉기는 끊임없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 차츰 소리없는 공포는 깊어져 갑니다..
구미호의 예쁜 딸 연이(김유정)가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 어린 것이 살아 보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도망쳤건만 끝내는 사람들이 쳐 놓은 그물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중에도 아버지처럼 믿고 사랑하고 의지했던 윤두수(장현성)의 손으로 직접 살해당했으니 그 원통함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요?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자기 딸을 향해 "절대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던 구미호(한은정)까지도 오직 윤두수에 대해서만은 부질없는 믿음을 품었다가, 가장 처참한 방법으로 배신당하고 말았으니 이보다 더한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구미호 여우누이뎐' 9회는 8회에 이어서 그 전개의 속도가 확연히 느려지고 있었습니다. 8회는 줄곧 연이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점철되더니만, 9회는 연이의 죽음 이후 ..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플롯이 생각보다 더욱 복잡하고 탄탄하게 짜여져 있음을 7회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윤두수의 딸 초옥과 구미호의 딸 연이, 두 소녀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얽히게 하여, 괴질로 죽어가는 초옥을 살리기 위해서는 연이가 필연적으로 희생되어야 한다는 설정부터가 범상치 않았지요. 그래서 초옥을 살리려는 윤두수의 부정(父情)과 연이를 살리려는 구미호(구산댁)의 모정이 충돌했고, 아이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 만큼 매순간의 전개는 숨막히도록 긴박했습니다. 그 와중에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남녀는 얄궂게도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안타깝게 엇갈리는 감정선이 갈수록 증폭되면서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초반의 설정으로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앞으로는 윤두수 일가..
1회의 폭풍 전개 이후로 약간 템포가 느려지긴 했어도 그쯤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내용은 흥미진진했고 모든 상황의 전개는 긴박감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어제 5회에서는 솔직히 '시간 끌기'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나름대로 긴박하긴 했는데, 그 긴박감도 너무 오랫동안, 같은 양상으로 수차례 반복되니까 더 이상 즐길 수가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만 좀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1차 추격전 양부인(김정난)의 사주를 받은 저잣거리 왈패들에게 연이(김유정)가 쫓기기 시작하면서 5회는 시작되었습니다. 긴박하게 쫓기던 연이는 결국 붙잡혀서 흰 천에 휩싸인 채 강물에 던져지지만, 질식하기 직전에 맹수(여우)의 본능을 드러내면서 날카로운 발톱(손톱?)으로 천을 찢고 강을 헤엄쳐 나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