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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라면 아무래도 세경(신세경)과 신애(서신애) 자매를 꼽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 그녀들의 인생은 한편 희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언젠가 아빠를 만나서 예전처럼 함께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으며, 세경에게는 비록 짝사랑에 불과하지만 지훈을 바라보는 애틋한 마음이 깃들어 있어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이미 인생의 찬란한 시절을 훌쩍 지나 노년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하루 하루 삶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울분과 컴플렉스에만 시달리고 있는 가엾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순재의 사위 정보석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으니 그도 엄연한 가장이련만, 가족들 중 그를 정말 가장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에게 무시당하..
'지붕뚫고 하이킥'은 제가 방송 전부터 큰 기대감을 가졌던 시트콤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재미와 작품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조금씩 행보가 비틀거리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우선 너무 식상하고 유치하고 억지스런 에피소드가 많아졌습니다. 정보석이 방귀를 싫어하게 된 추억이라든가, 이순재가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를 내고 가족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는 '이순재 고사' 등은 솔직히 별로 재미도 없었을 뿐 아니라 현실감도 너무 떨어지고 억지스러웠습니다. 김병욱 PD의 시트콤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실망스러웠다고 하겠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궤도에 접어들지도 못한 초반인데 벌써 소재가 딸리는 걸까요? 게다가 네 명의 청춘남녀를 두고 어떻게든 러브라인이 시작될 것 같기는 한데 계속 낚싯밥만 ..
'지붕뚫고 하이킥' 35회에 특별출연한 정일우를 보았습니다. 황정음의 첫사랑이며, 정음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반려견 '히릿'의 옛주인으로 말이지요. 새 봄처럼 젊은 나이에, 눈물겹도록 화창한 날에 아련한 추억만을 남기고 불치병으로 스러져간 첫사랑... 그야말로 더 이상 식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식상함의 전형이지만, 아무리 뻔한 스토리라도 순정만화는 영원히 소녀들에게 사랑받는 것처럼 '우유빛깔 정일우'가 표현해내는 첫사랑의 이미지는 자못 매혹적이었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정일우는 삽시간에 톱스타의 위치로 올라서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저도 그 때 담임선생님 서민정을 향해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던 학교짱 윤호를 무척이나 사랑하던 누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 정일..
'지붕뚫고 하이킥'의 출연자 중 아역 서신애는 이순재 옹과 더불어 가장 먼저 김병욱 PD에 의해 캐스팅이 확정된 인물입니다. 촬영을 시작하는 시기조차도 서신애의 스케줄에 맞췄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기억이 나는군요. 그만큼 서신애는 이 시트콤에서 없어선 안 될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애의 러브라인도 준비되어 있는데 그 상대는 매우 의외의 인물이 될 것이라는 PD의 귀뜸도 있었네요. 저는 그게 누구일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왠지 그 상대는 신애와 같은 또래인 어린 소년보다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하고 예상되더군요. 그 중에서도 유력한 인물이 있다면, 세경과 신애 자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었고, 신애가 늘 '줄리엔 아저씨'라고 부르며 졸졸 따르는 외국인 줄리엔강이 있겠습니다만, 만약 ..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요즈음 나의 관심을 끄는 인물은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추는 정보석이다. 참으로 한결같은 연기자라고 생각하며 꾸준히 좋아하고 있는 배우인데, 이번에 보여주는 그의 이미지는 좀 다르다. 그는 지독히 슬픈 역할도 많이 맡았었건만, 내 눈에는 이번에 맡은 역할이 가장 슬퍼 보인다. 내가 정보석이라는 연기자를 기억하는 첫 모습은 1986년 김혜수, 길용우와 더불어 출연했던 드라마 '사모곡'에서의 악역이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소설과 드라마에만 탐닉한다고 매일 야단을 맞던 나는 몰래몰래 부모님의 눈을 피해서 그 드라마를 보느라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여고생 김혜수의 드라마 데뷔작이었던 '사모곡'은 그로부터 10년 후에 '만강'으로 제목을 바꿔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사모곡'에서..
나는 시트콤을 매우 좋아한다. 일반 드라마보다도 예능 프로그램보다도 더 좋아하는 장르가 시트콤이다. 그런데 시트콤이라는 장르는 자칫 잘못 만들면 웃기지도 못하고 감동도 주지 못한 채 딱한 모양새로 주저앉기가 일쑤이다. 하지만 김병욱 PD의 작품은 한 번도 실망을 준 적이 없다. 김병욱의 시트콤은 언제나 꽉 짜여진 구성과 독특한 인물들의 확실한 캐릭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일부러 웃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각각의 캐릭터가 성공적으로 구현되니까 자연스럽게 웃음이 발생한다. 또 김병욱 시트콤의 특징 중 하나는 웃음과 동시에 슬픔과 감동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방송 내내 유쾌하게 진행되던 시트콤을 몇 번씩이나 새드엔딩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충격을 주기도 했다. 1. 순풍 산부인과 (SBS 1998~2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