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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배우 정일우가 2년만에 다시 사극으로 돌아왔다. '보쌈 - 운명을 훔치다' 과부 보쌈을 직업으로 하는 건달 '바우'가 실수로 광해군의 딸 화인옹주(권유리)를 납치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옹주를 보호하지 못했다고 왕에게 추궁받을 것이 두려웠던 옹주의 시아버지는 먼저 죽은 남편을 따라 목을 매었다는 거짓말로 급기야 이틀만에 옹주의 장례식을 치르며 산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든다. 제목만 봤을 때는 코믹 터치의 가벼운 퓨전사극인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의외로 무거운 편이다. 수절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의 힘겨운 삶을 비롯하여 당시의 어려웠던 시대상을 볼 수 있고 권력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비정한 모습까지 담겨 있다. '보쌈' 모처럼 볼만한 사극이 나온 것 ..
무슨 '전원일기'도 아니고 세련된 김태희가 여주인공으로 컴백하는 드라마의 제목이 왜 하필 '용팔이'인가 했더니 '용한 돌팔이' 의사가 남주인공이었다. 그걸 몰랐을 때는 진짜 촌스럽고 요령부득인 제목이라 생각했는데, 내막을 알고 나니 제법 센스있고 멋진 제목처럼 느껴진다. 최고의 실력을 지녔으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보다는 오직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의사 김태현(주원), 그가 바로 용팔이다. 법의 단속을 피하느라 병원에 갈 수 없는 조폭들의 불법 수술을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 병원에서는 환자 보호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촌지를 뜯어내는가 하면, 신입 인턴들에게는 대놓고 집안 배경을 캐물으며 가진 자에게 아부하려는 속내를 드러낸다. 그 모든 파렴치함의 원인은 좀 신파스럽게도 아픈 여동생의 치료비 때문이었다. 찢어지게..
10회에 이르러 중대한 비밀의 일부가 명백히 밝혀졌다. 거의 확신에 가깝게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끔찍한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르니 가슴에 느껴지는 먹먹함의 정도는 이전과 비할 수가 없었다. 어린 산이의 존재를 이용해서 강유정(황정음)의 가석방을 막은 사람... 치매에 걸린 유정의 아버지(강남길)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 그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이 두 가지 죄악을 저지른 사람은 역시 안도훈(배수빈)이었다. 강유정은 안도훈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는데, 안도훈은 자신의 안위와 출세를 위해서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을 빼앗아갔던 것이다. 강유정은 안도훈의 뺑소니 범죄를 대신 덮어쓰고 옥살이를 함으로써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수없이 입었지만, 이제..
이제껏 윤계상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많지는 않았죠. 몇 번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 머릿속에 생각나는 장면들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김지원과 함께 돌보아 드리던 독거노인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두번째는 김지원이 어린 시절에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녀를 닮은 그림 속의 여자를 보았을 때였죠. 그리고 이번에 91회에서 김지원에게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을 털어놓으며 흘리는 눈물이 세번째입니다. 이처럼 윤계상의 눈물은 모두 김지원과 연결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눈물은 슬픔을 의미하며,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순도 높은 감정이 바로 슬픔이라고 하지요. 드라마 '49일'에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매개체도 역시 눈물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김지원은 ..
이번 주에도 역시 '나는 가수다'에서 최고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사람은 임재범이었습니다. 저의 감상을 말해 본다면, 윤복희의 오리지날 버젼 '여러분'이 좀 박애주의적인 느낌을 준 데 비해, 임재범에 의해 재해석된 '여러분'에서는 단 한 사람의 친구를 간절히 원하는 극도의 외로움이 더욱 깊이 전해졌습니다. 깊은 속마음까지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한 명의 친구가 너무도 그립기 때문에, 자기가 먼저 나서서 너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말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준 것만큼 보답이 돌아올지 어떨지 보장은 없지만, 아무와도 마음을 나누지 않는 것보다는 받지 못하더라도 주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야수가 부르는 처절한 희망의 찬가'라고 한 자문위원 남태정 PD의 표현은 아주 적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드라마 '49일'이 종영했습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듯 싶으나, 저는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하던 결말은 아니었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면에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겼습니다. 제가 해석하기에 이 드라마의 포커스는 송이경(이요원)이 아니라 전적으로 신지현(남규리)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과 죽음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신지현은 49일 여행의 고된 일정을 마치고 귀한 3방울의 눈물을 얻어 회생에 성공했으나, 안타깝게도 태어나면서부터 그녀에게 주어진 목숨은 회생 후 고작 일주일이 더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너무 가엾어서 화가 날 정도로 서글픈 그녀의 운명이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유난히 밝고 긍정적이며 선량함의 화신과도 같았던 그녀는 타인들을 위한 천사..
제가 유일하게 깊은 애정을 갖고 시청하던 드라마 '49일'이 대단원을 1회 앞두고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반전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런 것일 줄은 단 한 차례도 상상해 본 적 없었습니다. 물론 19일 밤에 방송될 마지막회를 보아야만 확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요. 혹시라도 최악의 결말이 나올까봐 무척 염려가 됩니다. 저는 신지현이 다시 살아나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지현이가 자신과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해서 뾰로통하는 한강의 모습도 귀여웠습니다. 서운하지만 그래도 지현이에게 다가서는 길을 다시 첫걸음부터 열심히 걷기 시작하는 한강의 성실한 사랑이 너무 아름답고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신지현은 놀랍게도 지난 47일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머지않아 다시 죽게 될 것임을..
강아, 이제 잠시 후면 나는 가장 소중한 기억을 잃게 될 거야. 반가운 마음으로 나를 안으려던 너는, 멀뚱멀뚱 쳐다보는 예전의 나를 만나겠지. 네 눈빛 속의 사랑을 조금도 알아보지 못하고, 티격태격하던 고등학교 시절 그대로의 눈빛으로 너를 바라보는 철부지 신지현을 만나게 될거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강아. 어쩌면 나는 네 곁에서, 네 마음을 보면서 지낸 47일이 가장 행복했던 것도 같아. 그 이전에도 항상 행복한 나였지만, 그 속에는 거짓이 너무 많았으니까 말야. 죽음의 문 앞에 서서야 나는 진실을 알 수 있었어. 처음으로 알게 된 진실이 너무 아파서 나는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었어. 하지만 강아, 너 때문에 견딜 수 있었던 거야. 네가 없었다면 이 찬란한 세상의 좋았던 기억들이 처참히 무너진 채로, ..
요즘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모두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인형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착하고 밝고 긍정적이고 억척스럽고 솔직하고 다혈질이고 약간 경솔하고 약간 덤벙대고 약간 과격하고 약간 뻔뻔하고 등등... '반짝반짝 빛나는'의 김현주,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윤은혜, '동안미녀'의 장나라, '최고의 사랑'의 공효진 등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로맨스타운'은 아직 방송을 못 봤지만 성유리도 마찬가지일 듯 합니다. 이런 성격의 여자가 그토록 매력적인가요? 개인적으로 좌충우돌 캐릭터를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너무 많이 보게 되니 저는 완전히 질리는군요. 이런 성격의 여주인공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바닥을 보여주며 강렬하게 등장한다는 것이지요...
신지현, 처음 볼 때부터 너와 나는 닮은 곳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너는 밝지만 나는 어둡고, 너는 착하지만 나는 못됐고, 너는 긍정적이지만 나는 배배 꼬였다. 너는 사이좋은 부모님에게서 한껏 사랑받으며 자랐지만, 내 아버지는 먼 곳으로 떠나버렸고 내 어머니는 어린 나를 방치해 두었다. 내가 못 가진 것을 모두 가진 너라서, 우리의 첫 만남이 그렇게 강렬하지만 않았다면 난 너를 진짜 미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 두껍다고 생각했던 내 방어벽을 너는 삽시간에 무너뜨렸다. 엄마 곁에 있기 싫어서 아빠가 계신 미국으로 도망치려고, 엄마 돈을 훔쳐 사 두었던 비행기 티켓이, 너를 만난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던 거다. 평소 남을 잘 도와주는 성격도 아니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