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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최근 인기를 끄는 드라마에서는 몇 가지의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지난번의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밝고 유쾌한 터치의 드라마보다는 인간의 근본적 슬픔을 다룬 드라마가 많은 공감을 얻고 있지요. (슬픈 드라마가 연이어 대박을 치는 이유) 그리고 저는 '신데렐라 언니' 7회에서 또 한 명의 성자를 발견했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거든요. '신언니'의 성자는 마지막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 이전에 많은 사랑을 받은 성자들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 '선덕여왕'의 덕만 (이요원) 역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임금이지만, 드라마에서 그려진 모습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타인들을 위해 선덕(善德)을 베풀다가 자기의 삶은 모두 ..
브라운관에 모습을 비치며 우리에게 웃음과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연예인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평범한 시청자들은 그들을 보며 일상의 피로를 잊고 괴로움을 달랩니다. 그런데 제게 있어 이런 경험은 처음이군요. 한 사람의 연예인이 토크쇼에 나와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며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아진 적은 없었습니다. 드라마 '추노'가 방영되기 시작할 무렵, 여주인공 이다해가 신동엽의 '달콤한 밤'에 출연했었지요. '이상형 월드컵'을 진행하면서 그녀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저는 장혁이라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으로 밤을 샐 수도 있어요. 그렇게 좋은 점이 너무 많은 사람이에요"... 이제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진솔한 모습을 드러낸 장혁을 보니, 저 역시 그녀의..
어차피 그들의 혁명이 실패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허무할 거라는 예상은 솔직히 하지 못했습니다. 송태하의 수족같은 부하들이 모두 황철웅의 손에 추풍낙엽처럼 어이없이 쓰러져갈 때에도 설마 이것이 끝은 아니겠지 했었습니다. 송태하와 더불어 혁명군의 수장격이었던 조선비가 변절했을 때에도, 그 변절의 결과로 숨어있던 동지들이 모조리 잡혀들어갔을 때에도, 심지어 끝까지 남아서 활약하던 한섬이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을 때에도 설마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횃불인 송태하의 존재가 남아있는 한,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초반의 이미지와는 달리 더 이상 송태하가 완벽한 인간상이 아님을 충분히 알게 되었으나, 저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그를 믿고 있었..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고...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일은 드디어 포문을 열며 실행되고... 이렇게 '추노' 역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궁극적으로 중점을 두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비뚤어진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서로를 미워할 수 없는 그들의 더없이 인간적인 화해와 사랑인지,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추노'는 두 가지를 다 그려내고 있으며, 어느 쪽에 더 비중이 있는지도 시청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최소한 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에 따라 결말이 주는 여운은 많이 달라질 듯 싶습니다. 1. 외유내강한 짝귀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포스팅의 주제와 직접적 연관은 없음에도, 짝..
다행히도 짝귀의 산채를 향해 엄습해 오던 어두운 그림자는 일단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황철웅이 목표로 삼고 있는 이대길과 송태하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지요. 원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산채는 들이치게 되겠지만, 그 가엾은 사람들이 속 편히 숨 쉬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하루이틀은 늘어난 셈입니다. 어느 새 언니 동생 사이가 되어버린 언년이와 설화, 그리고 귀여운 원손 아기씨도 그 평화 속에서 며칠은 더 곱게 웃을 수 있겠네요. 1. 두 남자의 이상한 동행 "예전에는 얼굴을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더니만, 이제는 매일매일 보니까 아주 죽을 맛이야."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며 되뇌이는 대길이의 쓸쓸한 얼굴을 보니, 그 사내의 바보같은 사랑에 제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정말 그와 같은 사..
언년아, 어떠하냐? 네 눈에 비친 내 몰골이 어떠하냐? 네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그 옛날 풍채 고운 도령은 온데간데 없이, 반은 짐승이요 반은 사람인 괴물로 변해버린 내 몰골이 어떠하냐? 너는 내게 물었다. 지난 10년 동안 가끔이라도 네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느냐고... 내 어찌 잊겠느냐? 네 오라비에게 칼을 맞고 불길 속에 쓰러지는 나를 뒤로 한 채 멀어져가던 네 모습은 지금까지 나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었다. 언년아, 너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하였더냐? 네 오라비 큰놈이보다도 나는 너를 더 미워하였다. 잡아끄는 오라비의 힘을 뿌리칠 수 없었던, 연약한 너를 더 미워하였다. 언제나 감싸주고 싶던 너의 가녀린 어깨가, 언제나 꽁꽁 얼어 있던 너의 작고 차가운 손이 그지없이 미웠다. 나를 보며 아스라히 미..
요즘 드라마에서 악역의 위치는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원래 악역이란 시청자들에게 미움받는 존재였으나 이제는 별로 그렇지도 않지요. 오히려 강렬한 매력과 포스를 물씬 풍기며 주인공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는 악역이 많습니다.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도 원래는 주인공 덕만(이요원)과 대칭점에 놓이는 명백한 악역이었으나 그 엄청난 존재감은 주연을 뛰어넘어 사실상 '선덕여왕'을 미실의 드라마로 만들어 버렸었지요. 저의 개인적 견해로 '추노'는 명품 사극이긴 하지만 '선덕여왕'에 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역동적인 화면 구성이나 액션 등을 생각해 본다면 물론 '추노' 쪽이 앞선 부분도 존재하지만, 제가 가장 중점을 두고 시청하는 인물 심리면에서는 뚜렷하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큰 주모(조미..
"너는 항상 네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겠지. 그게 바로 내가 지금 너를 죽이려는 이유다." - '추노' 공식 홈페이지, '황철웅' 인물 소개 첫 문장 '추노'에는 황철웅이라는 이름의 악역이 등장합니다. 출중한 연기력의 배우 이종혁이 서늘한 눈빛으로 열연하고 있지요. 그에게서 매력적인 악역을 보고 싶었는데, 저는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그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그에게서 풍기는 어떤 비감한 분위기... 아무리 애를 써도 1인자가 되지 못하는 살리에르의 슬픔이랄까, 그런 면에서 적잖은 공감과 매력을 느끼시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2인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고통이 그렇게까지 큰 것일까 하고 저도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송태하에게 특별히 원한을 가질만한..
'추노' 12회를 시청하면서 문득 그 작가의 여성관이 궁금해졌습니다. 드라마의 전개가 이미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비호감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를 보며,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주인공이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관계로 리뷰를 쓰면서 어떻게 호칭해야 할까를 한동안 고민했으나, 제 느낌에는 혜원이보다 언년이라는 이름이 그녀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듯하여 앞으로도 계속 언년이라고 부를 생각입니다.) '추노'에는 아찔할 정도로 멋진 남성 캐릭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대길, 송태하, 최장군은 말할 것도 없고, 악역인 황철웅과 귀여운 바람둥이 왕손이, 궁녀를 사랑했던 우직한 한섬이 등의 남자들이 제각각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정..
'추노'라는 드라마의 장르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진중하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정통 사극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되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살던 노비와 하층민들의 삶이 처참한 삶이 적나라하게 배경으로 깔리고, 꼭대기에서부터 개혁을 시도하던 소현세자는 추악한 정쟁(政爭)의 희생양이 되어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하였습니다. 소현세자를 따르던 충신들은 초개와 같이 죽어나가거나 가문이 몰살되고 노비로 전락했으며,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부패한 권력의 핵심들은 여전히 썩은 내음을 풍깁니다. 이에 '노비당'이라는 이름으로 기습과 쿠테타를 전담하는 반란 세력이 가장 아래쪽에서부터 치솟아 올라오는 중이며, 소현세자가 남긴 마지막 혈손 이석견을 중심으로 몰락한 양반들의 세력도 집결의 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