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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식상한 소재를 다루었으되 그 방식의 신선함으로 많은 기대감을 안겨 주며 시작했던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적잖은 아쉬움을 남기고 종영했습니다. 중간까지의 전개를 보았을 때는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내용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탄탄한 플롯을 지니고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며 인과관계가 불확실해졌습니다. 윤두수 집안의 과거에 얽힌 수많은 비밀들은 결국 풀리지 않았고, 그토록 관심을 모으던 만신의 정체도 알고보니 단순하고 황당할 뿐, 복잡하고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윤두수에게 원한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그저 어떤 개인적 사정으로 죽지 못하는 몸이 되어 수백년간이나 사람의 간을 먹으며 살아 온 요괴(?)에 불과했군요. 천우의 어머니라던 기생 매향이 어떤 존재였는지, 왜..
구미호의 예쁜 딸 연이(김유정)가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 어린 것이 살아 보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도망쳤건만 끝내는 사람들이 쳐 놓은 그물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중에도 아버지처럼 믿고 사랑하고 의지했던 윤두수(장현성)의 손으로 직접 살해당했으니 그 원통함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요?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자기 딸을 향해 "절대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던 구미호(한은정)까지도 오직 윤두수에 대해서만은 부질없는 믿음을 품었다가, 가장 처참한 방법으로 배신당하고 말았으니 이보다 더한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구미호 여우누이뎐' 9회는 8회에 이어서 그 전개의 속도가 확연히 느려지고 있었습니다. 8회는 줄곧 연이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점철되더니만, 9회는 연이의 죽음 이후 ..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플롯이 생각보다 더욱 복잡하고 탄탄하게 짜여져 있음을 7회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윤두수의 딸 초옥과 구미호의 딸 연이, 두 소녀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얽히게 하여, 괴질로 죽어가는 초옥을 살리기 위해서는 연이가 필연적으로 희생되어야 한다는 설정부터가 범상치 않았지요. 그래서 초옥을 살리려는 윤두수의 부정(父情)과 연이를 살리려는 구미호(구산댁)의 모정이 충돌했고, 아이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 만큼 매순간의 전개는 숨막히도록 긴박했습니다. 그 와중에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남녀는 얄궂게도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안타깝게 엇갈리는 감정선이 갈수록 증폭되면서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초반의 설정으로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앞으로는 윤두수 일가..
1회의 폭풍 전개 이후로 약간 템포가 느려지긴 했어도 그쯤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내용은 흥미진진했고 모든 상황의 전개는 긴박감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어제 5회에서는 솔직히 '시간 끌기'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나름대로 긴박하긴 했는데, 그 긴박감도 너무 오랫동안, 같은 양상으로 수차례 반복되니까 더 이상 즐길 수가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만 좀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1차 추격전 양부인(김정난)의 사주를 받은 저잣거리 왈패들에게 연이(김유정)가 쫓기기 시작하면서 5회는 시작되었습니다. 긴박하게 쫓기던 연이는 결국 붙잡혀서 흰 천에 휩싸인 채 강물에 던져지지만, 질식하기 직전에 맹수(여우)의 본능을 드러내면서 날카로운 발톱(손톱?)으로 천을 찢고 강을 헤엄쳐 나옵..
'구미호 여우누이뎐' 2회는 숨가쁘게 달렸던 1회에 비해 약간 평이한 전개를 보였지만,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연이와 초옥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정규 도령이 등장했군요. 고을 현감의 자제인 조정규는 수려한 외모로 뭇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의외로 순진하고 허당스런 면이 있어서 무척 귀여웠습니다. 윤두수(장현성)의 금지옥엽인 초옥(서신애)의 끊임없는 연서는 귀찮아 하면서도, 반딧불이를 잡으러 나갔다가 마주친 천민 소녀 연이(김유정)의 자태에 한 눈에 반해버린 정규는, 그녀 앞에서 한껏 폼을 잡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다가 발을 헛디디며 개울에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모양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소녀 연이의 따뜻하고 순수한 반응은 정규 도령의 뻘쭘함을 단숨에 녹여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