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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어쩌면 태종 이방원(유아인)을 주인공으로 한 '육룡이 나르샤'는 처음부터 내가 몰입하기 힘든 작품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영현 작가의 사극이기 때문에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걸었지만, 높은 시청률과 대중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작품 전체에 담긴 근본적 메시지는 훌륭했지만, 주인공 이방원의 캐릭터는 지독히 잔인하고 냉정하며 자기중심적인 욕망으로 가득찬 인물이었다. 그러니 심약한 나로서는 이방원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스토리에 호흡을 맞추며 몰입하기가 버거웠다. 드라마에 푹 빠져있던 혹자들은 이방원의 캐릭터를 두고 '겉으로만 잔인할 뿐 속마음은 여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 이방원이 흘린 모든 눈물은 악어의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장금'의 장금(..
초반에는 제법 독특한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던 '용팔이'가 갈수록 부실 대본의 한계를 드러내며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 기본적 설정의 무리수는 일찌감치 드러난 상태였지만, 너무도 급박하고 뜬금없이 전개되는 남녀 주인공의 러브라인은 꾸준히 시청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1~2회분을 건너뛴 것처럼 느끼게 하는 마법을 선사했다. 듣자 하니 '용팔이'는 2013년부터 제작 기획이 시작되었다던데, 무슨 이유로 방송 초반부터 쪽대본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본이 그래선지 스토리 전개는 황당할 만큼 듬성듬성하고, 그 와중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선지 과거 회상 및 쓸데없는 장면들이 너무 길고 지루하게 삽입된다. 한여진(김태희)이 3년씩이나 인위적으로 잠들어 있게 된 이유가 8회에서 밝혀졌다. 3년 전..
무슨 '전원일기'도 아니고 세련된 김태희가 여주인공으로 컴백하는 드라마의 제목이 왜 하필 '용팔이'인가 했더니 '용한 돌팔이' 의사가 남주인공이었다. 그걸 몰랐을 때는 진짜 촌스럽고 요령부득인 제목이라 생각했는데, 내막을 알고 나니 제법 센스있고 멋진 제목처럼 느껴진다. 최고의 실력을 지녔으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보다는 오직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의사 김태현(주원), 그가 바로 용팔이다. 법의 단속을 피하느라 병원에 갈 수 없는 조폭들의 불법 수술을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 병원에서는 환자 보호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촌지를 뜯어내는가 하면, 신입 인턴들에게는 대놓고 집안 배경을 캐물으며 가진 자에게 아부하려는 속내를 드러낸다. 그 모든 파렴치함의 원인은 좀 신파스럽게도 아픈 여동생의 치료비 때문이었다. 찢어지게..
정말 이것이 최선이었을까? 하긴 대다수 시청자들의 마음은 억지스러워도 해피엔딩을 원했을 테지만,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 드라마에 깊은 애착을 품었던 내 마음은 오히려 슬퍼졌다. 왜일까? 나는 평소 사극의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었는데, 유독 '제왕의 딸 수백향' 에만 꼼꼼한 고증과 역사 재현을 바랐던 것일까? 다시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은 역사적 기록과 드라마 내용의 일치가 아니라, 제목과 주제에 걸맞는 엔딩이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도 제목과 주제에 어긋나는 엔딩을 맞이한다면, 화룡점정을 찍으려다가 그림을 아예 망쳐버리는 셈이니 이보다 더 애통한 일이 흔히 있으랴! '제왕의 딸, 수백향' 이라는 제목은 바로 주인공 설난(서현진)의 운명과 일치되어 있었다..
108부작으로 조기종영이 결정된 이후 '제왕의 딸 수백향'은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애초 예정이던 120회에서 무려 12회가 축소된 만큼 스토리 진행이 빨라지는 것은 당연지사라 하겠으나, 요즘 같아서는 이토록 재미있고 수준 높은 작품을 시청률 때문에 조기종영한다는 사실이 그저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어중간한 밤 9시대의 드라마치고 10%를 넘기는 시청률이면 그리 낮은 편도 아닌 듯한데, 황금 시간대인 10시 타임의 수목드라마들도 현재 10% 내외의 시청률로 고만고만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굳이 '수백향'을 조기종영하면서까지 후속작을 빨리 내보내겠다는 방송사의 고집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진짜 수백향인 언니 설난(서현진)을 대신하여 공주 노릇을 하던 설희(서우)는 결국 정체가 ..
'제왕의 딸 수백향'은 '구암 허준'의 후속작으로 현재 밤 9시대에 방송 중인 일일 사극이다. 원래 120부작으로 편성되었지만 낮은 시청률 때문에 10부 가량을 축소하는 조기 종영이 결정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시간 될 때마다 기분 좋게 시청하고 있는 중이라 서운한 마음이 든다. 아주 감칠맛 나는 재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스토리 구성이 제법 탄탄하고 인물 캐릭터가 고급스럽다. '왕가네 식구들'처럼 스토리에는 억지와 막장이 판치고 인물 캐릭터는 모두 저질스러운 작품보다야 '제왕의 딸 수백향'이 열 배는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하는데, 기이하게도 시청률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는 '서동요' 밖에 기억나는 것이 없었는..
드라마 '49일'이 종영했습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듯 싶으나, 저는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하던 결말은 아니었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면에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겼습니다. 제가 해석하기에 이 드라마의 포커스는 송이경(이요원)이 아니라 전적으로 신지현(남규리)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과 죽음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신지현은 49일 여행의 고된 일정을 마치고 귀한 3방울의 눈물을 얻어 회생에 성공했으나, 안타깝게도 태어나면서부터 그녀에게 주어진 목숨은 회생 후 고작 일주일이 더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너무 가엾어서 화가 날 정도로 서글픈 그녀의 운명이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유난히 밝고 긍정적이며 선량함의 화신과도 같았던 그녀는 타인들을 위한 천사..
제가 유일하게 깊은 애정을 갖고 시청하던 드라마 '49일'이 대단원을 1회 앞두고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반전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런 것일 줄은 단 한 차례도 상상해 본 적 없었습니다. 물론 19일 밤에 방송될 마지막회를 보아야만 확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요. 혹시라도 최악의 결말이 나올까봐 무척 염려가 됩니다. 저는 신지현이 다시 살아나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지현이가 자신과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해서 뾰로통하는 한강의 모습도 귀여웠습니다. 서운하지만 그래도 지현이에게 다가서는 길을 다시 첫걸음부터 열심히 걷기 시작하는 한강의 성실한 사랑이 너무 아름답고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신지현은 놀랍게도 지난 47일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머지않아 다시 죽게 될 것임을..
지난 주 신지현(남규리)의 목걸이에 첫번째 눈물 방울이 담겼을 때, 저는 당연히 한강(조현재)의 눈물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바로 직전에 나온 장면이 한강의 방에 놓여있는 화분에서 신지현의 도장이 발견되고, 그것을 본 한강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바로 다음 장면에서 송이경(이요원)의 몸 속에 갇힌 신지현의 영혼은 하늘을 향해 "살려주세요, 난 살아야 해요, 살고 싶어요" 하고 간절히 외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그녀의 목걸이가 눈부신 빛을 내더니 첫번째 눈물 방울이 담겨졌습니다. 정말 감격적인 순간이었죠. 저는 드라마 리뷰를 쓸 때 추측성 글은 되도록 쓰지 않는 편입니다. 사실 그 쪽에는 별 능력이 없거든요. 저는 그 눈물의 주인이 당연히 한강일 거라고 생각..
"49일 동안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세 명을 찾는 거야. 그럼 당신이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걸 어떻게 증명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생각하면서 흘리는 눈물이 그 증거야. 순도 100%의 눈물 세 방울" 1회에서 억울한 사고로 죽음의 위기에 놓인 신지현(남규리)의 영혼과 스케줄러(정일우)가 나누었던 대화입니다. 신지현은 30명도 아니고 3명의 사랑도 못 받고 사는 사람이 어딨냐면서 자신만만하게 49일 여행을 시작했지요. 그런데 '49일'의 시청자라면 모두 아시다시피 지금 엄청나게 고전중이며, 현재로 봐서는 미션에 실패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혈육은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그녀의 침상 앞에서 나날이 피가 말라가는 부모의 눈물은 소용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