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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제대로 맘 먹고 나온 것이 확실하다. 어쩐지 확 달라 보이는 외모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이마에 길게 흘러내렸던 앞머리를 짧게 쳐올리니 순정만화틱한 미소년의 얼굴은 70% 가량이나 사라져 버렸다. 훨씬 투박하고 남성적인 이미지로 변한 얼굴에 결연한 눈빛과 리얼한 흉터 분장을 더하니, 얼마 전까지 '일말의 순정'에서 보았던 샤방한 꽃소년 준영이가 바로 이 녀석이라고는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중견 배우도 쉽지 않을 감정 연기를 제법 그럴싸하게, 능청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게 표현해낸다. 이원근... 이제 그 이름이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앞으로는 작품 자체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최소한 1~2회 정도는 시청하게 될 것 같다. 콩나물이 크는 것처럼 쑥쑥 성장해 가..
겨우 2회가 방송되었을 뿐인데 '열애'의 속도감이 대단하다. 양태신(주현) 회장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빨리 닥쳐올 줄은 몰랐다. 강문도(전광렬)가 악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매서운 발톱을 꽁꽁 숨긴 채 인내하며 지내 온 시간이 얼마인데 이토록 쉽게 속내를 드러낼 줄은 몰랐다. 장인이 비록 악성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아직은 시퍼런 눈빛으로 살아 있는데, 그 앞에서 두려움 없이 본색을 드러내는 강문도의 모습은 핏빛처럼 섬뜩했다. 그 태도는 살인을 결심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장인의 말 한 마디면 이제껏 쌓아 온 공든탑이 단숨에 무너지고 모든 판도가 뒤집힐 거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 그런다는 건, 그 순간 이후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도록 장인의 목숨을 ..
'원더풀 마마'와 '금 나와라 뚝딱'이 동시에 종영하면서, 그 후속작들도 동시에 포문을 열었다. 지난 주까지는 '금 나와라 뚝딱'이 전해주는 나름의 감칠맛에 빠져 있었지만, 새로운 출발에는 왠지 공평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면서 두 작품 모두를 시청했다. 일단 첫 느낌을 솔직하게 말해 본다면, 내 생각에는 '열애'가 단연 우세하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 기준에 의한 생각이므로, 앞으로의 시청률 추세는 가늠하기 어렵다. 각설하고, 나는 지금부터 내 판단의 이유를 순차적으로 설명해 보려 한다. 나는 우선 캐릭터의 이름이나 작품의 제목이 너무 유치하게 설정되면 보기가 싫어진다. '금 나와라 뚝딱'은 그 제목 때문에 처음부터 보기가 싫었다. 차츰 재미있다는 호평이 들려오면서 호기심이 발동하..
솔직히 말하면 권순규 작가의 전작이 '무사 백동수'라고 해서, 처음부터 아예 볼 생각이 없었던 드라마입니다. 초반에는 상당히 흥미진진했으나 가면 갈수록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던 '무사 백동수'의 그 황망한 전개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까닭이죠. 전광렬 최민수 등 중견배우들의 묵직한 연기와 국민남동생 유승호의 매력적인 다크포스로도 감당할 수 없었던, 점차 산으로 가는 대본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신뢰를 갖게 할만한 다른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의 필모그래피가 (드라마로는) 달랑 그 '무사 백동수' 하나뿐이니, 동시간대에 다른 채널에서 '추적자 THE CHASER'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박경수 작가의 신작 '황금의 제국'이 방송되는 이상 '불의 여신 정이' 쪽으로 시선을 ..
지금껏 드라마를 시청하며 그 초점을 '애국'이 아니라 '인간'에 맞추어 왔던 저로서는 어떤 식으로 결말이 지어질지가 늘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주제가 '애국'인 듯하니까 '애국심'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결론내지 않을까 싶었죠. 그 와중에 '인간'의 '감정'이 묵살될까봐 걱정했던 건 저뿐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각시탈'은 끝까지 살아남았고, 그 정신을 수많은 타인들에게 전하여 수천 수만의 각시탈을 탄생시켰으니까요. 이 정도만 해도 '애국'이라는 주제는 충분히 살아난 셈인데, 그 와중에 '사람'도 보여주었으니 더 바랄 것 없는 최상의 결말이라 하겠습니다. 1. 여주인공 목단, 드디어 제 역할을 다하다 이제껏 여주인공 오목단(진세연)에 대한 반응은 썩 좋지 않았..
영화배우 유오성이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단독 게스트로 출연했습니다. 평소 그의 연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오랫동안 볼 수 없어서 이따금씩 궁금했었지요. 알고 보니 수많은 사건에 휘말리고 소문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냈더군요. 전혀 몰랐던 일들인데...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 차분히 털어놓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차로 안타까움이 깊어져 갔습니다. 영화 '친구'로 대박을 치던 2001년 무렵이 그의 배우 인생에 황금기였을 거라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예상치 못한 흥행에 오히려 부담을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자기가 한 것 이상의 결과가 나오니 감당할 수 없이 벅차게 느껴져서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는 거였습니다. 겸손한 척 하려고 꾸며대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심이라는 게 전해져 왔습니다. 왠지 어깨에 잔..
저는 남자가 아니지만 무협소설이나 무협사극을 꽤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무사 백동수'에 대한 기대가 사뭇 컸습니다. 사도세자와 정조시대의 이야기는 그 팩트(fact)만으로도 우리나라 역사 중에 제일 역동적인 부분 중 하나인데, 게다가 여러가지 픽션까지 삽입하여 무인(武人)들의 기구한 삶을 그려나갈 예정이라 하니 상상만으로도 매우 재미있는 사극이 나올 것 같았지요.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참으로 실망스럽고 지루했습니다. 기본적 바탕만으로도 긴장감이 넘쳐야 마땅할 이야기를, 어쩌면 이렇게도 긴장감 없이 풀어나갈 수가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어요. 1회 방송이 끝난 후, 갓난아기를 끓는 물에 넣어 죽이려던 '팽형' 부분에서 심각한 역사 왜곡과 잔혹성의 문제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물론 역사 ..
요 며칠간 느닷없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1O84'에 푹 빠져서, 놀랍게도 TV와 컴퓨터를 거의 꺼 놓은 채로 지냈습니다. 알○○ 적립금을 이용해서 1,2,3권 세트를 한꺼번에 구입해 놓은 것이 벌써 지난 여름인데, 그 두께를 보니 도통 엄두가 나질 않는 겁니다. 그리고 초반에는 그다지 끌리는 부분을 발견하지 못해서 몇 페이지 읽다가 먼지 쌓이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인데, 요즘 고질병인 비염 치료를 위해 꽤 먼 곳에 있는 병원을 오락가락하다보니 자연스레 차 안에서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그러다가 제1권의 중간부터 정신없이 빠져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십여년쯤 전에 '하루키 중독자'를 자칭하고 다닌 사람 중 한 명이 저였더군요. '태엽 감는 새' 이후로는 뭔가 예전같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고,..
박신양 주연의 '싸인'이 야심차게 출범한지도 2주가 되었습니다. 초반부터 빠른 템포와 치밀한 전개로 흥미를 끌며 호평을 받았으나, 4회까지 방송된 현재 시청률은 이상하게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군요. 물론 경쟁작 '마이 프린세스'가 김태희의 열연에 힘입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점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저는 그 이유를 '싸인' 자체내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전체적인 얼개를 보면 '싸인'은 나름대로 탄탄하게 잘 짜여진 구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복잡한 듯 하면서도 앞뒤가 잘 맞고, 일어나는 사건마다 흥미를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재미는 있어요. 그런데 등장인물을 하나씩 살펴 보면, 수많은 캐릭터 중 그 누구에게도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 저 사람은 겉으로는 못되게 굴지만 속마음은..
다소 억지스런 면이 없지 않았으나 어쨌든 우려했던 것에 비해서는 무난히 해피엔딩을 맞이한 '제빵왕 김탁구' 였습니다. 쇼킹한 반전은 없었군요. 저의 예측은 대부분 맞아들어갔습니다. 김탁구(윤시윤)는 거성식품 대표의 자리를 거절하고 팔봉 빵집으로 돌아가서 양미순(이영아)과 결혼하여 평생토록 행복한 빵쟁이가 되었습니다. 그 대신 구일중(전광렬)의 맏딸 구자경(최자혜)이 거성의 새 주인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맞는 자리를 찾아갔으니, 아무런 불만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결말을 맞이했다 하겠습니다. 유난히 탈이 많았던 러브라인도 급격히 정리되었습니다. 김탁구는 구마준(주원)과 신유경(유진)의 결혼 이후로 쿨하게 마음을 접었는지, 그 동안 모른척 하던 양미순의 마음을 단숨에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