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장옥정 (7)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조관웅(이성재)은 '구가의 서'에서 유일하고 절대적인 악역입니다. 그와 손잡고 악한 일을 꾸미는 기타 등등의 작은 악역들이 있긴 하지만 존재감이 미약해서 거의 눈에 띄지도 않죠. 그런데 드라마 자체가 지나칠 만큼 선악의 구분을 뚜렷이 정해 놓은 탓에, 가만히 살펴보면 캐릭터들이 촌스럽기 이를 데 없네요. 그 옛날 콩쥐팥쥐 식으로 착한 애 못된 애가 처음부터 구분되어 있으며, 아무 이유도 없이 착한 애는 원래 착한 애고 못된 애는 원래 못된 앱니다. 더불어 권선징악의 메시지도 거의 동화 수준으로 명백하게 제시되고 있지요. 그러나 과도한 명확함에서 비롯되는 이 촌스러움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현실적 리얼리티를 살린답시고 선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해놓은 캐릭터들은 보면 볼수록 머리가 아파지거든요. 그런 인물들이 ..
열심히 챙겨보던 드라마는 아니지만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종영을 앞둔 시점에서 생각하니 크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장희빈의 이야기는 이제껏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즐겨 차용되었지만, 등장인물들은 언제나 구태의연하고 전형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죠. 그나마 2000년대에 들어서는 야심찬 변화의 시도가 좀 있기도 했습니다. 김혜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7대 장희빈(2002년)의 경우, 초반에는 전형적인 악녀가 아니라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역시 문제는 시청률 부진이었습니다. 어차피 뻔한 내용인 줄을 다 알면서 또 '장희빈 드라마'를 선택한 시청자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악녀 장희빈'과 '선녀(善女) 인현왕후'의 첨예한 대결을 지켜보다가, 장희빈이 천벌을 받고 인..
'동이'를 시청하는 제 마음은 진퇴양난입니다. 타사의 월화드라마가 모두 썩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나마 볼 것이라고는 '동이'뿐인데, 저의 기대와는 달리 갈수록 아주 이상하게 코믹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 무협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보았었는데, 심각한 내용을 언제나 코믹한 분위기로 처리하는 그 특이함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동이'는 무협 액션 장면을 거의 삭제한 중국 무협 영화 같습니다. 이 리뷰의 제목을 '참을 수 없는 동이의 가벼움' 이라고 지으려다가 말았네요..;; 특히 동이(한효주)와 숙종(지진희)이 거의 매일밤 저잣거리에서 만나 투닥거리며 쇼를 벌이는 장면들이라니... 한두번도 아니고 어쩌면 임금님이 그토록 엉덩이가 가벼우신지... 동이와..
'동이' 9회와 10회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비중있는 연기자들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단역에 가까워 보이는 감찰부 나인 '정임'으로 나온 배우가 정유미라는 것을 보고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심지어는 까메오 출연이 아닐까 생각조차 했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동이와 초반에는 적대적 관계였다가 나중에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하니, 결과적으로 보면 '대장금'에서 박은혜가 맡았던 '연생이'와 비슷한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노비였다가 후궁이 된 동이(숙빈최씨)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에서, 내명부의 감찰부 궁인들이 큰 역할을 담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제가 보기에는 김혜선이나 김소이와 같은 중견 배우들이 감찰부 상궁으로 등장한 것도 상당히 뜻밖이었습니다. 하지만 놀라움을 금치 못해 ..
요즘 사극은 코믹이 대세일까요? '추노'가 기본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으면서도 곳곳에 적지 않은 코믹 요소를 심어 놓았더니만, '동이'는 한술 더 떠서 아예 드라마 자체의 컨셉을 코믹으로 잡고 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1. 숙종 (지진희) 놀랍게도 코믹의 중심에는 임금 숙종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이와 함께 음변 사건의 배후를 조사하다가 발각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 근엄하게 "내가 이 나라의 왕이니라!" 하고 소리치다가 안 먹히자, 눈을 감고 에잇 에잇 마구 칼을 휘둘러대던 모습은 정말이지 답이 안 나오는 허당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무슨 연예인처럼 궁녀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걸어다니더만, 임금이 이렇게 코믹하니 전체적 분위기도 코믹할 수밖에 없겠네요. 2. 오태풍(이계인) 음변 사건으로 인..
여주인공 최동이의 식상함에 비해, 숙종(지진희)의 캐릭터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제껏 드라마에서 그려진 숙종 임금의 모습은 여인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바람둥이 내지는 나약한 남자의 모습으로 보일 때가 많았지요. 물론 역사를 조금만 아는 시청자라면 그것이 결코 숙종의 진면목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으나, 주로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대립을 중심으로 다루어졌던 그 시대 배경의 사극에서, 남주인공인 숙종은 진실과 상관없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동이'에서는 무엇보다 숙종의 캐릭터에 정성을 기울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까지와는 아주 다른 모습의, 서늘하고도 색다른 매력의 숙종을 탄생시켰군요. 현명하고 강한 군주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통쾌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는 ..
아무래도 1~2회에서 너무 힘을 뺀 것 같습니다. 초반에 시선을 끌기 위해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너무 빠른 전개로 풀어 놓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3회에서는 현저히 주춤하는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벌여놓은 수많은 일들을 얼른 수습하고, 주인공의 아역시절을 지나 성인 연기자를 등장시켜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일까요? 벌써부터 캐릭터는 널을 뛰기 시작하고, 구성의 허술함이 적잖이 엿보입니다. 헌데 그러면서도 전개가 살짝 지루할 만큼 늘어지는 것은 어찌된 셈인지 모르겠네요. 1. 이해하기 어려운 최효원의 침묵 지난 번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서용기(정진영)의 오해는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용기는 최효원(천호진)과 단둘이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아주 어렵게 마련했습니다. 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