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이방석 (2)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어쩌면 태종 이방원(유아인)을 주인공으로 한 '육룡이 나르샤'는 처음부터 내가 몰입하기 힘든 작품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영현 작가의 사극이기 때문에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걸었지만, 높은 시청률과 대중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작품 전체에 담긴 근본적 메시지는 훌륭했지만, 주인공 이방원의 캐릭터는 지독히 잔인하고 냉정하며 자기중심적인 욕망으로 가득찬 인물이었다. 그러니 심약한 나로서는 이방원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스토리에 호흡을 맞추며 몰입하기가 버거웠다. 드라마에 푹 빠져있던 혹자들은 이방원의 캐릭터를 두고 '겉으로만 잔인할 뿐 속마음은 여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 이방원이 흘린 모든 눈물은 악어의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장금'의 장금(..
드라마 '정도전'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스릴 넘치는 극의 전개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음을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려서 국사를 배울 때는 정몽주(임호)처럼 꼿꼿한 충신이 매우 멋있어 보이고 이상적인 인간형이라 생각되었는데, 지금 보니 (그래도 멋있긴 하지만) 어딘가 몹시 꽉 막힌 듯하여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가 차라리 연애 편지였다면 좋았으련만, 정몽주가 그토록 사모한 것은 여인이 아니라 쇠잔해가는 고려 왕조였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백성의 삶이 편안해질 수만 있다면 임금의 성이 왕씨든 이씨든 그게 뭐 중요하다고 목숨까지 바쳤을꼬? 물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