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유신 (8)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과 '내 딸 서영이'가 연이어 5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대박을 기록한 후, 그 축복의 시간대에 '최고다 이순신'이라는 제목의 새 드라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그 시간대에는 달리 볼만한 공중파 드라마가 없을 뿐 아니라, KBS 주말드라마는 원래 주 시청층의 연령과 충성도가 높은지라 이번에도 별 무리없이 중박은 장담해도 되지 않을까 싶군요. 하지만 전작들이 워낙 대박을 쳤던지라, 그 바통을 이어받고도 중박에 그치면 찬사는 커녕 비웃음만 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최고다 이순신'에 임하는 배우들과 제작진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첫 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일단 남주인공이 여러모로 아주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신준호라는 캐릭터 자체도 신선하고 매력적이지만..
나... 그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있었기에, 꼭 전하려 하였습니다. 이미 살고 죽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산들 어떻고, 죽은들 어떻겠습니까? 다만 삶과 죽음의 강이 그대와 내 사이에 가로놓여, 차마 나의 말을 전하지 못하게 할까봐 그것이 두려울 뿐이었습니다. 덕만(德曼), 그대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대는 알아 주셨는데 오히려 내가 몰랐습니다. 내가 그대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대는 믿어 주셨는데, 오히려 내가 그대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 말로야 어찌 이 아픔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누구보다도, 나 자신보다도 나를 알아주셨던 그대이기에, 이 못난 사내의 어리석음조차 이해해 주시리라 믿으며 이렇게 달려갈 뿐입니다. 그대는 아무것도 모르던 나의 손을..
나는 왕이다. 비담, 너는 모른다. 너는 왕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는 지금도 어미 잃은 송아지처럼 그렁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어찌 나를 사랑했단 말이냐. 한 번도 너를 바라본 적 없는 나를, 너는 한결같이 바라보고 있더란 말이냐. 평범한 여인에게는 온 세상일 수도 있었을 너의 가슴이, 왕인 나에게는 그저 장기판의 말에 불과한 것을, 너는 하필 그 가슴을 나에게만 열었더란 말이냐. 왕의 길을 가려고 유신의 손을 뿌리친 순간부터 나는 사람도 아니고 여인도 아니었다. 유신도, 춘추도, 너도,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장기판의 말에 불과했다. 왕이란 그런 것이다. 정치라는 냉혹한 장기판에서, 이용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여인이라는 사실 또한 이용할 수만 있다면 못할 이유가 있..
스승님, 서라벌을 떠나 유람을 하실 때에도 사람들은, 국선이 태백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노라고 말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로 신선이 되어 영원히 살고 계시는군요. 지금도 저를 내려다보면서 "못난 놈" 이라 탄식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못난 놈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는 한 번도 잘난 놈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군요. 잘났거나 못났거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제가 원한 것은 오직 따뜻한 시선과 따뜻한 손길뿐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너무나 추웠고, 지금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춥습니다. 못난 놈이라서 이렇게 평생 추워야만 하는 거라면, 어떻게든 잘난 놈이 되어야 했을까요? 대체 잘난 놈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유신과 같은 자입니까? 아마도 그런 모양입니다. 스승님께서 못난 저를..
별로 관심없던 드라마 '아이리스'에 제가 지난주부터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목소리' 김갑수의 등장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등장과 더불어 모든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기 때문에 더이상 답답하지도 않게 되었고, 더불어 눈이 가리워진 듯 암담한 상태에서 외롭게 혼자 싸워가야만 했던 이병헌에게 그와 같은 든든한 동지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지난 12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갑수는 바로 다음 회인 13회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절대악 '아이리스'에 굳건히 대항해 왔던 그가 너무도 쉽게 살해당해버린 것입니다. 헝가리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이병헌을 구해 주었고, 그 후로도 여러번 수호천사처럼 그에게 도움을 주었던 정체불명의 '목소리'... ..
드라마 '선덕여왕'이 미실(고현정)의 죽음을 전환점으로 하여 제3부로 접어들었습니다. 제1부는 덕만(이요원)의 탄생과 어린시절 및 자아찾기에 골몰하던 낭도 시절까지였다면, 제2부는 공주의 신분을 회복한 덕만이 미실과 본격적으로 대결을 벌이는 시기였습니다. 이제 최대 강적이었던 미실이 사라지고 덕만은 목표였던 '왕'의 꿈을 일단 이루었습니다. 제3부는 왕위에 오르면서 새로이 시작된 덕만의 삶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드라마의 흐름을 보면 분명히 주인공인 덕만 중심으로 스토리가 흘러가고 있기는 합니다. 며칠 전, 한 독자분께서 저에게 이런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서브 캐릭터였던 미실이 너무 크게 부각되면서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므로, 이제 미실이 사라지고 나서는 차츰..
사실 지난번에 "문노가 제자 비담에게 주는 편지"를 작성했으니, 오늘은 "비담이 스승 문노께 드리는 편지"를 작성하여, 아버지같은 스승을 마지막으로 떠나 보내는 비담의 절절한 심경을 담아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판에 염종을 따라가는 비담의 약간 뒤집어진 눈빛을 보니 도대체 이 녀석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짐작할 수가 없어서, 비담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려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답니다. 비담은 내력이 파란만장하고 상처가 많은 아이라는 점만은 확실하지만, 아직도 선악의 경계에서 격렬하게 흔들리는 녀석이라 오직 다이내믹할 뿐 종잡을 수가 없어요. 캐릭터와의 감정 일치에 실패한 관계로, '선덕여왕' 37회 리뷰는 편지 형식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 리뷰로 진행됩니다. 편지 시리즈를 기대하셨던 분들께는 ..
'선덕여왕' 33회는 비담(김남길)을 위한 챕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생각보다 좀 빠르고 쉽게 비담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아차리게 되고, 그놈의 출생 때문에 몇달간을 부들부들 떨며 삽질하던 덕만공주(이요원)와는 달리 눈부신 속도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거친 날개짓을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살포시 피어나는 멜로 라인들이 눈에 보이는데, 현재로 봐서는 양쪽 다 비극으로 치달을 듯 싶어서 안타깝기만 하네요. 첫번째 멜로라인은, 유쾌하기는 하지만 몹시 생뚱맞은 죽방(이문식)의 소화(서영희)를 향한 연정(戀情)입니다. 죽방과 고도(류담)는 이미 소화와 더불어 좁아터진 헛간에 함께 갇힌 상태로 몇달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물론 그때는 제정신도 아니었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꾀죄죄한 몰골이긴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