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박정수 (7)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를 무심히 보다가 샘 해밍턴이 제시한 질문에 완전히 꽂혀버렸다. 외국인인 샘에게 있어 민감하고도 사적인 질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퍼붓는 한국 사람들의 습성은 매우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광고를 찍으면 출연료는 얼마나 받았는지 묻고, 결혼해서 이사를 하면 집은 몇 평인지 얼마나 들여서 입주했는지를 묻고, 심지어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는 질문까지 하는데 무척 곤욕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런 질문을 하는 한국 사람들이 문제인가요? 아니면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분 나빠하는 제가 문제인가요?" 처음 표결에 부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압도적으로 '한국인들의 질문 습관이 문제다' 쪽에 표가 몰릴 줄 알았으나 결과는 전혀 예상 외였다. 15명의 패널 중 '한국인들이 문제다'는 7명이었고 오..
노인정 같은 곳에서 홀로 되신 남녀 노인분들이 만나 교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젊은 사람들은 흔히들 가볍게 생각한다. 답답한 일상을 달래주는 하나의 취미 생활처럼, 그저 무료한 대낮에 만나서 쌍화차를 마시며 손주들 이야기나 주고받는 그런 관계일 거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청운의 꿈을 간직하거나 미래를 설계할 시기도 아니고 체력도 약해져 버린 나이에 연애를 시작한다 해서, 어찌 젊은 날처럼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겠는가 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늦은 나이일수록 일단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이것이 내 삶의 마지막 사랑'이라는 생각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가족과 전재산을 버릴 만큼 올인할 수도 있으며, 간혹 삼각관계가 형성되면 거친 몸싸움이나..
어차피 몇 시간 후면 알게 될 일인데,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기왕지사 해 오던 일이니 끝까지 굳세게 삽질(or 헛발질)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또 짧은 글을 끄적대기 시작합니다. '하이킥3' 122회를 본 사람들은 모두가 서지석-박하선 커플의 이별을 믿고 있을까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을까요? 지석-하선이 공항에서 보여준 애끓는 이별은 '거침없이 하이킥'의 최민용-서민정 커플의 이별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표정부터 분위기까지 너무 똑같으니, 마치 배우만 바꿔서 재연드라마를 찍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더군요. 그렇다면 민용-민정이 이별했던 것처럼 지석-하선도 이별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요? 하지만 ..
'반짝반짝 빛나는' 17회에서 한정원(김현주)의 변신이 예고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눈에 비친 한정원의 캐릭터는 결코 호감형이라 할 수 없었는데, 드디어 그녀가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의 속마음을 꾸밈없이 인정하면서 뭔가 커다란 반전을 일으킬 것 같더군요. 부모의 친딸인 황금란(이유리)을 집에 들이지 말라고 엄마에게 억지부리며 떼쓰던 그 철딱서니가, 어쩌면 이제 스스로 일어나 늪지대처럼 어둡고 막막한 친부모의 집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그 누구도 한정원에게 친부모의 집으로 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28년간 함께 살아 온 부모도 엄연히 진짜 부모가 맞거든요. 친딸이 나타났다고 해도 한지웅(장용)과 진나희(박정수)는 절대 한정원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무엇보다 '재산'..
'반짝반짝 빛나는'은 흔한 출생의 비밀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소 식상한 설정이지만, 스피디한 전개와 배우들의 명연기 덕분에 나름대로 신선한 재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불과 11회만에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두 여인의 기막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13회에는 드디어 양쪽 집안의 엄마들이 만나 두 딸의 거취 문제를 의논하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완전히 속전속결입니다. 현재 가장 몰입도가 높은 인물은 황금란(이유리)입니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시청자들이 황금란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녀의 편에 서 있습니다. 부와 지성을 겸비한 부모의 외동딸로 귀하게 태어났으나 병원측의 실수로 가난한 집 둘째딸과 뒤바뀌어 29살이 되도록 견디어 온 그녀의 삶은 너무나 힘겨운 것이었기에, 이제 ..
'글로리아'의 후속작으로 MBC의 새 주말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이 시작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과 제목은 똑같지만 내용상으로는 아무 연관이 없더군요. 가난한 집 아가씨가 부잣집 아가씨를 보면서 "나와 동갑이고 생일도 같은데, 나하고는 너무 달라. 그 여자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반짝반짝 빛이 나..." 라고 말하는 대사가 2회 예고편에 등장했는데, 바로 그 대사가 이 드라마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주제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뒤바뀌었고, 나중에 성장해서야 그 사실이 밝혀진다는 기본적 내용은 역시 식상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오래 전부터 '생인손', '사모곡', '만강' 등의 사극에서 애용되었고, 현대극 중에서도 '가을동화'..
요즘 사극은 코믹이 대세일까요? '추노'가 기본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으면서도 곳곳에 적지 않은 코믹 요소를 심어 놓았더니만, '동이'는 한술 더 떠서 아예 드라마 자체의 컨셉을 코믹으로 잡고 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1. 숙종 (지진희) 놀랍게도 코믹의 중심에는 임금 숙종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이와 함께 음변 사건의 배후를 조사하다가 발각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 근엄하게 "내가 이 나라의 왕이니라!" 하고 소리치다가 안 먹히자, 눈을 감고 에잇 에잇 마구 칼을 휘둘러대던 모습은 정말이지 답이 안 나오는 허당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무슨 연예인처럼 궁녀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걸어다니더만, 임금이 이렇게 코믹하니 전체적 분위기도 코믹할 수밖에 없겠네요. 2. 오태풍(이계인) 음변 사건으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