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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너의 등짝에 스매싱' 홈페이지에는 "인생의 후반부에서 한 순간에 몰락해 버린 베이비부머 세대 가장의 눈물겨운 사돈살이, 또 애석하리만큼 큰 시련을 맞게 되는 영이 맑은 한 청춘이 꿈과 사랑에 대해 눈뜨는 웃픈 성장기를 담은 시트콤" 이라는 프로그램 소개가 나와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현재 가장 불쌍한 처지로 사돈살이를 하고 있는 박영규와 박현경(엄현경) 부녀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모두가 깨알 재미를 주는 소중한 캐릭터들이지만. 그런데 아무리 현재 처지가 난감하다 해도 나는 박영규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 작품들을 살펴볼 때, 김병욱(스텐레스김)은 중년 이후 캐릭터들에게 아무리 큰 시련을 주었더라도 결국은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도록 해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감자별2013QR3' 이후 갑작스런 김병욱 감독의 은퇴 선언은 가히 청천벽력이었다. 그의 작품이 방송되는 동안에는 온 마음을 기울여 열렬히 시청하고, 한 작품이 끝나면 또 그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오려나 학수고대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온 나에게, 이제 더 이상 웃음과 눈물과 감동이 공존하는 그의 시트콤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은 단순히 아쉽다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상실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상업주의 만연한 이 시대에,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과 신념을 고집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겹고도 외로운 일일 터였다. 어쩌면 이제 지칠 때도 되었다 싶었고, 만약에라도 험한 방송가에서 더 버티다가 그만의 고유한 색깔이 변질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쯤에서 영..
'대장금'과 '서동요' 이후 김영현 작가의 사극에 매료된 나는 '선덕여왕'과 '뿌리깊은 나무'를 시청하며 그녀의 필력을 극도로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엄연한 창작물이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요즘 시대에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고, 작품을 감상하다가 실제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 공부하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외국에 수출될 경우는 좀 더 오해의 소지가 많겠으나, 방영 전에 자막으로 '이 작품은 허구와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물로서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면 큰 문제는 되지 ..
최근 '무한도전'의 '토토가' 특집이 1990년대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며 각광받고 있는데, 의외로 나는 '토토가'에서 특별한 감동이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나 역시 90년대 노래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즐겨 들었던 사람이지만, 댄스곡 위주의 경쾌한 무대로 꾸며진 '토토가'는 발라드를 좋아하는 내 취향과 잘 맞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덧 30대 후반에서 40대에 이른 가수들이 20대 초반 시절의 풋풋함을 똑같이 재현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은 좀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흐르는 세월따라 나의 감성이 변해버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토토가' 열풍 속에 상대적으로 경쟁 프로그램인 '불후의 명곡2'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오히려 나는 거기서 잔잔한 감동과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연말연시를 보내는 중이다...
아무래도 요즘 임성한 작가는 배우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것 같다. 특정 배우를 향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막연히 배우라는 직업군에 대한 혐오증이 생긴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치 작심하고 배우들 죽이기에 나선 것처럼, 배우들을 향해 휘두르는 작가의 칼날이 매섭기 때문이다. 끝까지 함께 할 것을 약속했던 손창민, 오대규, 박영규 등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중도하차를 당했다. 그러나 현재 남녀 주인공이 직면하고 있는 난감한 상황을 보면 차라리 중간에 잘려나간 중견배우들의 처지가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임성한 작품의 주인공들이 이토록 홀대받은 적은 없었는데, 당최 어떻게 된 일일까? 오창석과 전소민이 처음 '오로라 공주'에 캐스팅 되었을 때는 드디어 기회가 왔다는 설렘에 얼마나 부풀었겠..
만약 '주군의 태양'에서 그 멋진 소지섭이 찌질남으로 변신한다면 시청자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그 해맑은 이종석이 스토커로 변신하여 싫다는 이보영을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녔다면 시청자는 용서할 수 있었을까? 어느 정도의 못난 모습, 인간적으로 봐줄 수 있는 차원이라면 용납 가능하겠지만 이건 아니다. '오로라 공주' 공식 홈페이지 대문에는 아직도 오로라(전소민)와 황마마(오창석)를 주인공으로 한 포스터가 걸려 있다. "너무 다른 두 완벽 남녀의 운명적 사랑 스토리!" 라는 표제도 아직은 유효한 모양이다. 그러나 황마마는 이미 주인공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설설희(서하준)의 등장 이후로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을 걸어 왔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남아 있었는데, 74회에서 최후의 마..
생각해 보면 스텐레스김은 가난한 사람의 캐릭터를 멋지게 그려주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똑바로 살아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박영규가 가장 찌질한 못난이였죠. 손윗 동서 노주현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처지에 툭하면 병원 공금을 횡령하고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등 민폐 행각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진 자' 노주현이 너그러운 아량으로 늘 용서해주며 데리고 살았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그와 같은 설정은 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극심한 가난은 사람의 마음조차 척박하게 만들어 버리니, 인간으로서의 품위나 사회적 정의 따위를 챙길 여유가 없겠지요. 스텐레스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 '지붕킥'의 신세경 한 사람을 제외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찌질하게 그려졌습니다. 이번 ..
저만의 독특한 느낌인지도 모르지만 '하이킥3'의 박지선을 보면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노홍렬(이홍렬)이 떠오릅니다. '웬만해선...'이 방송되던 2001년 무렵, 이홍렬은 최고의 개그맨이자 MC로서 한창 잘 나가고 있었지요. 그런 그가 시트콤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그가 가장 코믹한 캐릭터를 맡아서 큰 웃음을 줄 거라고 누구나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이홍렬이 맡은 캐릭터는 가장 웃음기가 없고 진지한 역할이었습니다. 노구(신구)의 둘째아들 노홍렬은 어린 딸 민정(김민정)을 남기고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십여년 동안이나 재혼하지 않고 혼자서 딸을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옆집에 이사 온 배종옥을 보고 한 눈에 반해서 길고도 간절한 짝사랑을 시작하게 되지요. 자그마한 체격에..
누구인들 쉬운 길로 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누구인들 모두가 칭찬하고 박수갈채 치는 방향으로 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쉬운 선택을 한 사람들을 탓할 수 없는 이유는, 나 자신부터가 그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좋은 작품과 인기 많은 작품이 꼭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진정한 명작 예술품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작품이 같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문외한도 다 아는 원칙을 그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베테랑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대다수에게 칭찬받고 시청률을 높이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김병욱 PD가 모를 리는 없습니다. '하이킥3'는 유난히 초반부터 대중의 관심이 높았고, 또 그만큼 질책도 심한 작품입니다. 김병욱은 언제나 그렇듯 자기 고집대..
'보스를 지켜라' 9회에서는 아들 차지헌(지성)을 향한 차봉만(박영규) 회장의 애틋한 부정(父情)이 더욱 절실히 드러났습니다. 노은설(최강희)이 비서로 들어온 후 말썽꾸러기 아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에 신이 난 차회장은 한동안 "노비서~ 노비서~" 불러대면서 그녀를 총애했으나, 막상 차지헌이 노은설을 여자로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펄펄 뛰며 반대했었지요. 그거야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차회장의 반응은 여타 드라마 속의 재벌 회장들과는 좀 달랐습니다. 보통의 회장이나 사모님들은 "어딜 너 같은 것이 내 아들을 넘봐!" 하면서 여주인공을 싹 무시하게 마련인데, 차회장은 노은설에게 적잖이 미안해하며 안타까운 기색으로 말했습니다. "그러게, 왜 놀았어? 놀기라도 좀 하지 말지..." 그 말 속에는 노은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