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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비밀의 문' 7회에 처음 등장한 김무(곽희성)는 외로운 들개처럼 처연하고 위험해 보였다. 그는 현직 영의정이며 노론의 영수인 김택(김창완)의 버려진 자식이었다. 기생첩에게서 태어나 평생 바람처럼 떠돌던 그를 김택이 불러들였을 때, 그는 아비에게 인사를 올렸다. "오랫동안 격조하였습니다, 대감마님!" 어쩌다 칼 쓰는 법을 익히고 살수가 되었는지, 김무의 사연은 다뤄지지 않았다. 세도가의 얼자이며 기생의 아들로서 세상 어떤 집단에도 속할 수 없었던 그의 척박한 삶을 어림짐작할 뿐이다. "이제는 그저 사냥이나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대감의 청을 받들지 않을 것입니다!" 아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들은 반항했다. 그러나 아비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너를 찾아 불러올리느라 애 좀 먹었다. 따라 나서거라. 갈 ..
현재 tvn에서 방송중인 '삼총사'는 인조(김명수)와 소현세자(이진욱)의 이야기를, sbs에서 방송중인 '비밀의 문'은 영조(한석규)와 사도세자(이제훈)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이다. 특히 '비밀의 문'은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이후 3년만에 영조로 변신한 한석규의 귀환으로 화제를 모았던 2014년 하반기 최대 기대작이었다. 그러나 한석규의 명품 연기에도 불구하고 '비밀의 문'은 대본과 연출의 미흡함으로 대중의 혹평과 시청률 하락에 시달리고 있으며, 반면 '삼총사'는 제법 탄탄한 구성과 신선한 재미를 선보이고 있음에도 케이블의 한계와 주 1회 방송의 핸디캡 때문인지 작품 수준에 적합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비밀의 문'에는 '의궤 살인사건'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극 초반 세..
아찔하도록 매력적이었던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이후 3년만에 임금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한석규를 브라운관에서 볼 수 있다는 감사한 사실만으로도 '비밀의 문'을 향한 기대는 한껏 높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월화드라마 라인의 폭망으로 지루함에 시달려 온지가 벌써 수개월째라 '믿고 보는 한석규'의 귀환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모양이다. 나는 원래 김영현 작가의 사극 매니아이며 상대적으로 윤선주 작가의 작품을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불멸의 이순신' 등 높이 평가받는 작품을 많이 쓴 작가이니 한석규와의 호흡을 기대할만 하겠다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솔직히 기대에는 못 미친 느낌이었다. '비밀의 문' 초반 전개는 영조의 즉위와 관련된 비밀 문서 '..
대박을 노렸던 월드컵 특집이 최악의 폭망을 기록하면서 '힐링캠프'에는 분위기 전환의 필요성이 절실했을 것이다. 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 기준 6%대를 상회하던 시청률이 무려 3%대로 떨어졌으니, 월드컵 특집에 쏟아부었던 막대한 비용을 안타까워할 겨를이나 있었을까? '힐링캠프'에서 다급히 준비한 카드는 최근 이색적인 콜라보 음악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김창완과 아이유 콤비였다. 게다가 '악동뮤지션'까지 불러들여 빼곡히 4명의 게스트가 함께 했으니, 원래 1인 게스트로 진행되는 '힐링캠프'의 정체성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절박했던 제작진의 심경이 그대로 느껴져 온다. 다행히도 김창완과 아이유의 조합은 성공적이었다. 비록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내용상의 퀄리티는 높아서, 그들이 출연한 2주간의 방송을..
비록 외계인과 구미호의 차별성을 확실히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별에서 온 그대'는 첫회부터 남주인공 도민준(김수현)의 매력을 200% 발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단언컨대 도민준 같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여자들의 소망이라 할만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세세하게 따진다면 "난 아냐!" 하면서 고개를 저을 여자들도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굵직한 특성 몇 가지에만 초점을 맞춰 본다면 그런 남자의 사랑을 과연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도민준은 현실에 없는 온갖 판타지를 집약시켜 여자들의 로망을 극대화하고자 작정하고 만들어낸 캐릭터 같다. 1. 400년 동안 오직 한 여자만을 기다려 온 남자 1609년의 조선 땅에 처음 떨어졌을 때,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도민준은 어렵지 않게..
'굿 닥터' 1~2회는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의사...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아주 강렬하게 시선을 끌었죠.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누구보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소아외과 의사라니, 마치 꿈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듯한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은 단숨에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게다가 서번트 증후군으로 인한 천재적 암기력과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짚어내는 판단력도 매력적이었고요. 박시온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참 많이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주원의 명품 연기도 감탄을 자아냈죠. 하지만 신선함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3회 이후로 '굿 닥터'는 급격히 밋밋해지면서 초반의 흡입력을 잃고 말았어요. 일단은 주..
자폐증을 앓는 주인공이 좋은 의사가 되는 이야기 '굿 닥터'는 참으로 따스한 드라마입니다. 순수를 찾기 힘들어진 사회 속에서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들과 그 순수의 힘으로 생명을 되찾고 행복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그 주제와 의도를 알면서도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이 드라마 또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마찬가지로 이상향을 그리는 동화쯤으로 생각하고 봐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첫 회부터 머리를 떠나지 않더군요. '너목들'은 초능력이라는 판타지를 내세움으로써 동화적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에 다소 과장된 설정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자폐증이라는 현실적 질환을 내세운 '굿 닥터'는 훨씬 강한 리얼리티로 다가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비현실적이거나 과장된 요소가 발견되면..
2005년작 드라마 '떨리는 가슴'의 6가지 에피소드 중 엔딩을 장식하는 11~12회의 소제목은 '행복'입니다. 인정옥 작가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적나라한 대사들이 정말 일품이죠. 다른 에피들도 거의 그렇지만 특히 제6화는 독립된 단편의 느낌이 강해서 애초부터 2회로 만들어진 단막극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5명 작가들에 의해 구축되어 온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모두 생생히 살아 숨쉬며 비로소 완성에 이른 듯한 느낌도 받게 됩니다. 아무리 봐도 명작 중의 명작이에요. '떨리는 가슴' 시리즈 중에서도 특히 '제6화-행복'을 저는 대략 5~6번쯤 반복해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 "꽃이라도 달고 가지..." 중얼거리며 흐느껴 우는 배종옥의 모습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면 저도 모르게 먹먹해지는 가슴을 억누..
2005년작 드라마 '떨리는 가슴' 제4화-바람'과 '제5화-외출'은 간단히 말하면 김창완 배종옥 부부의 '일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같은 일탈이라도 그 주제는 확연히 달랐죠. 제4화는 별로 제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건너뛰고 제5화의 리뷰를 쓰려 합니다. 4회의 큰 줄거리만 짚고 넘어간다면, 40대의 착하고 소심한 중년 가장 김창완은 어느 날 회사 식당에서 식권을 나눠주는 20대 여직원 오수경(최강희)의 은근한 유혹을 받고 설렘과 떨림을 느끼며 위험한 중독에 빠져들 뻔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 배종옥이 수경을 만나 현명한 대화로써 그녀의 처지를 깨닫게 함으로써 수경은 멀리 떠나고 김창완 인생의 한 줄기 바람은 그렇게 추억으로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창완이 엄연히 유부남인 것을 알면서..
오늘도 2005년작 드라마 '떨리는 가슴' 리뷰입니다. 어제는 '제1화-사랑' 편을 다루었으니 순서대로라면 오늘은 '제2화-기쁨' 편이 되어야겠지만, 그건 리뷰를 쓰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아서 그냥 건너뛰겠습니다. 큰 줄거리만 가볍게 짚고 넘어가자면, 제2화의 주인공은 김창완의 동생으로 등장한 하리수였습니다. 원래는 남동생 '김창우'였는데, 가출한지 몇 년만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여동생 '김혜정'으로 바뀌어 있는 인물이죠. 실제 트랜스젠더인 하리수를 등장시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그들만의 아픔을 꽤나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성별이 바뀌어 버린 김혜정을 받아들이는 데 가족들조차도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은 그녀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며 감싸주게 되지요. 몰이해의 두터운 벽을 허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