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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오늘은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모든 커플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응원하는 판사현(성훈)과 송원(이민영)의 사랑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원래는 회차별로 나누어 리뷰를 쓰려고 했으나, 다시 시청하다 보니 각 인물별, 커플별로 이야기를 정리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이 커플은 둘이서 나란히 활짝 웃으며 예쁘게 나온 장면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주보고 웃는 장면은 많았지만, 두 사람은 흔한 셀카 한 번도 찍지 않았고, 어깨에 기대어 잠든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그들은 조심스러웠고, 특히 송원 쪽에서는 최대한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16회 후반에 송원이 갑작스레 동침을 제안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판사현의 결혼 생활을 어떻게든 유지시키려 했고, 그의 가정을..
어쩌면 자업자득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8살 예린이(김지영)는 그토록 사랑하고 믿어왔던 아빠가 뜻밖에도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말았다. '부정입학'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어린아이였지만, 이 똘똘한 녀석은 신문기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썩 잘 이해했다. 자기를 국제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아빠가 나쁜 일을 했고,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빠를 비난하고 있으며, 친구들은 자기 엄마로부터 "예린이와 놀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린이는 울며 소리쳤다. "할머니, 아빠 불쌍한데... 미워!" 박정환(김래원)은 한 달 남짓한 인생의 마지막 시간 동안, 잘못 살아 온 지난날을 조금이나마 만회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온갖 나쁜 ..
2012년 '추적자 THE CHASER'의 신선한 충격은 박경수 작가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와 기대를 한껏 높여주었다. 비록 2013년 '황금의 제국'은 전작만큼의 화제성과 시청률을 확보하지 못했으나, 인간의 내면을 무섭도록 냉정하고 끈질기게 파헤치는 작가의 묵직한 필력은 매니아들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그 후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4년도 막바지에 이른 겨울, 드디어 고대하던 '펀치'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공중파와 케이블을 통틀어 100편이 넘는 드라마가 제작되었으나 그 중 깊은 인상을 남긴 수작은 1~2편에 불과했던 2014년의 혹독한 드라마 기근에 '펀치'는 과연 단비로 내려줄 수 있을까? 첫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전형적인 구도를 지니고 있어 신선함은 느낄 수 없..
담사리(전노민)의 공개처형과 관련되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정작 담사리 본인은 각시탈 이강토(주원)을 비롯해 수많은 동지들의 비호를 받으며 무사히 위험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가짜 각시탈로 분장했던 독립군 장동지는 몸에 폭약을 묶은 채 장렬히 산화했고, 기무라 슌지(박기웅)의 총에 맞아 체포되었던 적파(반민정) 역시 고문 끝에 혀를 깨물고 자결하였습니다. 서커스단의 여장부였던 오동년(이경실)은 현장에서 슌지의 총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지요. 극에서 비중있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그들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조선인은 물론이고 일본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각시탈이 사용하는 무기(쇠퉁소, 깃대 등)는 웬만해서 사람을 죽이지 않지만, 장동지의 다이너마이트 폭발 당시에는 근처에 있던 일본 순사..
너무 강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이었을까요? 제가 김경탁(김재중)의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 듯 합니다. 서출이라는 태생적 설움은 일찌기 짐작하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 슬픔을 디딤돌 삼아 절치부심하고 독하게 노력하여 나중에는 이복형 대균(김명수)의 뺨을 치는 야심가로 성장할 거라고 예상했었죠.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그의 눈빛은 왠지, 작고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순한 남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좀 멀어 보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영래(박민영)를 향한 일편단심의 사랑도 처음부터 순도 100%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녀를 사랑하는 진심이 70~80% 가량은 되겠지만, 나머지20~30% 쯤은 집착과 소유욕 등의 감정도 섞여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김경탁은 너무나 외로운 사람이..
1968년, 라디오드라마로 제작된 '저 눈밭에 사슴이'는 현재까지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데뷔작이었습니다. 그 무렵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청순한 매력을 발산하며 제주여고에 재학중이던 한 명의 섬소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꼭 배우가 되고 말겠다" 는 야무진 결심을 굳히게 되지요. 그 소녀는 훗날 여배우가 되어 연기대상 트로피를 5회나 차지하며 최다 수상 기록을 세우고, 방송 3사의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하는 한국 최초의 연기자가 됩니다. 바로 최근 2주 동안 '힐링캠프'의 주인공이었던 고두심의 이야기예요. 속속들이 따지고 보면 누구의 삶이건 특별하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마는, 고두심의 인생은 더욱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듯 느껴졌습니다. 머나먼 남단의 섬 제주도..
1. 어머니의 작별 인사 '닥터 진' 11회에는 유독 가슴을 울리는 명장면과 명대사가 많았습니다. 진혁(송승헌)과 홍영래(박민영)와 흥선군(이범수)은 좌의정 김병희(김응수)의 계략에 빠져 대왕대비(정혜선)를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는데, 죄목은 너무 큰 데다가 누명을 벗을 길은 막막하니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요. 영래의 어머니(김혜옥)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딸자식을 한 번이라도 만나 보고자 옥리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사정하여 간신히 옥사 안으로 들어오는데, 모진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된 영래를 마주하자 회한의 눈물을 금치 못합니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해줄 걸 그랬구나!" 고분고분히 말을 듣고 평범한 여인으로 살았더라면 이토록 험한 운명에 처..
진실을 깨닫기 전까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번듯한 집 한 칸이나 마련해 주고, 불쌍한 형을 좋은 병원에서 치료받게 해줄 수만 있으면, 내가 나쁜 놈이라고 욕먹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슌지(박기웅)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운명이란 것도 몰랐다. 내지인이건 반도인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항상 내 편을 들어주는 착한 녀석이니까 평생 친구로 지낼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의 출세길을 막는 원수같은 놈이라고 생각했던 각시탈이 바로 형이었다. 바보가 되고 폐인이 된 줄만 알았던 나의 형 이강산(신현준)이 바로 각시탈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형에게 총을 쏘았다. 내가 쏜 총에 맞아 피흘리고 죽어가면서도 형은 바보같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에게 ..
이경실이라는 연예인이 매우 정이 많고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알겠지만, 때때로 공적인 자리에서 지나치게 남의 일을 언급하며 감싸려는 모습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좋지 않은 일로 방송을 쉬고 있는 동료에 대해 개인적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야 당연하다 하겠지만,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민감한 이슈를 먼저 들고 나와서 일방적인 입장을 토로하며, 모든 시청자에게 긍정적인 시각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경실의 그러한 행동이 시청자를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정작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당사자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차라리 제대로 판을 벌여서 조목조목 시시비비를 따지고 모든 의혹을 규명한 후, 따라서 그 사람은 잘못이 없고 조..
'닥터 진' 7회의 중심부에서 극을 이끌어간 캐릭터는 진혁(송승헌)과 홍영래(박민영)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흥선군 이하응(이범수)이나 종사관 김경탁(김재중)도 아니었습니다. 이름없는 풀꽃의 은은한 향기와 초록빛을 지녔던 여인... 고달픈 삶 속에서도 고이 간직해 왔던,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던진 여인... 기녀 계향(윤주희)이 바로 7회의 주인공이었지요. 드라마 전체를 볼 때 그녀가 등장한 분량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나, 짧은 동안에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불태우고 떠난 인물이 아닐까 싶군요. 계향의 캐릭터가 더욱 의미있는 까닭은, 그 인물 자체가 철저한 '약자'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생이란 겉보기에만 화려할 뿐, 사실은 서민보다도 못한 처지의 최하층민이죠. 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