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래원 (9)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어쩌면 자업자득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8살 예린이(김지영)는 그토록 사랑하고 믿어왔던 아빠가 뜻밖에도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말았다. '부정입학'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어린아이였지만, 이 똘똘한 녀석은 신문기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썩 잘 이해했다. 자기를 국제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아빠가 나쁜 일을 했고,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빠를 비난하고 있으며, 친구들은 자기 엄마로부터 "예린이와 놀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린이는 울며 소리쳤다. "할머니, 아빠 불쌍한데... 미워!" 박정환(김래원)은 한 달 남짓한 인생의 마지막 시간 동안, 잘못 살아 온 지난날을 조금이나마 만회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온갖 나쁜 ..
박경수 작가의 '펀치'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이 예전과는 참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정의로운 여주인공 신하경(김아중)을 가장 멋진 캐릭터로 여기고 응원했을 것이며, 이태준(조재현)을 비롯한 악역들의 파렴치함에 솟구치는 분노로 몸을 떨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힘이 부족한 줄을 뻔히 알면서도 고집스레 정의와 원칙을 지키려는 신하경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속에는 칭찬과 응원이 아니라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가득 차오른다. 반면 이태준과 윤지숙(최명길) 등의 힘센 악역을 볼 때는 뜨거운 분노보다 앞서 차가운 두려움이 솟구친다. 어쩌면 대다수의 연약한 인간들에게 있어, 세상과 현실을 조금씩 더 많이 알게 된다는 것은 이처럼 조금씩 더 겁쟁이가 되어간다..
2012년 '추적자 THE CHASER'의 신선한 충격은 박경수 작가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와 기대를 한껏 높여주었다. 비록 2013년 '황금의 제국'은 전작만큼의 화제성과 시청률을 확보하지 못했으나, 인간의 내면을 무섭도록 냉정하고 끈질기게 파헤치는 작가의 묵직한 필력은 매니아들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그 후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4년도 막바지에 이른 겨울, 드디어 고대하던 '펀치'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공중파와 케이블을 통틀어 100편이 넘는 드라마가 제작되었으나 그 중 깊은 인상을 남긴 수작은 1~2편에 불과했던 2014년의 혹독한 드라마 기근에 '펀치'는 과연 단비로 내려줄 수 있을까? 첫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전형적인 구도를 지니고 있어 신선함은 느낄 수 없..
예고편만 보아도 식상함이 느껴지는 드라마였습니다. 야망을 위해 사랑을 배신하고 앞으로만 질주하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떨쳐내지 못한 사랑을 간직한 남자... 야망을 향해 달려가는 여자의 과거는 반드시 가난과 결손가정과 성폭행 등 갖가지 처참한 요소들로 구성되어야 하고, 그런 여자를 어려서부터 지켜보며 애틋한 마음을 키워 온 남자는 반드시 맹목적이고 외골수적인 순수함을 지녀야 합니다. 예전에는 남자와 여자의 캐릭터가 뒤바뀐 경우가 많았죠. 여자의 사랑과 헌신을 배반하고 야망을 향해 달려가는 남자와, 비참하게 버려진 후 복수심을 불태우는 여자... 이와 같은 설정은 각종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와 소설과 만화 등 참으로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소재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부분이 있겠지만 제 마음 속에도 타인에 의해 모욕당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성역이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바로 가톨릭 신앙입니다. 진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 가치를 모욕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내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도 소중하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절대로 타종교에 대해서 단 한 마디의 부정적인 언급도 하지 않으려고 주의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일상 생활 중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블로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입에서 나오는 말이든 손가락으로 치는 글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종교인이 아니라고 해서, 특정 종교에 대해 쉽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에 한숨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 눈앞에서 자기 아버지의 따귀..
트위터에 올린 발언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거나 손수 곤욕을 자초하는 사람이 한둘은 아니지요. 옥주현, 장근석 등의 연예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불과 수개월 전 불행한 일을 당한 아나운서의 죽음 역시 트위터 발언과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종편으로 이적한 PD중 한 사람은 타 방송국 신생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한 가수를 향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까지 트위터에 올림으로써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들 중에는 100% 실수라고 보여지는 것들도 있지만,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보여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일부러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고자 한다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여기에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로 판단되는 한 사람이 있으니, 원로 드라마 작가 김수현입니다. ..
'천일의 약속'을 2회까지 보았지만 주인공 남녀의 사랑에는 여전히 몰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주인공 이서연(수애)만 갈수록 너무 불쌍해지고, 남주인공 박지형(김래원)은 2회에서도 계속 나쁜놈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착한 약혼녀 노향기(정유미)를 대하는 차가운 태도를 보면서 얼마나 분통이 터졌는지 모릅니다. 만약 집안끼리의 정략결혼일 뿐 향기도 지형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훨씬 나았겠지요. 적어도 박지형이 이토록 나쁜 남자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흔들리는 박지형은, 두 여자의 마음을 갖고 놀며 두 여자의 마음에 모두 상처를 내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손수 구워 만든 쿠키를 가지고 박지형의 집을 방문한 노향기는 시어머니 될 수정(김해숙)에게 "저.....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의 사랑을 지키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 라는 것이 이 드라마의 모토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지고지순하다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첫방송만 시청하고 나서 볼 때는 남주인공 박지형(김래원)처럼 세상에 나쁜 놈이 없습니다. 친구의 사촌여동생인 이서연(수애)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개로 봐서는 기이하게 집착하며 데리고 놀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습니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 장재민(이상우)이 다음 회의 예고편에서 말하더군요. "멀쩡한 집안의 딸이었으면 그렇게 못했을 거야. 너는 서연이를 무시한 거야" 방송을 보면서 제가 받은 느낌도 그랬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채 어린 동생까지 데리고 고모네 집에 얹혀 살며 눈칫밥으로 성장했을 이서연으..
나는 시트콤을 매우 좋아한다. 일반 드라마보다도 예능 프로그램보다도 더 좋아하는 장르가 시트콤이다. 그런데 시트콤이라는 장르는 자칫 잘못 만들면 웃기지도 못하고 감동도 주지 못한 채 딱한 모양새로 주저앉기가 일쑤이다. 하지만 김병욱 PD의 작품은 한 번도 실망을 준 적이 없다. 김병욱의 시트콤은 언제나 꽉 짜여진 구성과 독특한 인물들의 확실한 캐릭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일부러 웃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각각의 캐릭터가 성공적으로 구현되니까 자연스럽게 웃음이 발생한다. 또 김병욱 시트콤의 특징 중 하나는 웃음과 동시에 슬픔과 감동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방송 내내 유쾌하게 진행되던 시트콤을 몇 번씩이나 새드엔딩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충격을 주기도 했다. 1. 순풍 산부인과 (SBS 1998~2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