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기생 행수 (2)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다행히도 짝귀의 산채를 향해 엄습해 오던 어두운 그림자는 일단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황철웅이 목표로 삼고 있는 이대길과 송태하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지요. 원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산채는 들이치게 되겠지만, 그 가엾은 사람들이 속 편히 숨 쉬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하루이틀은 늘어난 셈입니다. 어느 새 언니 동생 사이가 되어버린 언년이와 설화, 그리고 귀여운 원손 아기씨도 그 평화 속에서 며칠은 더 곱게 웃을 수 있겠네요. 1. 두 남자의 이상한 동행 "예전에는 얼굴을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더니만, 이제는 매일매일 보니까 아주 죽을 맛이야."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며 되뇌이는 대길이의 쓸쓸한 얼굴을 보니, 그 사내의 바보같은 사랑에 제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정말 그와 같은 사..
어쩌면 조선비의 변절은 벌써부터 명백히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의 속내가 개인적 탐욕에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송태하와 의견충돌로 갈등을 빚으면서,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던 조선비의 야욕은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송태하와 조선비는 둘 다 뿌리깊은 양반의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지만, 그 방향은 여실히 달랐습니다. 송태하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대의명분이었지요. 언년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빛이 좀 바래기는 했지만, 송태하의 삶에 있어 가장 큰 목적은, 죽은 소현세자에 대한 충성으로 그가 남긴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반란을 일으키기보다는 현재의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뜻을 전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원손의 사면을 주청하고자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