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책과 영화와 연극 (62)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하정우 배두나 주연의 '터널'을 관람했다. 설정상으로는 실베스타 스텔론의 1996년작 '데이라잇(Daylight)'과 비슷했다. 그런데 '데이라잇'은 터널 안에 갇힌 사람이 여러 명이었기에 다채로운 캐릭터를 감상할 수 있었던 반면, '터널'은 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에서 오직 하정우만이 원맨쇼를 벌이는지라 비교적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인공 이정수(하정우)라는 캐릭터를 지나치게 영웅적인 인물로 설정해 놓은 탓에 몰입도가 떨어졌다. 거의 성자 수준의 희생 정신과 더불어 터미네이터를 연상케 하는 강철 체력과 정신력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탓이다.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힌지 무려 30일을 넘긴 상황에서도 이정수는 꽤나 멀쩡한 육체와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몸의 상처에서는 피고름이..
참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부산행'... 한국형 좀비 영화라고 해서 내 취향은 아니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외출이나 해보자 싶어서 개봉일에 맞춰서 갔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는 재미있게 볼만했다. 스토리는 평범하지만 기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사투와 탈출의 과정 등이 제법 긴박감 넘치게 그려졌고, 새롭지는 않아도 절실한 주제의식이 한층 뚜렷이 드러났다. 냉정한 워커홀릭 펀드매니저 석우(공유)는 아내와 별거 중이며 유치원생인 딸 수안(김수안)과 홀어머니(이주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수안이가 자기 생일 선물로 부산에 있는 엄마를 꼭 만나게 해달라며 조르기 시작한다. 아빠가 바쁘면 자기 혼자서라도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으니 허락만 해달라는 딸의 애원에 미안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인간의 생각과 느낌은 점차 변해간다. 그 변화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오직 분명한 것은 변했다는 사실뿐이다. 엄홍길 산악대장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가 2007년이었으니 대략 8년 전이다. 방송에서, 그것도 오락 프로그램에서 처음 접하는 산악인의 모습 자체가 매우 신선했고, 살면서 한 번도 접해본 적 없었던 고산등반가들의 생생한 경험담 또한 그 치열함 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죽음의 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그 곳을 번번이 스스로 찾아나서는 그들의 마음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를 감상한 후 내 마음속에 드는 느낌은 8년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눈 덮인 에베레스트에서 ..
"함께 있으면 왠지 숨이 막히고 긴장으로 몸이 뻣뻣해지는 관계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라고 할 수 없네. 인간은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사랑을 실감할 수 있다네.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고 우월감을 과시할 필요도 없는, 평온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지. 진정한 사랑이란 그런 걸세." 「미움받을 용기」 p133 섣부른 해석은 금물이다. 사랑에 관한 아들러의 조언은 역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사랑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아들러는 말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왠지 숨이 막히고 긴장으로 몸이 뻣뻣해지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그와 같은 느낌은 '강압'에서 비롯된다. 단언컨대 강압을 통하여 진정으로 개선되는 인..
“자네는 스스로의 단점만 보여서 좀처럼 자신을 좋아할 수 없다고 했네... 그것은 자네가 남에게 미움을 사고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일세... 자네는 남에게 부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거절당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을 무서워하지. 그런 상황에 휘말리느니, 처음부터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걸세. 즉 자네의 '목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네.” 「미움받을 용기」 p79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듣는 순간, 나에겐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애써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순화시켜 표현하자면 나는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여겨도 그것을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지는 말게... 나는 옳다, 즉 상대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부터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옮겨 가네. '내가 옳으니까 나는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며 권력투쟁이 시작되는 것일세. 궁극적으로 주장의 타당성은 승패와 관련이 없네. 자네가 옳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되어야 하네." - 「미움받을 용기」p123 음악가들의 다툼 출처: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 생각해 보면 논쟁이나 토론처럼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행위가 있을까? 그 누구인들 논쟁이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진심으로 수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타인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은 채 자신의 주장만을 목청껏 앞세울..
정말 오랜만에 한 권의 책을 구입했다. 제목은 '미움받을 용기' 오히려 제목이 너무 뻔하게 느껴져서 안 읽으려던 책인데 우연처럼 접하게 된 한 구절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유대교 교리 중에 이런 말이 있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비판한다.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 명 중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는 좋은 친구가 된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이 때 나를 싫어하는 한 명에게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사랑해주는 두 사람에게 집중할 것인가, 혹은 남은 일곱 사람에게 주목할 것인가? 그게 관건이야.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한 명만 보고 '세계'를 판단한다네." 나는 '인..
솔직히 내게는 박근형과 윤여정의 이름만으로도 망설일 필요가 없는 영화였다. 원래부터 무척 좋아하는 배우들이기도 했지만 특히 최근 나영석 PD의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를 통해 새롭고 인간적인 매력까지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명품 연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기회를 어찌 마다할소냐! 더욱이 여타 작품들에서 노인 배우들의 역할이란 젊은 주인공들의 부모나 조부모 자격으로서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데 반해, '장수상회'에서는 그들이 어엿한 멜로의 주인공들로서 2시간 가량의 러닝타임을 꽉 채우게 될 터이니, 개봉 첫날 영화관에 들어설 때부터 마음은 기분좋은 설렘으로 콩닥거리고 있었다. '장수상회' 관람 후의 느낌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먹먹함'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가슴 한 쪽이 따스하면서도..
영화 '쎄시봉'이 개봉도 하기 전부터 네티즌 평점테러에 시달리며 난항을 겪었던 이유는 여주인공 민자영의 젊은 시절을 맡은 여배우 한효주의 남동생 때문이었다. 부대 내 가혹 행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공군 김일병'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어질 만큼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는데, 한효주의 남동생이 그 사건의 가해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었던 것이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급기야 가해자로 지목된 본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누나인 한효주가 유명인으로서 대신 사과하는 태도라도 보여야 하는데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 분노의 이유였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사과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보상을 받지도 못한 채 잊혀져가는 한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이 안타까워 한효주라도..
손은 두 사람을 묶을 수도 있지만 서로를 밀어낼 수도 있다. 손가락은 두 사람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접으면 주먹으로 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두 손을 내린 채로 서서 서로를 붙잡지 못하고 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모두 손에 달려 있다. - 에드워드 마이클 데이빗 수프라노비츠 2015년도 어느 덧 1/12이 훌쩍 지나가고 2월의 시작이다. 부디 올해는 '사람 대하는 법'을 좀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무언가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